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섬 이야기
'작은섬 이야기'
오늘도 묵묵히 불을 밝히고 있는가?
어둔 밤바다에서 바닷길을 잡아주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으리. 아무도 찾지 않는 날들을 견디며 오늘도 하얗게 새하얗게 하루를 서 있었는가.
이름 하나도 제대로 얻지 못하고 '큰섬'인 쑥섬의 서자로서 살아온 '작은섬'에 붙어서 오랜 시간을 밤에만 불을 밝히는 등대가 서 있는 섬.
등대지기도 없이.
'작은섬'에 붙어서 '서바닥'으로부터 밀려드는 파도를 막아서느라 늘 왼쪽으로는 허구헌날 하얗게 포말로 뒤집어지고 오른쪽으로는 진한 뻘로 가라앉고 있는.
'작은'이라는 접두어에는 숨어있는 슬픔 같은 것이 느껴진다. '장자'가 아닌 이유로 '본가'로부터 분리되어 언젠가는 집을 떠나야 하는 것을 안고 있는 숙명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의미 있는 이름조차도 없다. 큰섬은 '쑥섬'이라는 번듯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작은섬'은 이름조차도 없다.
그냥 '작은섬'이 그 이름이다.
어찌하여 지금까지 이름 하나 붙여주지를 않고 그냥 '둘째'아이로만 부르는 것을 감내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사람조차 살지 않는 섬.
무인도에 붙어서 온 밤을 새하얗게 지새우고 있는 '작은섬 방파제 등대'는 그래서 오늘도 외롭다.
그나마 바닷물이 빠지면 쑥섬과 하나로 이어져 있다가 밀물이 들어와 바닷물이 만조가 되면 다시 둘로 나뉘어 섬이 되어오던 곳.
그래서 바깥쪽으로 천길 낭떠러지를 키워냈던가.
해암 화백이 평생을 두고 천착하여 오던 그 절벽, '솔밑애'서는 부엉이 한 마리라도 깃을 틀었으면 여한이 없었으리.
죽어서야 사는 섬.
큰섬인 쑥섬에는 묘를 쓰지 못하게 엄하게 하면서도 '작은섬'에는 알게 모르게 묘를 쓰더래도 눈을 감아 주던 섬.
이제는 그 묘들조차 파묘되어 없어지거나 남아있던 몇 기의 묘들은 찾는 이 없어 무연고 묘가 되어 버린 섬.
그래도 등대지기 하나 없이 불을 밝혀주는 '작은섬 방파제 등대'가 있어 덜 외로웠으리.
필요할 때에만 찾아오던 쑥섬사람은 그나마 작은 밭뙤기라도 있어서 물이 빠지면 걸어서 뭐라도 일궈먹으려고 찾아들었으니 인기척이라도 느낄 수 있었을 것인데 지금은,
하다못해 건넛마을 '엄남마을'에 살던 동창들이 몰래몰래 건너와 고구마 서리라도 할라치면 조류가 거센 물목을 다시 건너갈 수 있을까 싶어 조마조마하던 섬.
커서 오대양 육대주를 넘나드는 상선의 선장이 되겠노라고 호언장담을 하던 사촌형이 상선 선장은 되지 못하고 원양어선을 타다가 잠시 휴가차 나와서 함께 쑥섬을 찾어와 사촌형제가 기념할 곳을 찾아 모처럼 건너와 사진 한 장을 찍어 남기던 곳.
누구라도 쑥섬에 모처럼 찾어들면 그래도 그리워서 찾어와 안부를 건네주며 사진을 찍던 곳
그래도 그때가 호시절이었으리.
'작은섬 노랑바구'에 '메추리/모래무지'라도 몇 낚을 요량으로 대나무 낚싯대를 들고 찾아들어서는 새끼손가락만 한 '메추리' 두어 마리 낚아 들고는 '오늘도 사바리 했다'라고 구시렁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던 형제들의 목소리조차 그리워지랴.
기분이 내키면 나룻배를 타고 건너와 하루를 질펀하게 풍물을 일어 화전놀이를 하면서 올 한 해 출어를 한다고 신고식을 하던 섬.
살아있는 것이 복이여.
아웅다웅 하더래도 살아있을 때 어울려야제. 보해소주 댓병을 마다하지 않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화전놀이를 놀이답게 기치를 높이던 곳이어서 한 때는 흥겨웠으리
쑥섬아이들이 설익은 풋사랑을 키우느라 몰래몰래 건너와 하루를 탐하던 '작은섬 방파제'의 뜨거운 날들을 기억하고 있어서 그나마 가슴이 따뜻해지던 섬.
선미야 복이야 은영아. 권희야 영월아 영조야.
함께 건너와 콧노래의 시건방을 떨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던 친구들아.
이제는 부끄럼을 잠시 내려놓아도 되는 그런 시절이어서 쑥섬마을 '본마당'을 벗어나 '작은섬 방파제'까지 따라나서던 여자 동창들하고 그래도 몇 장의 사진을 남겼으니 작은섬 방파제가 아직은 훈훈하다.
부산에서 쑥섬까지 따라나선 여자친구를 데리고 맨처음 사진을 찍던 곳.
'작은섬'이었으니.
어찌 그 시절을 잊으리. 어찌 그 시간이 그리워지지 않으리. 언제 보아도 질리지 않고 언제 들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섬.
오늘도 홀로 순을 틔워 꽃을 피워물고 있을 섬.
모두 객지로 떠나가고 그나마 미역철에 찾아오던 '재만이 형님'도 불귀의 몸이 되었으니 더 이상 찾아드는 사람이 없어져 버린 섬.
어느 해였던가.
서울에서 살던 살림살이를 접어들고 쑥섬으로 다시 귀향을 하여서는 제일 먼저 '작은섬 길'을 다시 낸다고 두어 달을 '작은섬'에서 살았다던 재만이 형님.
'그래도 길은 내주어야지'
다시 칡덩굴로 얽히고설켜져 가던 '작은섬'에 길을 다시 내고 시나브로 '작은섬 방파제'까지 다니며 인기척을 내어주었으니,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으니 그간에는 행복하였으리.
미역철이 되면 치렁치렁 윤기를 내며 쑥섬사람들 왁자지껄하며 건너와 미역을 거둬들이며 올해에도 풍년이라고 풍물이라도 내어주고 가던 '작은섬 방파제'에 오랜 시간 아무도 찾지 않아 하많은 미역들조차도 윤기를 잃고 제풀에 허물어져 바래어 가던 섬.
재만이 형님이 다시 찾아오면서 활기를 뛰던 작은섬 방파제에 미역 데치는 솥단지가 걸리고 그 많던 미역들 거둬들여 떠나간 쑥섬사람들에게 무한공급을 해 주던 섬이 이제는 재만이 형님이 돌아가셨으니 다시 정적만 내리는 섬이 되겠구나.
없던 너구리 가족이 다시 활개를 치랴.
그냥 그대로.
오늘도 불만 밝히면 되는 섬으로 되돌아 가랴.
오는 추석절에 뉘라도 찾아오랴.
가을저녁에 '서바닥'으로 지는 노을을 지켜보려 '작은섬 방파제 등대'에 불이 켜지는 시간에 찾아들면 정말 눈물이라도 나겠다.
아직도 불을 남겨 서바닥으로 나서는 고깃배들에 만선을 기원해 주고 있으랴.
언젠가는 번듯한 이름이라도 하나 건지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