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불 이야기
도깨비불 이야기
도깨비불은 있기나 하는 걸까요?
어릴 적에 쑥섬 우끄터리 초분골에서 자정 무렵에 보았던 그 불들은 무엇이었을까요?
참 재미있는 기억입니다.
저희 형제는 여전히 그날 자정 무렵 우끄터리 초분골 근처에서 보았던 도깨비불 이야기를 할라치면 저절로 눈에 불이 켜집니다.
도깨불을 보았냐고요?
그렇습니다. 삼 형제가 함께 보았습니다.
삼 형제는 지금이라도 도깨비불을 보았던 곳과 장소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려치면 소름이 먼저 돋는 것을 느낍니다만 늘 재미있게 그 이야기들을 하곤 합니다.
어쩌면 평생을 이야기 해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씌었던지 여름날 밤에 우리 형제와 사촌동생이 뭉쳐서 그날 밤에 등불 하나에 의존해서 삼 형제는 어두운 밤길을 나섰습니다.
목적지는 '노루바구'였습니다.
'노루바구'는 쑥섬의 최북단에 있는 너른 반석으로 그곳에서 '도른바구'에 걸쳐서 '삼마이 그물'이라고 하는 그물을 걸쳐놓으려고 대나무 낚싯대 두 개와 갯지렁이를 담은 깡통과 70년대에 흔했던 등유 심지에 불을 켜는 등을 하나 들고 삼 형제는 집을 나섰습니다.
'우끄터리는 밤에 가는 것이 아니다'
할머니가 저희 형제들의 움직임을 간파하고 아무래도 손주들이 '우끄터리'라도 돌아갈까 봐 미리 가지마라고 했습니다만 삼 형제는 선창에서 밤낚시를 한다고 하고서는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던 겁니다.
'우끄터리'에는 '초분골'이라고 해서 지금의 '동백꽃길'로 불리는 그 울창한 원시림 속에는 '애기무덤'인 '독단불'이 많이 있었고 거기에는 초분이 그때까지 있었기 때문에 쑥섬사람은 누구라도 밤에는 그쪽으로 돌아가는 것을 꺼려했었습니다.
더러는 지금의 '쌍우물'인 '우끄터리 샘'으로 물을 길어 가거나 이른 새벽에 빨래를 하러 가는 '엄씨/아주머니'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겁이 없었던 삼 형제는 작은 석유등 하나에 의존해서 여름날 밤을 가르며 칠흑 같은 '우끄터리 초분골' 길의 밤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겁도 없이 '우끄터리'의 초분골을 지나 '옹삭한/까다로운' 바윗길을 지나 '통안'에 있는 '노루바구'까지 가게 만들었을까요?
'노루바구'와 '도런바구' 사이를 '통안'이라고 해서 U자 형의 공간에 '삼마이그물/삼중망'을 '한 폭/그물의 단위'을 걸쳐놓으면 밤 사이에 거기에는 제법 실한 물고기가 걸려들었기 때문에 '자장궂은/좀 유난한' 삼 형제는 종종 거기에서 재미를 보았기에 여름방학의 기나긴 날을 그냥 지나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등불 하나에 의존해서 어떻게 '삼마이 그물'을 놓았을까요? 미끄러운 갯바위를 디뎌가며 '통안'의 이쪽과 저쪽을 가로질러서 그물을 놓고서는 의기양양하게 콧노래까지 부르며 다시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실은 삼 형제는 '통안'에서 그물을 놓고서 돌아오는 중에 뭔가 '싸아'한 느낌을 받고는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지고 간 대나무 낚싯대로 '새집앞끄터리'라고 하는 최북단 바위켠에서 밤에 갯가로 붙는 농어나 감성돔을 좀 겨냥해 볼 요량이었는데 웬일인지 동생들이 그냥 돌아가자고 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가며 더듬거리며 '우끄터리 초분골' 초입에 도달하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저의 눈에 왠 불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던 겁니다.
'저기 저'
처음에는 당시에 쑥섬에 흔하였던 반딧불인 줄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불의 크기가 반딧불의 크기보다는 더 컸고 그것들의 움직임이 조금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초분골 초입의 팽나무 켠에서 놀더니 이내 그 아래에 있는 둠벙으로 내려와서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다시 셋이 되더니 뭉쳐졌다가 나눠졌다가를 하면서 저희들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불이다, 불!'
동생들은 형이 놀라게 하려고 그러는 줄 알고는 '장난하지 마씨요' 하다가 저가 가리킨 쪽을 건너다보더니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저리가라 저리 가!'
그 불들은 저희가 있는 둠벙 앞에까지 다가와서 그 앞에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불은 세 개로 나뉘어 움직이며 저희 쪽으로 왔다가 다시 둠벙을 넘어 팽나무 초분골 쪽으로 올라가서는 거기에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큰 불의 크기는 어른 머리만 했고 다른 두 개의 불은 주먹만 한 푸른 불덩이 었습니다.
'도깨비불이다~~!'
삼 형제는 그 자리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필름은 거기에서 끊겨 있었습니다. 눈에 쌍불을 켜고 어두운 밤길을 허둥지둥 건너오느라고 그 시간들이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저만 그런 것이 아니었고 뒤따라 왔을 두 동생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억이 나는 것은 우끄터리 길을 건너 마을 골목길을 지나 '본부당/동네마당'에 들어오고서야 의식이 돌아와서 화안한 건너편 '안몰짝'의 불빛을 보고서야 '살았다'고 안도하였던 그 막간의 시간이었습니다.
때마침 '안몰짝/아랫마을'의 동네마당에서는 전날 임종하신 교감어른의 '삼경제'가 진행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아이고야 그것이 교감어른의 혼불이었는갑다'
할머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들이 사색이 되어서 숨을 몰아쉬며 '우끄터리 도깨비불' 이야기를 했더니 '우끄터리 가지 말라고' 다짐을 했는데 다녀왔다고 야단을 치는 대신에 무사하게 어둠 속에서 빠져나온 세명의 귀한 손주들을 끌어안고 그러셨습니다.
'인자는 떠나가시는 모냥이다'
할머니는 담담하게 그 불은 교감 어른의 혼불일 거라고 하면서 이제는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려나 보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길에서 니들을 만나고 가실라고 하셨는갑다.'
할머니의 그 담담하던 모습과 그 마당과 그리고 땀으로 흠뻑 젖어 있던 우리 삼 형제의 모습이 또렷하게 기억이 되는 밤의 도깨비불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전날 돌아가신 교감어른의 마지막 혼불이어서 정말 봉래초등학교 제자였던 우리 삼 형제에게 이승에서의 마지막 인사라도 하렸던지 '초분골'에 묻혀있던 '애기무덤'인 '독단불'에서 아이들의 혼불이 삼 형제들과 놀고싶어서 나왔던던지 아니면 정말 도깨비불이 있어서 우리 삼형제하고 씨름이라도 하려고 달려왔던지 알 수 없으나 덩어리로 달려들던 푸른 인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기억으로 해서 우리 삼 형제는 늘 눈에 쌍불을 켜고 그 옛날 쑥섬 '우끄터리'에서 보았던 '도깨비불'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나게 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세상에는 '도깨비불'이 아직 있는 걸까요?
저는 그것이 궁금합니다.
도깨비불
그 시절에는 도깨비불도 참 흔했었지
혼불이었던지 도깨비불이었던지
밤마다 별똥 찾는 거 보다
진터 산 도깨비불 찾는 것이 더 흥미진진 했겄다
교감 어른 돌아가시던 날 여름 날 언제
어둔 밤 초분골을 지나 겁도 없이
노루바구에 그물 놓고 돌아오던 길
우끄터리 초분골 초입 팽나무 한 그루 있는 둠벙에
왠 푸른 불 두엇 휘익 휙 가까이 혹은 머얼리
왔다가 갔다가 하였었지
저리가라 저리가 훠이 훠이 손 내저어도
도무지 멀어지지 않고 주변을 빙빙 돌기에
아이고야 이거시 무엇이다냐 초분골 도깨비인갑다
걸음아 날 살려라 내 혼도 거기 두고 뛰었지
어떻게 집에까지 왔는지 손에 든 것 모두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그예 도깨비불이 내 눈 속에 들어와 불을 켜고 있었네
- 출처 : 제4시집 '쑥섬이야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