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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Poetopia

시간 7시로 변경

by 선휘 BooK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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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십자가 아름다운 성당

예배실 앞에 건장한 신부가 무릎을 모아

영혼의 손을 씻는다


예배실 뒤편

하기 싫은 부탁을 받은 젊은 수녀가 한동안 서성이다

소리 없이 다가가 쪽지를 신부 옆자리에 내려놓고

부리나케 예배실을 빠져 나간다


한동안 마음을 닦은 후

신부는 예배실을 나간다

조금 전 예배실에 들어와 기다리다 청소를 시작한

너는 신부가 앉았던 자리 옆에 놓인 쪽지를 발견한다

그걸 수녀가 본다 너와 수녀의 눈이 마주친다


너는 잽싸게 쪽지를 낚아채 예배실을 빠져나가고

수녀는 너를 따라간다 수녀는 쪽지를 돌려주세요,

너는 그런 건 없어요,

수녀는 너를 쏘아보며

주머니에 있는 거 다 알아요 그건 신부님 거란 말이에요


너는 끝내 그런 건 없다며 내달린다

수녀는 쫓아오고

에잇, 너는 꽁꽁 접힌 쪽지를 성당 뒤 깊은 연못 가운데로 던진다

글씨는 서서히 젖어들고 물고기들이 모여 쪼기 시작한다


터져 나오는 질투

수거해야 될 수치

부재중인 욕망

상징의 구멍

.......


숨어 있는 그림자가 보낸

백지 속에서 뜻이 그들을 가위질한다



꽃.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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