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이야기(90)

-소리 없는 파도

by 명재신

소리 없는 파도


장마가 비껴간 7월의 햇볕은 몹시 뜨겁다.


해안을 끼고 도는 섬의 모퉁이는 달아오른 갯바위로 금세 살갗이 그을리기 마련이다. 해암 화백은 그늘도 없이 땡볕에 나앉아 그림을 그리다가 후박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작은섬’의 ‘솔밑바구’에 몰려드는 파도를 붙잡고 있던 중이었다.


“여전히 파도가 높네요.”


딸아이를 데리고 ‘작은섬’과 연결되는 ‘목넘어/쑥섬 본섬과 작은섬을 잇는 방파제'에 멋진 석양을 건네다 볼까 하여 넘어오니, 거기에는 해암 최주휴 화백이 그림을 마무리하다 말고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해암의 화폭에는 여전히 ‘작은섬’의 벼랑으로 달려드는 하얀 파도가 담겨 있었다.


그는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서서 나를 알아보곤 반색을 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첫 시집 '돌부처 도서관 나서다'에 자신의 시가 한 편 실린 것에 대해 늘 고맙다는 표현을 해오던 해암 화백이었다.


“오늘도 작은섬을 그리는 건가요?”


숙달된 듯 그의 눈은 내가 땅바닥에 또박또박 써 내려가는 물음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는 채 마무리도 하기 전에 묻고자 하는 요지를 알아챈 듯, 손을 내어 손바닥에 글자를 쓰며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냈다.


“평생을 그려도 다 못 그릴 것 같아요.”


해암 최주휴 화백은 1963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한 서양화가였다. 여덟 살 때 뇌막염으로 인해 청각장애를 겪게 되었지만, '마음의 귀로 파도 소리를 듣는다'며 쑥섬의 ‘작은섬’을 평생 그려오고 있었다.


‘해암(海巖)’은 바다와 바위처럼 단단하고 깊은 그의 예술 세계를 높이 평가한 지인이 지어준 예명이었다.


“나는 소리를 듣지 못하지요. 오랫동안 듣지 못하는 기능으로서의 청각을 예찬해 왔고, 나름대로 장점만을 이야기해 왔지요.”


해암 화백은 나로도에서 태어나 나로도에서 평생 그림을 그려온 향토화가였다.


자신이 내뱉는 말은 듣지도 못하면서도, 용케도 해암의 발음은 평상인의 그것과 다름없이 정확했다. 그는 소리 없는 파도에 대한 이야기와 ‘작은섬’에 연연하게 된 내력을 조곤조곤 풀어놓았다.


“이 파도엔 소리가 없어.”


아주 오래 전, 해암은 저녁 무렵 석양이 드는 ‘작은섬’의 벼랑에 부딪히는 파도를 배경으로 그림을 마무리하고 있던 참이었다.


쑥섬 마을의 한 녀석이 ‘작은섬’의 벼랑을 타며 낚시를 하더니, 해가 중천을 넘어서 늬엇 기울어가자 노래미를 잔뜩 잡아 낚싯대와 함께 울러맨 채 ‘마당널이’ 쪽에서 건너오면서 해암을 지나치다 말고 그러더라는 것이다.


열두어 살쯤 되어 보이는 쑥섬 아이였는데,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렸고 머리는 짱구였으며, 눈은 부리부리하게 생겼음에도 총기가 있어 보이는 아이였다고 했다.


그 녀석이 가다 말고 그러더란다.


“소리가 없어!”


해암이 자신만의 정적을 깨는 놈에게 고개를 돌리며 쫓아보낼 요량으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뭐가 없다는 거야”


놈은 분명 ‘소리’라는 발음을 입모양으로 내고는 손을 훼훼 흔들어 ‘없음’을 표현해냈다.


“어디에 뭔 소리가 없어?”


그 녀석이 해암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해암이 그려놓은 화폭의 하얀 파도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다시 ‘소리’라고 입모양을 하고는 오른손을 저으며 ‘없다’는 뜻을 표현했다.


“파도에 소리가 없어?”


해암은 하마터면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놈의 그 맹랑한 한마디에 허리가 휘청 꺾여버렸다. 녀석은 해암을 한동안 쳐다보더니 뭔가를 쫑알거리며 등을 돌려 마을로 접어드는 길로 사라져버렸다.


“소리도 못 그리면서 허구한 날 찾아와 그림을 그린다고!”


저녁 무렵의 습습한 소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루 종일 더위와 씨름하며 지쳐서만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 소년의 쫑알거림은 느낌으로 뭔 소리를 하고 갔는지 훤히 들리는 듯했다.


어쩌면 그 녀석은, 자신이 소리를 듣지 못하면서 그림은 어찌 그리느냐를 타박하는 말이었겠지만, 해암 화백은 ‘살아 있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라는 말로 알아들었다고 했다.


“그날 이후로, 그 녀석이 던져놓고 간 나만의 숙제를 풀기 위해 파도가 칠 때마다 이 섬에 들지요.”


오늘도 해암은 ‘작은섬’의 파도를 그려 넣고 있었다. ‘파도 소리가 들리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작은섬’의 ‘솔밑바구’는 그래서 평생 동안 해암이 쑥섬을 찾는 이유였고, 그곳에 화구를 두고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작은섬’ 절벽으로 몰려드는 파도를 그린다는 것이었다.


잠시의 대화를 마무리하려는 듯 해암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여름볕에 검게 그을린 얼굴에 작은 베레모를 걸친 해암의 손은 능숙하게 다시 ‘작은섬’으로 몰려드는 파도를 마무리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화가가 소리를 그려내기 위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을 생각도 없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소년이 없다고 한 파도 소리를 그려내기 위해, 자신이 듣지 못하는 자연의 소리를 그림에 넣기 위해 오늘도 쑥섬을 찾아와 ‘작은섬’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알고 있으리.


그 소년이 바로, 당신과 조금 전에 대화를 나누었던 나였음을.




서양화가 해암


섬으로 드는 길목에서 해암*을 만났다. 그림 한 점 건네주었더니

호가 무어냐고. 화가가 호 하나 없어서 되겠냐며 해서 얻은 수석

한 점 해암海岩. 밀물이 석양처럼 드는 밀물다방 파도소리를

그리고 앉았다 소리도 듣지 못하면서. 평생을 쑥섬만을 그리고

앉았다 나로도 본섬은 앞에 두고. 뜨네기 손님 공짜 커피 한 잔에도

나로도항 인심은 아직 살아 있다며 가슴 한껏 부풀린 파도소리 해암.

파도만 그리면 되었지 무엇으로 파도 소리까지 그리려 하냐면.

나는 예술가이기 때문이요 예술가. 허공에다 소리를 그리고 있다.

이제는 소리조차 파도 같은 서양화가 해암.


*서양화가 해암 : 해암 최주휴이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 하였고 어렸을 때 뇌막염으로 청각을 잃고 평생을

고향 나로도와 쑥섬을 그려오고 있다.


- 출처 : 필자의 1990년 출간한 제1시집 '돌부처 도서관 나서다' 중



2014년 서울 광화문 근처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 가족들과 함께 방문해서 찍은 한 컷이다.
개인전에 출품한 대부분의 작품이 쑥섬에 대한 그림이었다.
해암 화백께서 평생을 두고 그려온 작은섬 전경이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