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버리고 있던 그 '빗대'라는 단어가 어찌하여 생뚱맞게 술 한잔 얼큰할 적에 떠 오르던지요?
유년시절 그 하고 많던 시간을 채우던 노무, 노동의 일과들이 어쩐 일로 서울 한복판 낙원상가 어디쯤에서 고기를 자르던 중국동포 아줌마의 기계 같은 손놀림으로부터 연상되었을지요?
'빗대'를 아지 못하신 분들은 '바늘대'라고 하면 혹시 아하~하고 무릎을 칠 일입니다.
그래도 무슨 말인지를 모르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특정지역에서 이루어지던 그물 뜨기를 할 때 쓰이던 특정시기의 용어들이고 용구들이었으닌까요. 그 노동의 현장에 있었던 지금은 70대, 80대에 이르는 형님 누님들 세대의 특정 나이대에 국한하여서나 이해가 되는 말일 테닌까요.
그렇지요.
빗대, 바늘대, 전지, 그리고 신초니 대긋빡이니 하는 용어들.
그리고 또 기억하지 못하는 숫한 용어들이 입에서 빙빙 돌지만 그래도 기억해 내지 못하는 그 어릴 적 우리의 손놀림을 잽싸게 하던,
그렇습니다.
'그물 뜨기'입니다. 혹은 '그물내기'입니다
빗대는 그물코의 크기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그물을 뜨게 해주는 대나무로 만든 사각형의 '자'입니다. 그리고 그물코라고 하는 것은 그물망의 각 격자의 크기를 말합니다.
빗대는 아주 작은 사이즈에서부터 커다란 사이즈까지 다양하였고 거기에는 각각의 크기를 표시하는 숫자가 있었는데 지금은 다 기억해 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로 대나무로 만들어서 사용을 했고 빗대는 왼손에 바늘대는 오른손에 잡아 그물을 떠 나갔습니다.
바늘대는 나일론실을 '쳐'서(감아서) 그물실로 그물코를 만들게 해 주는 일종의 '실 감게'이지요. 전지는 한 타레씩 되어 있는 나일론실을 둘러 씌워서 술술 풀리게 해 주는 돌아가는 용구로 일종의 물래입니다.
그런 그물내기를 해 보지 못한 여러 분들은 생소한 용어일 줄 압니다. 그런 일을 해보지 못한 나로도 고향 친구들조차도 쉬이 알지 못하는 그런 용구들입니다. 유독 쑥섬에서는 집집마다 그물내기를 언젠가부터 해 왔던 것 같습니다. 물론 다른 마을에서도 했을 터지요.
같은 나로도를 고향으로 두고 있지만 쑥섬이나 내섬(사양도)이나 그리고 제한된 부락에서만 이루어졌던 이런 삼동지절에 집집마다 가용을 벌어 쓸 수 있게 하였던 그 밤샘의 소일거리들.
어쩌면 그렇게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가 중국동포 아줌마의 기막힌 손놀림으로부터 불현듯/솟구치듯이 돋아나왔을까요?
그렇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그냥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지'가 12 호니 15 호니 하는 나일론 실타래의 그 길고도 긴 실을 풀어내어서 '바늘대를 쳐서' 한코한코 '신초'로부터 시작하여서 점차 '빗대'를 키워가며 그물코의 크기를 키워가다가 내 중에는 '대긋빡/그물 입구부'을 만들어가던지 아니면 그 반대로 '대긋빡'부터 시작하여서 '그물코/그물격자'를 줄여가다가 내 중에는 '베게/촘촘하게' 해가는 과정을 통하여 하나의 그물이 되었던 것들은 어쩌면 우리네 인생사가 그렇게 아무렇게나 맹그러지고 이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그 기나긴 겨울밤을 어머니와 아버지 옆에서 '바늘대를 쳐'주면서 체득하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엊그제 고향 친구가 운영하는 어느 노래방에서 친구가 구성지게 부르던 '바다가 육지라면'이며 또 다른 친구가 불러 목이 메이던 '어매어매 머 하려고 날 낳소'며 또 누가 불러 목이 터지던 '돌담길 돌아서면'들을 그 어느 시간대에 처녀 적 우리네 누나들이 학교를 더 진학하지 못하고 골방에서 그만그만한 누나친구들하고 그물을 뜨면서 목이 메던 것이 어찌하여 이렇게 갑작스럽게 서울의 한복판에서 그것도 주물럭을 먹다가 생각이 났을는지요.
'그물내기'의 숙명과도 같던 한코 한코가 쌓여 이제는 인생의 뒤안길이 되어 머언 추억같이 되어서 여전히 노래방에서 그런 류의 노래를 부를라 치면 그날 눈물 나게 하던 노랫가락처럼 구성질 수밖에 없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묵은지같이.
유행가는 나이를 묵을수록 구성지고 나이는 묵을수록 그 태가 절로 난다고 했던가요?
어쩌면 그런 그물내기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어 우리 모두는 고향으로부터 떠나와 이렇게 객지에서 향수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중선배들이 만선을 만끽하며 그 시절 유행하던 유행가, 이를테면 가수 남진씨가 부르던 노래들을 틀어재키며 쑥섬과 내섬 사이 그 목을 지나쳐 올라치면 내섬이며 쑥섬이며 축정마을 사람들도 함께 흥에 겨워 골무샅/골목길을 설레발치며 뛰쳐나가던 시절이 저물고,
더 이상 만선의 배도 만국기도 흥에 겨워 자진모리로 몰아가던 사물놀이도 없어진 나로도항에서 그물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어 우리 모두는 그런 '빗대'니 '바늘대'니 하는 그물 뜨기 용어들을 잊어가면서 한해 한해 나이만을 묵어가고 있지나 않은 건지요.
하여, 우리가 지금까지 그물을 떠 왔다면 지금 어디쯤 일는지요?
아직도 '신초'를 맴돌고 있는지요 아니면 '중둥'을 지났는가요 아니면 '대긋빡' 향해 가고 있는지요?
그렇게 만든 그물로 무엇을 얼마나 이 험한 '난바다'에서 잡았는지요. 그물을 너무 배게/촘촘하게 떠서 잔챙이만 잡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큰 놈들만 잡을라고 너무 '얼무게/성기게' 떠서 늘상 빈그물만 걷어올리고 있는지는 아닌지, 그것도 아니면 물속 여밭/돌밭에 그물이 쳐 놓은 탓에 여기저기 찢어지고 상해서 망연자실하고나 있지는 않은 건지요.
'전지'처럼 돌고 돌아 그 자리를 뱅뱅 돌고 있는 건 아닌지,
오늘은 술 한잔 거나하게 걸치고 들어와 술김에 얻은 '빗대'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이 밤 열두 점이 다 된 시간에 손가락에 열불 나게 빗대에 대한 이야기를 치고 이제 꿈속으로 스며들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