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이야기(85)

봉래초등학교 100년사

by 명재신

봉래초등학교 100년사


저의 모교인 봉래초등학교가 2024년 9월 10일 자로 10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24년 9월 10일에 고흥군 봉래면 신금리에 봉래공립초등학교로 개교를 한 이래 100년이 지났다는 것입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함께한 백 년 역사 천년을 향한 꿈’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고향 나로도를 지키며 평생을 살아온 선후배 동창들과 전국각지의 졸업생들이 참여하는 100주년 행사를 지난해 9월 성대히 치렀습니다.


봉래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사업회를 조직하여 아래 연락이 가능한 모든 출향인들에게 각 졸업기수별 담당을 정해서 연락하고 기념회의 동참을 요청하는 등의 노고를 다한 끝에 작년 9월에 기념행사를 여러 기관장과 지역유지 그리고 졸업생들을 모시고 성대하게 진행하고 기념비 제막식과 모교에 장학금도 전달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더욱 의미있게 만들어 주는 마무리 활동으로 명상용 편찬위원장의 주도 아래 고향을 지키고 있으며 기념사업회의 부위원장을 맡아 저희 동창생들의 뜻을 함께 모았던 명연호 동창이 그간의 활동과 모교의 역사를 정리한 ’봉래초등학교 100년사‘를 발간하고 이를 보내왔습니다.


책자에는 여러 귀한 자료들이 실려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제1회 졸업생부터 97회까지 모든 졸업생의 명부가 포함되어 있어 그 자료를 입수하고 싣는데 편집자들의 노고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잊고 있었던 선배, 후배를 포함해서 새삼스레 동창들의 이름 하나 하나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졸업생들의 현황을 살펴보니 놀랍게도1924년도에 제1회는 50명이었다는 것이고 2024년도인 작년 97회는 졸업생이 모두 5명 뿐이었다는 안타까운 사실이었습니다.


일제 하의 어려운 여건 아래에서도 나로도의 주민들은 교육 열의가 대단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는데 안타까운 것은 현재의 상황을 알려주는 나로도에 작년도 졸업생이 단 5명이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대도시로 나가고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는 젊은 세대가 귀하고 새로 유입되는 젊은 부모 세대 또한 나로도에 우주발사기지가 들어서서 기반시설이 들어서고 있음에도 그만큼 적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의 모교인 봉래초등학교는 개교를 한 이래 100년 동안 97회의 졸업생을 통해 6,955명의 졸업생을 배출을 하였으며 저희 동창들은 1976년도에 49회로 졸업을 하였습니다.


저희 동창생은 남학생은 71명, 여학생은 73명으로 거의 비슷하였고 전체 144명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남녀 각각 1반으로 2개 반이 운영되었던 동창들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불러보니 놀랍게도 그 얼굴들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종종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공유를 해 준 동창들이 있어서 들여다보았던 것도 기억을 하는데 도움을 주었겠지만 아직도 그 이름들과 오래 전의 얼굴들이 연상되어서 함께 한다는 것은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몇몇은 이미 고인이 된 동창들도 있었습니다만 이번에 기념사업회의 중심이 되어 연호 친구가 동창들을 연락처를 알아내서 단톡방에 모아보니 110명이 연락이 되어서 함께 안부를 묻고 근황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로도 본섬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50년이 지난 시절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니 세월이 참 무섭다는 생각입니다.


그중에 저희 쑥섬(당시에는 봉호마을로 불렸음) 마을의 동창들은 다음과 같이 15명이었더군요. 전체 동창생의 10%에 해당하는 셈이었습니다.


남학생(9명) : 박창인, 박권희, 명문용, 명병호, 고영조, 최한길, 고승철, 고영월, 명재신,

여학생(6명) : 박선미, 명복희, 박은영, 명은희, 명금숙, 조미순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봉래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쑥섬마을에서의 학생의 구성을 살펴보니 저희 동창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6학년까지의 총인원은 76명이었으며 중학교 학생은 29명이어서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합치면 모두 105명의 학생들이 매일 나룻배를 타고 쑥섬에서 나로도항을 거쳐서 신금리까지 통학을 했다는 것입니다.


쑥섬마을의 선착장에서 매일 아침이면 아이들이 나오는 순서대로 중학생과 초등학교 고학년은 첫 번째 나룻배를 타고 가고 저학년이나 늦게 나온 중학생들은 두 번째 나룻배로 통학을 했었는데 어떻게 해서 아침에 100명이 넘는 학생들을 작은 나룻배로 실어 날랐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백여명이나 되는 쑥섬 아이들이 나로도항에 내려서 초등학교가 있는 신금리까지 어린 나이에 먼 거리였을 것인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녔다는 것이 참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치도 등교길에는 밀려가는 밀물과도 같이 몰려가고 하교길에는 밀려나오는 썰물처럼 빠져 나오는 모습이 연상이 되었습니다.


저가 고학년이었을 때는 모여서 함께 등교를 하였고 완장까지 찼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저는 애향단장이었거든요.


덕분에 지난 100년의 시간을 들여다 볼 수 있었기에 책자를 준비해 준 편찬위원들께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모교인 봉래초등학교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애를 쓰신 모든 분들의 노고에 감사 인사를 보내면서 앞으로도 더 많은 발전과 새로운 백 년을 도약하는 원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새로운 일백을 위하여


모두 모두

모여라 봉래의 청년들아


하나에서 시작해 일백이 되었고

이제는 한 세상 무수가 되어

모래알처럼 흩어져 다들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웁다 보고잡다


봉래의 청년들아


오늘도 교정에는 플라타너스 이파리

그리움이 넘치겠구나 반가움으로 가득하겠구나

밤하늘의 은하처럼 대양의 물결처럼

다시 모여들어 하나가 되어보자


모여라 동무들아

오너라 친구들아


교정에 드높던 청아한 목소리로

어제까지 지천이던 봉숭아 채송아 화단에

오늘은 나팔꽃 이른 아침부터

모두를 불러 모으고 있다


우리 다시 한번

다함께 새로운 봉래초등학교의

일백을 시작해 보자


어서 어서

오너라 봉래의 청년들아.


출처 : '봉래초등학교 100년사'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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