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이야기(86)

- 태풍에 대한 기억

by 명재신

<태풍에 대한 기억>


창문이 활짝 열렸다가 이내 꽝하고 다시 닫혔다.


야산들을 에워싼 구름들의 진행이 빨라져 갔다. 비가 대중없이 바람에 뒤섞여 흩날렸다. 파두에서 흩날리는 물보라가 얼굴을 때렸다.


바다가 뒤집혀 갔다. 진회색의 파도가 그 높이를 더해 마을 앞을 진군해 갔다. 그러나 그건 바로 시작이었다. 큰바람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하는 진저리, 바로 그것일 따름이었다.


적어도 저녁을 먹기 전까지도 그런 양상이 계속되었을 뿐이었다. 비는 실타래 헝클어진 모양새로 내렸고 바람은 방향을 옳게 잡지 못하는 듯 이리저리 정신없이 '골무삭/골목길'을 휩쓸고 돌아다닐 뿐이었다.


큰바람은 삼경이 못 되어서 그 본색을 드러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용케도 헤쳐 다니며 몸서리치듯 비명을 질러댔다.


활시위가 당겨졌다가 튕겨지는 소리가 지붕 켠에서 나는가 싶더니 뭔가 커다란 붕괴음을 토해내며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불길한 징조였다.


거대한 팽나무의 붕괴는 그렇게 어둠 속에서 바람이 일기 불과 한 시간도 채 못 되어서 일어났다. 쓰러져 누운 건지. 모든 사물들과 생물에 천적이 있듯이 그 팽나무는 닥쳐온 큰바람의 냄새를 맡고 천적이라 예견하여 미리 생을 마감하였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커다란 구멍을 가슴에 안은 채 그 밤을 끝으로 땅으로 드러눕고 말았던 것이다.


자정이 되면서 바다가 들끓기 시작했다. 귓전을 때리는 바람에 분명 소금냄새 풍기는 빗물이 함유되어 있었다. 그건 바다가 바람의 충동으로 파도를 일으키고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풍선의 부피보다도 더 커다랗게 바닷물을 팽창시키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태풍해일이었다.


만조가 되면서 바닷물은 마을 앞 선창을 잠기게 하더니 ‘본마당/마을마당‘을 채웠고 급기야는 돌담을 넘어서 마당에까지 들어차기 시작했다.


‘바다가 넘친다. 마을이 잠긴다. 모두 위로 올라가라‘


누군가 마을을 바람처럼 휘돌아 다니면서 그렇듯 고함을 치고 있었다. 마치 그 소리는 바람의 굉음에 흘러나오는 피리소리 같았다. 밤의 야심한 틈새로 흘러 보내는 뱀의 휘파람소리처럼 선명하기도 했다가 아련하기도 했다.


‘발목까지 잠긴다 서둘러라.’


어둠은 사방을 장악하여 한 치 앞을 식별할 수가 없도록 했지만 닥쳐올 거대한 힘에 맞서서 아버지는 식구들을 모두 데리고 나와 뒤안을 거쳐서 큰어머니 집으로 피신을 시켰다.


골무삭길을 나서자 허리까지 잠기는 바닷물이 커다란 완력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돌담의 좁은 틈새로 손가락을 쑤셔 넣고 겨우겨우 고무삭길을 벗어났을 때에사 작은집의 식구들이 인기척이 없음을 알아차렸음인지 아버지가 바람의 거대한 힘의 크기만큼이나 엄청난 그림자의 크기로 돌아섰다.


‘거긴 지금 방에까지 바닷물이 찼을 거다.’


점벙점벙. 마을의 모습이 아무런 흔적조차도 없이 잠겨버린 어둠 속을 아버지는 그렇게 사라져 갔다.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지옥의 어둠 속에서 강인한 팔뚝의 굳센 힘줄의 아버지를 분명하게 보고 있었다.


어둠 속의 그 모습은 오랜 세월 세상을 점유해 온 팽나무의 위세가 넘어가는 뒤끝이어서 새삼스러웠고, 수호신으로 불리던 고목의 신령이 다시 뒤를 이을 수 있는 재목감으로 아버지는 나무를 구해다 심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섬 안으로 계속 바닷물을 쓸어 넣고 있는 태풍 속에서 작은집 식구 모두를 어떻게 구출해 낼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


‘바다가 넘친다. 마을이 잠긴다. 모두 위로 올라가라.‘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간 아버지의 기척이 없었다. 작은집 식구들을 데리고 어디로 향했는지 마땅한 곳으로 피신은 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늦은 봄부터 시작해서 경작해 오던 참깨 대궁지가 형편없이 휘날리고 있었다. 큰어머니가 마당에서 추수려 마루에 쟁여놓은 참깨들이었지만 커다란 바람으로 마루 여기저기로 흩어져 날아다니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 어지러운 획이 허공에 그어지다가 초라한 몰골로 땅바닥으로 눕고 마는 여름작물들의 아우성을 똑똑히 듣고 있었다.


그 곁에 오들 거리며 지옥의 어둠 속에 모여 앉아 있다가 나는 두려움 속의 눈들을 등에 두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대책 없이 휘청거리는 시누대 이파리가 잠시 눈앞에서 스쳐가는 가 싶더니 이내 팔목에 쓰라린 통증이 왔지만 그냥 어두운 골무삭 길을 내쳐 달렸다.


'이 물을 막아야 써'


그 고함을 들으면서 나는 목까지 잠겨드는 바닷물을 헤엄쳤다. 작은집이었다. 돌담이 허물어져 발을 디밀 곳까지 없어져 버린 작은집 마당은 이미 바닷물로 한강이었다.


나는 거기서 울음소리 없는 울음을 보았다.


나는 거기서 울음을 울 수 없는 공포의 얼굴들을 보았다.


나는 그날 지옥의 바닷물에 둥둥 떠다니던 아버지의 몸사위들 틈에서 굳어져 입술조차 떼지 못하고 있던 어린 사촌 동생들의 주검 같은 어둠을 보았다.


주검, 바로 그거였다. 다락에 숨어 있다는 것을 새까맣게 모르고 자꾸만 방에서만 조카들을 찾아 헤매던 아버지가 사촌동생들과 작은어머니를 못 찾고 돌아서려 한 순간까지도 부르지 못했던 그들의 공표는 바로 주검을 의미하는 거였다.


세 명의 어린 조카들을 어깨에 차고 더듬거리며 이미 허리까지 잠겨버린 마당을 거쳐 마을 앞길로 나아갈 수 없게 되어버린 작은집을 빠져나오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 뒤를 따라 작은어머니도 대나무 숲이 있는 남새밭쪽으로 헤엄쳐 나오고 있었다.


하얀 저고리가 어둠 속에서도 바닷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것을 예사롭게만 볼 수가 없었다.


대책 없이 차 오르는 바닷물을 건너 큰아이들을 먼저 내보내고 어린아이들을 챙겨서 나서려다가 마당을 잠기게 하고 방안까지 밀려오는 바닷물 속에서 아이 셋을 어떻게 데리고 나올 수 없었던 마음이 오죽했으랴 싶었다.


아무도 아무런 모습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어찌도 그렇게 생생하게도 그 울지 못하고 다물어져 버린 입술을 열어 사촌 동생 정룡이의 목소리가 또록또록 들려왔다.


'성가야 인자 살았제?'


해평이네 집으로 피신을 한 작은집 식구들의 얼굴들이 모두 확인을 하고 다시 아버지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나는 어둠 속으로 다시 들어간 아버지의 든든한 어깨를 보았다.


태풍은 이제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1970년대 말 여기 쑥섬마을로 큰 태풍으로 인하여 해일이 일었던 해가 있었습니다. 이 글은 작은집이 해일로 바닷물에 잠겼던 어느 여름날의 태풍에 대한 기억입니다.


그 태풍해일에 대한 기록을 찾아서 여기에 올립니다. 아마도 1990년도 6월에 씌어진 저의 쑥섬에 닥친 태풍해일에 대한 기록인 것으로 보입니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