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이야기(95)

'설낶기'의 후예들

by 명재신


'설낶기'의 후예들



쑥섬은 한때 배낚시를 생업으로 하는 섬이었습니다.


적어도 저희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던 1970년대와 중학교를 다닐 때였던 1980년대까지도 쑥섬에는 배낚시를 전문으로 하는 이십여 척이 넘는 배들이 있었습니다.


나로도 주변과 그리고 손죽열도까지 드나들면서 배낚시를 해 왔습니다. 주로 낚는 어종은 감성돔과 농어 그리고 능성어를 낚아서 나로도 수협에 내다 팔았습니다.


배를 타고 하는 바다낚시를 ‘설낶기’라고 하였습니다. 취미나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닌 ‘생업’으로 하는 ‘배낚시’였습니다.


지금이야 배낚시라고 하면 대부분이 취미로 하는, 기본적으로 전용 릴대와 수동 릴이나 전동 릴 그리고 추와 낚시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예전에는 모두 손으로 직접 낚시줄을 잡고 하는 ‘외줄낚시’였습니다.


이를 두고 지금의 낚시용어로는 '외수질 낚시'라고 부릅니다.


낚시줄을 감는 지금의 릴을 대신하여 '허침'이라고 하는 낚시줄을 감기 위해 나무로 만든 얼개를 썼었고 원줄과 목줄 그리고 추와 낚시바늘로 된 구성은 지금과 같습니다만 추는 집에서 직접 만들어 썼습니다. 낚시바늘을 매는 목줄의 길이를 개인의 양팔간격의 길이로 해서 추를 바다의 바닥에 대고서는 양팔간격만큼 들어올리는 '지수'라고 동작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새우미끼를 매단 낚시바늘이 바닥과 닿도록 했습니다.


물속 포인트 재진입을 위해 반복적으로 오르내리며 낚시를 하였는데 이를 두고 '노보리'라는 일본말을 당시까지도 쓰고 있었습니다. 조류를 따라 위에서 아래로 흘림낚시였는데 이는 지금의 선상낚시와 동일한 방식입니다.


미끼는 살아있는 생새우를 썼습니다.


지금이야 양식 새우를 쉽게 공급받을 수가 있지만 당시에는 직접 새우를 잡는 그물을 한 틀씩 가지고 있었고 쑥섬 뒷쪽 바다인 '서바닥'에서 새우를 잡아서 개개의 배에 '물칸'이라고 하는 곳에 살려서 '설낶기' 미끼로 썼습니다. 더러는 살아있는 새우를 구하기 위해 순천만과 여자만까지 다녀오고는 했습니다.


'물칸'은 미끼 새우와 낚은 물고기를 살려두는 곳인데 새우를 살려두는 곳과 잡은 물고기를 살려두는 곳으로 나뉘져 있었습니다. 배의 바닥에 조그만하게 구멍을 내서 바닷물은 드나들되 새우나 물고기는 빠져나가지 못하게 장치를 하였습니다.


대상어종은 다양했습니다만 주종은 감성돔과 농어 그리고 능성어였습니다. 감성돔과 농어는 잡는 동안에는 살려두었다가 저녁에 들어와서는 수협에 경매에 내어놓았으며 능성어는 살려서 팔았습니다. 당시에는 능성어를 살려서 일본으로 직접 실어나르는 배가 주기적으로 쑥섬을 다녀갔기에 쑥섬 앞바다에 커다란 대나무 바구니를 물 속에 넣어 놓고 살아있는 능성어를 수매를 했는데 당시에도 소고기값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팔렸습니다.


나로도권에서는 참돔 종류가 흔하지는 않았고 '서바닥'을 건너가야 하는 손죽열도 주변에서 씨알이 좋은 참돔과 농어를 낚어 올 수가 있었습니다만 당시에는 엔진성능이 지금과 같지를 않았기에 주로 나로도 인근에서 감성돔이나 농어 등을 낚으며 '설낶기'를 많이 했습니다.


겨우내 깊은 바다로 들어가 있다가 회유하는 민어를 곡두여 주변에서 낚기 위해 쑥섬 '설낶기 배'들은 출조를 하기 시작해서 다시 깊은 바다로 들어가는 농어를 낚기 위해 찬바람이 부는 10월 말까지 손죽열도 주변까지 따라가 마지막 한해의 '설낶기' 조업을 마무리 했습니다.


그랬으니 쑥섬의 낚시배들은 나로도와 거문도 일원의 바닷속은 훤히 꿰고 있었습니다.


위의 사진은 당시에 우리집의 ‘설낶기 배‘의 진수때 사진이며 아래쪽 왼쪽은 형제와 조카의 사진입니다. 아래 오른쪽 사진은 ‘설낶기‘를 하던 때의 사진입니다.


저희 형제도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설낶기'를 따라다녔습니다.


가깝게는 사양도와 쑥섬 사이의 물목인 '내섬도'와 내나로도와 외나로도 사이의 '와다리도' 그리고 쑥섬과 엄남마을 사이의 물목인 '도안'에서 낚시를 했습니다.


당시에는 감성돔을 물때만 맞추면 제법 많은 양을 낚을 수가 있었습니다. 어쩔 때에는 '다대기'라고 해서 정신없이 입질을 해 대는 감성돔과 농어를 낚아서 '물칸'을 가득 채워서 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멀리는 이른 봄에 농어를 낚기 위해 해창만의 방조제 근처에 있는 '고흥의 오동도' 주변까지 갔으며 가을에는 '서바닥'을 건너서 주로 손죽열도를 오가며 물속 바위에 붙어 있는 대문짝만 한 '참돔'을 낚으러 따라다녔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형제는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낚시를 즐겨 하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익숙하게 해 오던 배낚시를 지금도 기회가 되면 따라 나섭니다. 형은 서울에서, 동생은 여수권에서 나름 '선수'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국내 근무는 주로 서울 본사에서 근무를 하였는데 이때에는 회사 낚시 동호회에서 전국 출조를 따라 다녔습니다. 낚시를 좋아하는 여러 회사 동료 선배들과 함께 전국의 이름난 바다 배낚시 명소를 찾아 다녔습니다.


동해안의 강릉, 동해, 삼척 등지로 대구 낚시와 가자미 낚시를 다녔고, 남해안으로는 대한해협의 참우럭 낚시, 거제도 바깥에 있는 홍도의 부시리 낚시, 목포 바깥의 흑산도, 홍도까지 다녔습니다.


서해안으로는 주로 침선 낚시를 다녔습니다. 멀리는 3시간을 공해상까지 나가서 서해안에도 서식하는 대구 침선 낚시를 따라 나섰으며 주로 우럭 침선 낚시를 따라 나섰습니다. 가을철 이즈음에는 보령 근처에서 많이 잡히는 갑오징어와 쭈꾸미 낚시를 다녔습니다.


해외에 근무하는 동안에도 낚시를 계속 했습니다. 배낚시를 따라 나서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로 원투 낚시를 했습니다.


정년을 하도록까지 근무를 하였던 사우디에서의 3년 5개월 동안에도 낚시 동호회를 만들어서 몇 명의 직원들과 함께 주말마다 낚시대를 챙겨서 근처 바닷가로 낚시를 다녔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형입니다.

지난주에도 무창포 갑오징어 낚시를 다녀왔습니다.


금년초에 은퇴를 한 이전 회사의 동호회에서 연락이 와서 혹시 배낚시를 출조할 것인데 함께 갈 것이냐고 물어와서 앞뒤 안 가리고 ‘예스’를 했습니다.


올해 초에 퇴직을 했음에도 그래도 함께 20여 년을 회사 낚시 동호회에서 함께한 선배들을 잊지 않고 챙겨준 현 동호회 집행부가 고마웠기에 대책 없이 함께 출조를 하겠노라고 하고서는 궂은 날씨에도 낚시를 다녀왔습니다.


여수에 사는 동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배낚시의 메카로 자리 잡은 여수항에서는 가깝게는 돌산도 주변과 금호도 주변에서 낚시를 하고 멀리는 거문도와 여서도까지 출조를 하는 다양한 낚시배들이 지천인 까닭에 동생은 오랜 시간 여수를 근거지로 해서 바다낚시를 즐겨 해 왔습니다.


동생 집에 가보면 정말 다양한 낚시대와 릴들이 준비되어 어느 시즌에 어떤 대상 어종이냐에 따라 달리 채비를 해서 출조를 하는 전문 조사가 되어 있습니다.


여수권의 배낚시에 저희 가족이 동생을 따라 출조를 2020년에 다녀왔습니다.

어쩔 때는 서울에 사는 저희 가족을 불러 함께 출조를 감행(?)하기도 합니다. 딸아이들도 함께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대물림을 하려는 시도를 자주 하고 있습니다.


이번 추석에도 직접 잡은 여수권의 농어나 참돔을 챙겨서 의기양양하게 상경을 하려고 했었던 모양인데 날씨가 도와주지를 않아서 출조를 하지 못하게 되었노라며 나로도항에 들러서 대삼치 한 마리 사 가지고 올라오겠노라고 했습니다.


덕분에 서울에 사는 형네 냉장고에는 여수에서 동생이 낚아서 손질까지 깨끗이 해서 보내준 고급 어종이 떨어질 새가 없습니다.


그래서 형제의 주요 화제는 늘 낚시 이야기입니다. 동생이 말하는 낚시 이야기는 끊이지를 않지만 저는 동생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경청을 합니다. 마치 제가 낚시를 함께 따라 나선 것처럼 호응을 하고 함께 재미를 느낍니다.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쑥섬에서 나고 자란 형제는 어릴 적부터 집에서 생업으로 해 오던 배낚시를 함께 해 왔으므로 어른이 되어서도 낚시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거의 ‘숙명’처럼 낚시를 해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름하여 '쑥섬 설낶기의 후예'들입니다.


사우디 법인에서 근무하던 지난 3년간 함께 했던 낚시동호회 멤버들입니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필자입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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