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의 장례방식인 '삼경제(三更祭)'
지금이야 사라진 장례문화이지만 쑥섬에서는 '삼경제'라고 하는 출상 전날 밤에 행해지던 전야제가 있었습니다.
삼경이란 아시다시피 한국의 전통적인 시간 개념에서 밤 시간을 여러 경(更)으로 나누어 특정 행위나 의례를 행하도록 하는 시간대였습니다.
우선 일경(一更)/초경(初更, 저녁 7시-밤 9시)에는 '가족들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고,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시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경(二更, 밤 9시-밤 11시)에는 '가족들이 취침 준비를 하고, 아이들에게 잠자리에 들기 전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이며 군사적으로는 성 안팎을 경계하고 순찰하는 시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삼경(三更, 밤 11시-새벽 1시)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례를 행했다'라고 하는 시간대로 불교나 도교에서는 명상과 기도를 위한 시간으로 삼경을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삼경제(三更祭)'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없어서 자라면서 듣고 보았던 기억들과 출향인 여러분의 도움과 참고문헌 등을 참고로 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쑥섬에서는 어느 집에 초상이 나면 첫째 날부터 초상집으로 드는 골목으로 등을 내어 달았습니다.
돌담으로 되어 있던 골목길의 좁고 어두운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집집마다 등을 켜들고 나와서 망자가 저 세상으로 떠나가는 길을 밝혀 주었습니다.
망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곡소리가 담을 넘어 '골무삭/골목길'으로 퍼져 갈 즈음에는 그보다도 더 커다란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돼지 잡는 소리였습니다.
저희들 어릴 적에는 집집마다 개와 닭은 키우지를 않았지만 어쩐 영문인지 돼지는 키우게 했습니다.
언제부터 돼지를 키우게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대소사에 쓸 마땅한 고기로는 생선은 흔하였지만 육고기로서는 돼지가 가장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했기에 적어도 한 집 건너 한 집은 돼지우리를 두고 돼지를 키웠는데 쑥섬에 초상이 나면 그중에 한 마리를 잡아 장례 음식으로 쓰도록 했습니다.
쑥섬 돼지들은 쑥섬에 초상이 나면 함께 초상을 치루는 날이었던 셈입니다.
'삼경제(三更祭)'는 일부 남도 도서지방과 쑥섬에서 이루어지던 전통 장례방식으로 밤을 세 구간으로 나누어 발인을 위하여 준비하는 시간과 고인을 위한 제사를 올리는 의례를 말하였습니다.
초상이 나고 둘째날 저녁에 이루어졌는데 고인의 혼을 달래고, 유족의 슬픔을 정리하며, 공동체가 함께 애도하는 심야의 장례 의식이었습니다.
'일경이요~'
일경(一更)은 저녁 7시가 되면 삼경제 주관하는 문중 어른이 '일경이요' 하면서 커다란 외침을 하면서 시작을 알렸습니다.
첫째 날 저녁에 염습을 자주 해보았거나 잘 아는 어르신이나 할머니가 상주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망자가 운명하실 때 입고 있던 옷을 벗겨내고 시신을 정결히 씻겨서 수의를 입혔던 망자에게 삼경제를 지내는 둘째 날 저녁에는 입 안에 쌀·엽전·구슬을 넣는 반함(飯含)을 진행하고 혼백을 모시는 영좌를 설치하며, 장례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더러는 쑥섬에서도 망자가 사후 경직이 이루어지기 전에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 대체로 삼경제를 지내는 날 저녁에 이를 진행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여러 지방에서 행하여졌던 반함(飯含) 예식 또한 쑥섬에서도 행해졌으며, 엽전이나 구슬을 넣는 경우도 일부 존재했다고 합니다만 문헌에서만 살펴지는 내용인지라 쑥섬에서는 지역적·물질적 여건에 따라 조금 변형된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쌀은 저승에서 굶지 않도록 하고 생명의 상징이었으며 엽전은 저승길의 통행료로 사후 세계에서의 재물을 넉넉하게 챙겨드리는 의미였으며 구슬은 정화와 빛, 영혼의 맑음과 고귀함을 위해 넣는다고 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엽전(古銭)이나 구슬(珠玉)을 입안에 넣는 것이 이상적인 예법이었지만, 1970~80년대 도서지방에서는 실제 엽전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현행 동전(10원, 50원 등)이나 아이들이 갖고 놀던 작은 유리구슬을 대신하였으며 쑥섬에서는 대추나 쌀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차마 입이 비어 있게 하지 못해, 맛있고 깨끗한 것으로 채운다”는 정서가 핵심이었기 때문에, 형식보다 마음이 중요시되었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삼경제 중 일경(一更)은 장례의 마지막 밤을 여는 시간으로, 고인의 영전에 초전(初奠)을 올리는 중요한 예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때의 절차는 고인을 예우하고, 혼을 맞이하는 의례적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이경(二更)이요'
밤이 깊어지는 시점인 오후 9시가 되면 장례 주관을 진행하는 문중어른은 커다란 소리로 그렇게 두 번째 장을 외쳤습니다.
쑥섬을 비롯하여 나로도, 시산도, 손죽도 그리고 거문도권의 도서지방에서 삼경제 중 이경(二更, 밤 9시~11시경)에 진행되던 장례 예식은 소렴(小斂)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시간은 고인의 시신을 정리하고, 관에 안치하기 위한 준비가 본격화되는 심야의 정리 의례였습니다.
고인이 안치되어 있던 집안의 큰방에서는 감쌀 베와 이불, 염포(염습용 천)를 펼쳐 준비하였습니다. 상주와 상복을 입은 직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평소 염을 주관하던 문중 어르신들이 직접 베를 꺼내고, 염포를 손질하며 정성을 다하여 준비를 하였습니다.
이불은 고인이 생전 사용하던 것을 쓰는 경우도 있었고, 새 천을 준비하는 집도 있었습니다.
소렴(小斂)은 망자를 싸고 정리하는 것으로 직사각형 형태로 정리하여 염포로 감싸는 절차를 말하였습니다.
이때 빈 곳을 모두 채워 망자의 시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쑥섬에서는 방에서 돗자리를 깔고, 상주와 상복을 입은 직계 복인들이 둘러앉아 조용히 시신을 감싸는 것을 애도하였습니다.
이때부터 '복인 곡례'라 하여 슬픔을 나누는 시간으로 상주와 복인들이 시신에 기대어 곡을 하였습니다.
쑥섬에서는 곡을 하며 고인의 생전 이야기를 나누는 풍습도 있었고, 문중 할머니들과 일가친척들이 함께 곡을 돌아가며 도와서 종일 서럽게 우느라 지친 상주와 복인들의 울음소리가 대문 밖에까지 나가도록 했습니다.
염을 다하고 나면 소렴전(小斂奠)이라 하여 혼백 앞에 간단한 제물(밥, 국, 술, 나물 등)을 올렸습니다. 이 제사는 고인이 관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인사로 여겨집니다.
쑥섬에서는 쌀밥과 마른 멸치, 김치, 술 한 잔으로 소박하게 차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소렴전이 끝이 나면 마당 한쪽에 덕석을 넓게 깔아놓고 상여소리를 연습하였습니다.
'당군(堂軍 또는 擔軍)'이라 하여 상여를 둘러메는 상여꾼들과 상여소리를 주관하는 '상두(喪頭) 또는 상여소리꾼'이 마당을 채우고 상여소리를 시작하였습니다.
출상을 하는 날 상여를 직접 맬 '당군/상여꾼'들이 모두 나와 자리를 정하고 그 순서대로 둘러서서 상두가 첫소리를 부르면, 당군들이 상여틀을 직접 메고 마당을 돌며 '허노 허어노 어나리 넘자 너와 여' 하면서 상두꾼의 선소리를 받아서 후렴 소리로 따라 했습니다.
상두(喪頭)는 단순한 역할자가 아니라, 쑥섬에서 장례의 정서와 흐름을 이끄는 상징적 인물이었는데 주로 같은 집안의 어른이었던 명섭재 어른이 이를 맡았습니다. 학식이 풍부하고 이전에 상여소리를 많이 해 봤던 분으로 고인의 삶과 마을의 슬픔을 구성진 목소리로 잘 풀어내는 인물이었습니다.
상여소리는 즉흥성과 반복이 섞인 구조로, 고인의 생전 이야기, 가족, 마을 풍경이 노래 속에 녹아들었으며 주로 고인의 생전 생애를 잘 아는 같은 쑥섬의 어르신이어서 주변 사람들이 망자의 생전 모습을 함께 들으면서 곡소리를 키워 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서 온 생애를 구성지게 엮어내었으며 상여소리의 가락과 흐름을 알고 '당군'들의 무거운 어깨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잘하였던 분이었습니다.
상여소리꾼들이 목이 잠길 즈음 중간중간에는 푸짐하게 상을 내와서 당군들이 힘을 내서 소리를 계속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술이 들어가면 아무래도 상여소리꾼들도 함께 구슬픔이 더해져서 후렴을 하는 소리도 망자를 위로하는 소리로 바뀌어져 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외갓집이 있는 내나로도 소영부락에서는 외할머니가 96세에 돌아가셔서 백수를 누렸다 하여 소영마을에서 풍물을 이는 풍물꾼들이 장고와 북을 가져와 치면서 춤을 추며 놀았는데 이때가 바로 이경에 이루어졌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쑥섬에서도 망자가 백수를 누린 경우에는 '호상'이 났다 하여 이경을 지내는 중간에 마을 할머니들 중에서 여러분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경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이때에도 소영마을에서와 같이 북과 장고를 함께 쳤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삼경(三更)이요'
자정 무렵인 밤이 깊은 11시 ~ 오전 1시가 되어 삼경제의 마지막 고요한 작별의 시간이 준비되었습니다.
이 시간에는 대렴(大斂)을 중심으로 고인을 관에 안치하고, 세상과의 이별을 완성하는 마지막 절차들이 진행되었습니다.
대렴은 입관식을 진행하는 절차였습니다. 관 안에 짚, 베, 향, 종이, 숯 등을 넣어 정결하게 마련하였습니다. 관 내부에 고인의 생전 물건(베개, 옷, 손수건 등)을 함께 넣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시신을 관에 안치하는 대렴(大斂) 의식은 소렴으로 싸둔 시신을 관 안에 정중히 안치하고 시신의 위치와 자세를 정갈하게 정리하고, 관 뚜껑을 덮었습니다.
쑥섬에서는 관을 닫기 전, 상주와 복인들이 함께 마지막 곡을 올리고, 마을 어르신이 “이제 보내자”는 말을 건네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제사인 대렴전(大斂奠)을 관 앞에 올렸습니다. 밥, 국, 술, 나물 등 간단한 제물을 올리고, 고인의 혼을 위로하였습니다.
이 제사는 관이 닫힌 뒤 올리는 마지막 인사로, 고인의 넋이 편히 떠나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쑥섬에서는 마당에 상여 앞에 덕석을 깔아 놓고 촛불과 향을 피운 채 조용히 절을 올리는 풍경도 이어졌습니다.
삼경제의 마지막 절차는 관 봉함과 상여 준비 마무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관을 끈이나 못으로 봉함하여 외부와의 연결을 끊었으며 고인을 세상에서 완전히 떠나보내는 순간이었습니다
슬픔이 침묵으로 바뀌고 쑥섬마을에서 고요히 작별을 준비하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상여꾼들과 기나긴 삼경제를 함께 한 조문객들에게는 국수와 수육을 돌리면서 밤샘하는 허기를 채워 주었고 이후 상여에 관을 올릴 준비를 마치며, 출상 당일 새벽을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쑥섬에서 이루어지던 삼경제는 마무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본마당/보리마당'에서 발인제(發靷祭)
출상을 하는 당일날은 동네마당인 '본마당/보리마당'에서 발인제(發靷祭)를 진행하였습니다.
동네마당에 혼백을 모시고 제물로 밥, 국, 술, 나물, 생선 등 간소하지만 정성스러운 상차림을 하여 상주와 가족들이 절을 올리고, 마을 어르신들이 곡례를 함께 하였습니다.
상여를 메고 동네마당을 돌면서 상여소리와 함께 '마당놀이'는 '상두잡이'로 명섭재 어른이 선소리를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군/상여꾼'들이 후렴소리를 하면서 쑥섬에서의 마지막 여정을 동네마당에서 망자의 평생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보냈습니다.
호상의 경우에는 '방장수(放杖壽)'라고 하는 춤을 추는 허수아비를 상여 앞에 얹어 발인제(發靷祭)를 하는 당일날 아침에 상여소리와 함께 춤을 추게 하였고 동네 할머니들이 덩실덩실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고인이 백수(百壽)를 누리고 평온히 세상을 떠났을 때, 마을 전체가 슬픔보다는 경사와 존경의 정서로 장례를 치뤘던 특별한 의례였습니다.
이때 상여 위에 올리는 춤추는 허수아비 '방장수'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고인의 삶을 축복하고 저승길을 흥겹게 보내는 상징적 존재였습니다.
쑥섬에는 무덤을 쓸 수가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망자를 태운 꽃상여는 동네마당에서 쑥섬사람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의식인 발인제를 마치고 나룻배에 실려서 쑥섬을 떠나갔습니다.
어쩌면 쑥섬과 나로도항이 있는 물목이 망자들에게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로 여겨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꽃상여를 태운 나룻배는 쑥섬에서 곧장 나로도항으로 가지 않았고 쑥섬을 온전히 한 바퀴를 돌며 망자가 평생을 살아나온 쑥섬을 둘러보게 하였으며 상여소리를 내면서 이승에서의 마지막 바다를 건너게 해 주는 마지막 예를 갖추고 난 뒤에 머나먼 길을 떠나가게 했습니다.
삼경제*
길잡이었제라 망자가 저승 가는 길
남은 사람들 이승 가는 길
집집마다 등을 켜들고 나와 초상집으로 드는 돌담길
가는 길목 돌담에 매달아 밤새 망자의 저승 길 밝혀주던
일경이요, 이경이요, 삼경이요
추운 겨울 집집마다 십시일반
머든지 가져와서 아까운 죽음에는
울음으로 슬픔을 함께 하고
백수를 누렸거든 방장수를 내어 걸고
상여소리도 흥겨웠제라
삼경이요 하고 먹던 국수 한 그릇
그 추운 겨울에 먹던 돼지 수육 한 점으로
어지러운 세상 든든하게 살아가고 있제라
이국에서 험한 세상 길 헤쳐 나가고 있제라
*삼경제 : 쑥섬에서는 초상이 나면 출상 하루 전날 삼경까지 전통방식으로 ‘삼경제’를 지냈었다.
출처 : 2021년도 출간된 제4시집 ‘쑥섬이야기‘ 중
후기 :
'삼경제'에 대한 저의 시는 쓰여진 지가 10여년이 되어 갑니다만 이를 산문형태로 작업을 수차례 거듭하면서도 완성할 수 없었습니다.
저가 직접 '삼경제'를 주관하거나 진행하였던 적이 없어서 쉽게 구체적인 절차를 포함하여야 하는 '삼경제' 산문을 오랫동안 완성을 미뤄왔던 것이며 또한 '장례'라는 소재가 독자들이 쉽게 읽는 소재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쑥섬이야기 100편을 향해 가고 있는 마지막 단계에서 그래도 쑥섬의 중요한 문화자산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였기에 이를 마무리해야겠다고 이번 주 목요일(9/25)에 연재순서로 넣어 놓고 있었는데 지난 주말, 문중의 대종회에 장례문화에 대한 글이 올라왔기에 그동안 모아놓은 자료와 구술내용을 토대로 작정하고 연재 순서를 당겨서 지난 일요일 서울 집으로 올라가는 대신 당진 숙소에서 이 글을 정리하여 어제 글을 올렸습니다.
상례문화라는 것이 개인의 기억과 지역과 시기와 문중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특히 이번 글은 저 개인의 기억과 쑥섬에서 나고 자란 출향인들의 구술에 의존하고 저가 가지고 있는 순천대학교 발간 '남도문화연구 나로도편'과 1980년도에 구입해서 가지고 있는 '뿌리깊은나무_전라남도'에서 참고한 남도 장례문화에 근거하다보니 실제 쑥섬에서 이루어졌던 삼경제와는 아직 다른 부분이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어 앞으로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내용이 확인이 되면 위의 글들은 지속적으로 보완을 해 나가서 '쑥섬에서 이루어졌던 삼경제'를 다듬어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미뤄만 오던 '삼경제'의 글을 작심하고 쓸 수 있게 동기를 주신 구독자님들과 여러 종친님들과 그리고 심천의 명경식 종친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5. 9. 22 당진에서 명재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