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이야기(87)

- 전어 이야기

by 명재신

전어 이야기


"쑥섬 들어왔능가?"


사촌 형제들이 고향 쑥섬집에 합류하고서 이것저것을 챙기느라 경황이 없던 차에 고향 친구한테서 전화 한 통화를 받았습니다.


"덕분에 잘 들어왔네"


서울살이를 접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자리를 잡은 친구였습니다. 이제는 10년이 넘어가는 시간이 그 사이에 지나갔습니다.


지난 시간들은 만만한 시간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내색하지 않고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들에 저는 늘 부러움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지금 집에서 출발항께 쪼그만 있다가 선창으로 나와 보소"


"어디로 온다고"


친구가 자리 잡은 곳은 내나로도의 백초마을이었습니다. 외가가 있는 곳에 자리를 잡은 친구는 근사한 펜션을 직접 지어서 운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로도는 고흥반도 끝자락에 자리 잡은 내나로도와 바깥쪽에 위치한 외나로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백초마을은 내나로도에 있는 마을입니다.


백초마을에서 배를 직접 몰아서 온다고 하더래도 30분 이상은 걸리는 먼 거리였습니다.


친구가 그곳에서 쑥섬으로 오겠다는 전화였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가져다줄 테니 뱃머리에 좀 나와 있으라는 말이었습니다.


또 무얼 가져오겠다는 것인지.


언젠가는 늦은 봄철에 쑥섬에 들어갔었는데 어떻게 구했는지 '봇또리 바닥/나로도 동쪽 바다'의 '바닥기/꽃게를 나로도에서는 '바닥기'라고 부름'을 잔뜩 구해서 보내왔었습니다.


저가 먹어본 '바닥기/꽃게' 중에서 그렇게 크고 실하고 살이 꽉 찬 '바닥기'를 먹어 보지를 못했습니다.


나로도 주변 바다에 그렇게 크고 살이 찬 꽃게가 서식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었고 귀한 그런 꽃게를 구해서 보내준 친구에게 어떻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와 고향에서 자리를 잡는 동안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내색을 하지 않고 벌써 10년을 넘기고 있는 친구였고 이제나 저제나 저 또한 내려오면 함께 여생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다림을 가지고 있는 친구이기도 했기에 늘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걸 다 어디서 나서...."


친구가 직접 배를 몰고 백초마을에서 출발해서 쑥섬마을까지 건너와서 전해 준 것은 뜻밖에도 '전어 한 보따리'였습니다.


천금보다도 귀한 생선이었습니다.


벌써 나로도 주변에서는 전어가 잡히기 시작했는지 얼른 눈으로 보아도 10센티급으로 살이 다 올라 있었습니다. 어제 나로도 어판장에서 보지 못한 것은 이제 막 잡히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쑥섬과 나로도 주변 바다에서 늦여름부터 시작해서 가을이 이슥하도록까지 전어를 잡는 전어배들이 많았습니다.


예전에는 쑥섬에서도 전어를 잡는 배들이 있었던지 '전어잡이 뱃노래'의 한 토막이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할머니가 그런 '전어잡이 뱃노래' 한 토막을 구술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걸 기록으로 남겨 놓은 것이 '뚝딱 전어배'라는 글이었습니다.


전어를 잡기 위해서는 전어배에 갯돌을 잔뜩 싣고 나가서 전어 떼를 한 곳으로 몰아가는 몰이배와 그물을 둘러치는 '본선'으로 보통 2척이 한 조가 되어서 잡는 방식이었는데 몰이배가 나무 방망이로 배의 '삼/가장자리'를 두드려 소리를 내면서 갯돌들을 본선이 있는 쪽으로 몰아가면 본선이 전어 떼를 그물을 둘러싸서 잡는 방식으로 잡았습니다만 지금은 그렇게 잡지 않고 전어잡이 전용 고정 자망을 전어들이 자주 보이는 곳에 쳐두고 다음 날 아침에 거두어 잡는 '자망' 형태로 잡고 있었습니다.


"그물로 잡었네 자네 좀 줄라고"


친구는 '전어 한 보따리'를 전해 주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배를 몰아서 시야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저는 그 배가 선창에서 멀어지도록 지켜 서서 친구의 뒤 모습을 건네다 보면서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아니 어디서 이런 귀한 것을"


잡어다가 팔아서 '가용/생계'에 보태 써야지 어쩌자고 이 귀하고 많은 것을 직접 가져다가 준단 말인가.


얼마간을 그 자리에 붙박여서 친구의 배가 보이지 않을 때에사 저는 정신이 들어서 '전어 한 보따리'를 챙겨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를 어쩔꼬"


전어는 '다섯 뭇/오십마리'이 넘었습니다. 친구의 이 '대책없는 우정'을 어쩔 것인지, 어떻게 챙겨야 할 것인지를 두고 전신이 떨렸던 것입니다.


"세상에나, 어디 그런 고향 친구가 있다냐. 아짐찮게"


형제들이 전어를 전해주고 간 친구를 두고 그렇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고향 쑥섬에서의 지난 사촌 형제모임에서는 이렇게 가슴이 따뜻한 고향 친구 덕분에 전어를 '지져서 먹고 회를 쳐서 먹고 무침회로도 먹고 구워서도 먹으며' 눈물이 나도록 재미지게 잘 머물다가 왔습니다.


오늘은 아무리 바쁘더래도 다시 전화를 넣어서 감사 인사를 다시 해야겠습니다.


"고맙네 친구야 덕분에 고향 모임을 잘하고 왔네"



똑딱 전어배


이리 몰아라

똑딱 전어배*


저리 간다

똑딱 전어배


이리 가다

저리 간다


인생살이

여기 다 있다


몽창 뜨면

살림 뜨는 거고

홀랑 하면

살림 거덜 난다


이거 한 방이면

쌀 한 가마니다

저 것까지 뜨면

막둥이 학비 번다


어여 가자

따라 가자


한 방 뜨러

한 판 하러

뚝딱 전어배


한 철 큰 손님이다

똑딱 전어배


*똑딱 전어배 : 배를 두드리며 전어를 잡을 때

부르는 소리이다.


- 출처 : 제4시집 '쑥섬이야기' 중



고향에 돌아와 잘 정착을 한 친구가 백초마을에서 달려오는 모습입니다.
내나로도 백초마을에서 친구가 직접 배를 몰고 쑥섬마을로 달려오는 모습입니다. 고맙고 아짐찮게 '전어 한 보따리'를 전해주고 갔습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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