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이야기(91)

쑥섬 은행나무

by 명재신

쑥섬 은행나무



'쿠우웅~!'


갑자기 집 뒤에서 육중한 몸집을 가진 무언가가 땅으로 꾸웅 하면서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태풍 매미는 밤 열한 시를 넘어서면서 더욱 비바람이 심해지고 쑥섬을 집어삼킬 듯이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그해 2003년도 가을에 모처럼의 연휴를 맞아 추석을 쇠러 멀리 울진에서 운전을 해와서 쑥섬에서 들어와 있었습니다.


'나가 봐야겠다'


조금 전에 마당으로 넘쳐나는 빗물을 배수하기 위해 배수구에 막혀 있던 나뭇잎들을 건져내고 태풍해일로 바닷물이 대문을 밀치고 들어오고 있는 상황을 걱정하면서 방으로 들어와 있던 참이었습니다.


어머니를 비롯해서 가족들은 잠을 못 이루고 옹기종기 얼른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원하고 있었습니다.


'나가지 마라'


어머니가 말렸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강풍과 폭우가 무섭도록 달려들고 있었고 태풍해일이 이제 막 정점으로 향할 것이어서 방안에 있어야 안전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뒤안 감나무가 성한 지 좀 보고 와야겠습니다'


그래도 무언가 잘못되어 있을 것 같아 굉음의 정체를 확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랜턴을 켜들고 우의를 챙겨 입고는 집 뒤안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무래도 집 뒤에 있는 오랜 고목인 감나무가 잘못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하지만 감나무는 무사했습니다. 어마무시한 태풍의 위세에도 당당하고 굳건하게 몸체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다 굵은 감들이 무수히 감나무 아래에 떨어져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얼른 은행나무 쪽으로 불빛을 비춰보았습니다.


은행나무였습니다.


커다란 굉음을 내면서 땅을 진동하던 소리의 실체가 어둠 속에 드러났습니다. 은행나무가 넘어져 있었습니다. 허리 부분이 꺾여 두 동강이 난 커다란 은행나무가 동각샘 계단 길에 넘어져 있었습니다.


아찔했습니다.


'니가 우리 가족을 살려 주었구나'


저 커다란 은행나무가 바로 옆에 있는 우리 집으로 넘어졌다면,


저는 두 손을 모아 합장 하고서는 우리 집 쪽으로 넘어지지 않고 동각샘으로 올라가는 계단길로 넘어져 땅으로 누운 은행나무에게 다가가서 연신 허리를 굽혀 절을 했습니다.


'고맙고 감사하요, 고맙고 감사하요.'


새마을 운동의 상징으로 심겨진 은행나무는 늘 저에게는 쑥섬을 바라다보며 함께 키를 키우며 더 높은 곳으로 향하라고 응원을 하고 격려를 해 주던 나무였습니다.


당시 쑥섬마을 이장이었던 박선동 어르신께서 심었던 은행나무는 쑥섬에서 나고 자란 쑥섬 아이들에게 높은 기상을 심어주고 마을은 은행나무와 같이 건강하고 풍요로운 시절이 도래하기를 기원하면서 심겨졌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 뼘이라도 아쉬운 남새밭 자리를 차지하고서 키를 키우고 덩치를 키우던 쑥섬 은행나무는 뜻하지 않은 일로 수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태풍 매미가 있던 해에 쑥섬을 비롯하여 남해안에는 극심한 봄과 여름 가뭄으로 마을회관(쑥섬에서는 동각 洞閣이라고 함) 위에 있는 '동각샘'마저 물이 말라버렸습니다.


식수가 고갈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마을에서는 '동각샘' 바로 아래에 있는 우람한 은행나무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은행나무가 동각샘 물을 다 빨아먹는다'


제한급수까지 이르게 되자 그런 가뭄에도 청청하게 은행나무 이파리들이 반짝이는 품세를 보고는 마을사람들은 식수가 말라 애가 타는데 은행나무만 기세등등하게 키를 키우고 있다며 은행나무가 뿌리를 '동각샘'으로 뻗어 샘으로 들어와야 할 물을 다 빨아먹어서 생전 마르지 않던 '동각샘'물이 마르고 있다고 의심을 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결자해지라고 했으니 심은 사람이 책임을 지소!'


마을에서는 당초 은행나무를 심은 당사자에게 은행나무가 더 이상 쑥섬마을의 생명수 같은 '동각샘' 물을 고갈시키지 않도록 '처리'할 것을 주문을 했고 당사자는 고심 끝에 은행나무 허리 즈음에 은행나무 껍질을 벗겨내어 고사시키기로 결단을 했다고 했습니다.


우선 위를 고사시키고 난 뒤에 베어 내겠다는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누명을 쓴 은행나무가 허리 위 부분으로 영양분을 보낼 수 없게 되면서 위 부분은 조금씩 부실해져 갔고 껍질이 벗겨진 부분으로 많은 양의 진물을 흘러 보내는 모양을 보고서는 진저리를 쳐야 했습니다.


함께 키를 키우며 뜻을 높게 세웠던 은행나무는 객지에서 쑥섬으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늘 장대한 키와 윤기 나는 이파리들로 우리들을 환대하고 그간의 노고를 다독여 주던 나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극심한 가뭄이 괜한 은행나무에게 화가 미친 것을 보고는 너무나 안쓰러워 그 나무 아래에 가서 샘을 목숨보다도 소중하게 여기는 쑥섬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라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대한민국 기상 관측 역사상 가장 강력한 태풍 중 하나로 기록되고, 남부 지방에 막대한 피해를 남긴 태풍 매미가 남해안으로 상륙을 하면서 굳건하던 은행나무는 가뭄이 남긴 상흔으로 껍질이 벗겨진 허리 즈음이 꺾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2003년 9월 13일, 남해안에 상륙한 태풍 매미(Maemi)와 이 이전의 극심한 가뭄은 그렇게 커다란 상처를 쑥섬 은행나무에게 남기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금은 그래도 남은 밑동에서 자란 곁가지들로 외형으로는 무성한 것 같으면서도 원 줄기를 잃고 살아가고 있는 쑥섬 은행나무가 바로 우리 가족을 살린 생명의 은인인 나무인 것입니다.


이제 가을이 되면 거기 쑥섬 마을회관 뒤에 노오랗게 은행잎이 물들어 찬란한 세월을 염원했던 시절을 그리며 아무런 내색 없이 이파리들을 내어 놓고 쑥섬을 찾는 만인들을 맞이하고 있을 '쑥섬 은행나무'에게 눈길이라도 한번 해 주시옵길 바랍니다.


'고맙다 은행나무야'



동각샘 은행나무


허리가 잘리운 동각샘 은행나무가

다시 키를 키우고 있어요


박선동 어른 젊을 적 새마을지도자로 한창 잘 나가던 시절

초가지붕 동각도 슬라브로 개축하고 마을길도 넓히면서

은행나무 한 쌍을 동각샘 아래 심어 쑥섬을 일으켜 세우려

했지요 새마을운동도 꺼져가고 모두 서울로 부산으로 떠나가고

빈집만 늘어가고 동각샘물 훔쳐 먹는다고 키 닿는 데까지 껍질을

벗겨서 그만 죽어 넘어가라고


죽지 못해 살아 있는 은행나무 그래도 안쓰러워 잘 견디라고

장하다 장하다 살아 있어서 찾아 올 적 마다 어루만져 주었더니

큰 태풍 바람에 고단한 목숨 줄을 놓을 적에 그래도 우리 집 지붕으로

넘어지지 않아 우리 식구 목숨 구완해 주었으니 다시 찾아 큰 절을

올렸습지요 감사하고 고맙다고.


남은 밑동만으로 남은 생을 위해 다시 가지를 내고 있어요.


- 출처 : 제4시집 '쑥섬이야기' 중 페이지 92


태풍 매미로 허리가 꺾인 은행나무가 우리 가족을 살려 주었습니다. 고맙고 감사한 나무입니다.


고마운 은행나무가 커다란 상처를 딛고 다시 의연하게 키를 키우고 있습니다
고향집 뒤에 살아남은 둥치로 키를 키우고 있는 은행나무입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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