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쑥섬의 추석명절
추석 명절 잘 지내셨는지요?
가족 친지들과 함께 즐거운 연휴 보내고 계시는지요? 올 해에는 어느 해보다 긴 연휴로 넉넉한 시간들을 잘 보내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 여름을 돌이켜 보면서 추석 차례를 지내시고 어디 좋은 곳 다녀 오셨겠지요?
저희도 쑥섬에서는 추석 대보름날 방식으로 차례를 지내고 과거의 쑥섬에서의 놀이문화를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쑥섬에서는 추석 명절 차례를 전날 저녁에 차립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들으면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풍속입니다만, 바로 쑥섬에서는 추석 차례를 전날 저녁에 차린다는 것이며, 이는 설날 명절 차례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음력으로 8월 15일이면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보름날 아침에 차례를 지내는데, 쑥섬을 비롯해서 일부 남해안 도서 지방에서는 8월 14일 저녁에 차례를 지낸다는 것입니다.
부모님 이전 세대부터 그리 해 왔을 것이며, 저는 부모님이 해 오던 방식을 이어받아 서울에 산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쑥섬에서의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어떤 연유로 명절 전날 저녁에 차례를 지내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쑥섬을 비롯해서 남해안 일대의 여러 도서 지방과 해안 지역에서는 이렇듯 전날 저녁에 차례를 모셔 왔습니다.
지금도 고향 쑥섬에서는 추석 차례와 설날 차례를 전날 저녁에 차리고 있습니다.
명절 차례를 전날 저녁에 차리게 된 배경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으로 실용성이 반영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남해안 도서 지방은 바다와 섬 중심의 생활 구조를 갖고 있어, 명절 당일에는 성묘나 생업으로 바쁜 일정이 많기 때문에 전날 저녁에 차례상을 준비하고 차례를 지내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명절 음식을 전날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되는데 차례를 지내는 시간 직전에 음식을 장만해서 바로 따뜻하고 신선한 상태로 상에 차릴 수 있으며, 차례를 지내고 난 뒤에 곧바로 가족들이 둘러앉아 음식을 장만한 지 얼마되지 않은 따뜻한 저녁상을 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차리게 되면 아무래도 나물이며 전, 그리고 생선 등이 전날 저녁에 준비되게 되어 신선함이 덜하게 될 터이고,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하는 고단함도 있을 테고, 아침 차례를 지내고 아침을 함께 한 뒤 성묘에 나서게 되면 아무래도 조금 늦은 시간대에 집을 나서게 되어 서둘러야 하는 부분이 있었을 듯합니다.
그리고 지리적인 여건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도서 지방에서는 아무래도 조상들을 모셔 놓은 산소가 있는 곳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보니, 오전 중에 모두 들러 성묘를 하는 것이 바쁜 일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추석날이 되면 전날 차례를 지낸 음식으로 아침을 먹고, 곧바로 나로도 본섬에 있는 산소를 찾아 집집마다 배를 타고 건너 나로도로 건너가게 됩니다.
쑥섬에는 산소가 없으므로 모두 다 간단한 산소 음식을 챙겨서, 배가 있는 집들은 자기의 배를 타고 가고, 그러지 못한 집들은 나룻배 시간에 맞춰서 건너가서 오전 내내 흩어져 있거나 함께 모여 있는 조상들의 산소를 찾아 성묘를 다녀오게 됩니다.
지금이야 차로 이동을 하므로 산소간에 이동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지만 예전에는 도보로 이동을 했을테니 서너군데만 성묘를 다녀도 한나절은 소요가 되었을 것입니다.
한 곳에 모여있지 않고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산소를 모두 들러서 술을 한잔 올리기 위해서는 명절 아침이 늦어지면 성묘를 다녀와야 하는 어른들의 발걸음이 바빴을 것이고 그러자면 점심 때를 훌쩍 넘어서야 집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을 터이니 아무래도 명절날 아침에는 전날 차린 차례음식으로 간단하게 가족들과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서야 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도서 지방은 아무래도 조수간만의 차이가 실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인데, 이 밀물과 썰물로 인한 영향이었을 가능성입니다.
우선 집집마다 배를 부리고 있었으므로, 집에서 조상신에게 우선 차례를 지내고 난 뒤에 그 상을 한 번 더 배로 옮겨서 용왕님께 해상에서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상을 차리게 되는데, 보름날 아침이 되면 만조가 되어 배로 음식을 옮기는 것이 쉽지 않으므로, 추석날 전날 저녁에 배에 쉽게 오를 수 있는 시간대가 간조 때이므로 이때 용왕님께 진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달맞이 문화와 연결된 추석의 경우, 보름달이 뜨는 밤에 조상께 인사를 드리는 정서적 의미가 더해져 이러한 풍속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산에 떠오르는 달을 기다려 차례 음식을 올리는 것도 나름 의미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해서 서울에 사는 저는 올해에도 쑥섬에서의 풍속에 따라 차례를 추석 명절 전날인 음력 8월 14일 저녁에 차렸습니다.
'쑥섬'에서만 이루어지던 추석 명절날의 ‘소풍놀이’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산포놀이’ 또는 ‘산포가기’였습니다.
‘산포놀이’라는 것은 간단한 추석 음식을 싸들고 쑥섬의 정상에 있는 바위로 청춘 남녀들이 각각 나뉘어 노는 추석 놀이의 하나였습니다.
쑥섬에는 ‘산포’라는 지명을 가진 곳이 두 군데가 있습니다.
쑥섬의 ‘몬당’에 위치하고 제법 너른 바위로 된 반석 중에 가운데에 있는 바위를 ‘간내산포’라고 부르고,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는 바위군을 ‘멀마산포’라고 부릅니다.
‘간내’라는 말은 ‘가시내’ 또는 ‘가이내’라는 방언으로 ‘여자아이’를 지칭합니다. 그리고 ‘멀마’라는 말은 그 상대어로 ‘머시마’ 또는 ‘머이마’라는 방언으로 ‘남자아이’를 말합니다.
‘산포’라는 말은 정확한 유래는 확인되지 않은 현지어입니다.
쑥섬에서는 섬 정상의 바위 너른 곳을 ‘산포’라고 불렀고, 그곳에서 노는 것을 ‘산포놀이’라 했습니다. 이 경우 ‘산포’는 ‘산의 너른 터’ 또는 ‘산 위의 바위마당’ 같은 의미를 지닌 지역어로 정리할 수 있어 보입니다.
쑥섬의 정상에는 이렇게 너른 바위가 전체 다섯 군데가 있는데, 그중에 이 두 군데가 모두 추석에 즐겨 찾는 명소로 청춘 남녀들이 올라가서 놀던 장소였습니다.
‘산포놀이’
추석절이 되면
선남선녀들이 송편하고 과일을 싸가지고
쑥섬 몬당에 멀마산포 간내산포로 갔지요
서쪽에 거문도 북쪽에 팔영산
원양 나간 아버지,
대처로 나간 형제들
고수레로 무사 귀환 염원하고
부끄럼 잠시 밀쳐두고
청춘 남녀가 옹기종기 연애질 하던 곳
산포놀이 하던 처녀 총각들
이제는 어디에서
귀밑머리 파뿌리로 살고 있는지
빈자리 산포 바위에
선남선녀 외지 손님들
꽃동산 지나오느라
고운 향기 진하고
오늘따라 따뜻한 햇볕이
내려와 홀로 놀고 있네요.
출처 : 제4시집 『쑥섬이야기』 중
고무신짝만 한 작은 섬에 100여 가구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던 시절에는, 처녀 총각부터 어린아이들이 마땅히 추석 명절 때가 되면 놀 만한 장소가 있어야 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쑥섬의 ‘몬당’에 있는 ‘산포’라는 곳이었습니다.
마을에서 ‘어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가서 너희들끼리 재미나게 놀아라’ 하고 공인해 준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던 것입니다.
어른들을 따라 나로도 일원으로 조상님들의 산소를 찾아 성묘를 다녀오고 나면, 쑥섬 아이들은 어머니가 싸놓은 송편과 과일, 그리고 전을 챙겨서 쑥섬의 정상에 있는 ‘산포’로 향하게 됩니다.
여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의 놀이 장소인 ‘간내산포’로, 남자아이들은 ‘멀마산포’로 올라 싸가지고 온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산포놀이’를 합니다.
‘산포놀이’라고 하는 것이 별다른 것이 없었습니다만, 싸온 음식을 나눠 먹고 그곳에서 ‘서바닥/서쪽 바다’의 멋진 풍광을 내려다보면서, 꿈 많던 쑥섬 아이들이 하루를 푸짐하게 놀던 놀이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함께 노래도 불렀을 것이고, 더불어 춤도 췄을 것이며, 돌아가면서 장기자랑도 했을 것입니다.
조그만 이야기 꺼리에도 까르르 거리며, 저 아래 동네에서 일어나는 청춘 남녀들의 내밀하고도 은밀한 사랑 이야기로 따사로운 가을볕을 쪼이며 재잘거리며 호호하하 거렸을 것입니다.
이곳과 저곳에서 끼리끼리 놀던 처녀 총각들이 한데 뭉쳐서 놀게 되었을 것이고, 남녀가 모이면 보지 않아도 뻔한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풋사랑을 키우게 되었을 것입니다.
일종의 가을 소풍놀이를 하는 셈이었지만, 그곳은 바로 ‘썸을 타는 장소’였던 것입니다.
강강수월래는 주로 남해안의 도서 지방, 특히 전라남도 해안 지역과 섬마을에서 전승되어 온 민속놀이입니다.
지역적으로는 해남, 진도, 완도, 고흥 등 남해안 도서 지방에서 활발히 이루어졌던 강강수월래는, 임진왜란 때 시작되었다고 전해집니다만, 일부에서는 훨씬 그 이전부터 전래되어 온 놀이문화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쑥섬에서 여자들의 노랫가락 소리가 당숲까지 울려 퍼지는 시기가 몇 번 있는데, 어른들의 놀이문화였던 ‘화전놀이’와 여자아이들의 놀이였던 ‘강강수월래’였습니다.
‘강강 수월래’
가앙강 수월래
동산에 보름 오른다
달아 달아 둥근 달아
우리 동네 비춘 달아
가앙강 수월래 가앙강 수월래
서울 간 언니 오빠 돈 많이 벌어 오십사
먼 바다 우리 아부지 만선 깃발 귀항하십사
가앙강 수월래 강강 수월래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우리 쑥섬 비춘 달아
강강 수월래 강강 수월래
빈 집마다 아기 울음
골목마다 어른 웃음
강강 수월래 강강 숼래
왁자지껄 사람 소리
그득그득 채워 주십사
강강 숼래 강강 숼래
출처 : 제4시집 『쑥섬이야기』 중
음력 팔월 보름철은 가장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는 물때가 좋은 시절이었으므로, 젊은 남자들이 바다로 나가 있는 동안 남아 있던 여자들이 중심이 되어 마을의 명절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놀이를 만들어 놀았는데, 어린 여자아이들부터 제법 성장을 한 처녀들까지 합세해서 동네마당에서 동산에 떠오르는 보름맞이 행사를 했던 것입니다.
정월 대보름에는 남자아이들이 ‘뇌성화 놀이/쥐불놀이’를 했다면, 팔월 대보름에는 여자아이들이 ‘강강수월래’ 놀이를 하여서 떠오르는 대보름달을 맞았던 것입니다.
쑥섬에서도 언제부터 언제까지 그 ‘강강수월래’ 놀이가 이어졌는지 기록이 있거나 기억하는 이들이 없지만, 추석절에는 옷을 곱게 차려입은 여자아이들이 나와서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돌면서 ‘강강수월래’ 놀이를 했다는 것입니다.
쑥섬에서는 동네마당이 두 군데가 있는데, 그중에 큰 면적을 가진 ‘안몰짝 본마당’에서는 여자아이들이 부르는 강강수월래의 선창과 후렴으로 가득하였고, 그 주변으로는 어른들이 함께 나와 앉아 아이들이 원을 돌며 노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놀다 보면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어느새 중천에 떠올라서 온 세상을 넉넉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고, 때마침 물때는 ‘일곱물’이어서 만조가 되어, 쑥섬 앞바다에는 은은한 보름달 그림자가 내려앉아 마치 커다란 호수가에서 노니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 말이 절로 나오는 시간대였던 것입니다.
'동산에 뜨는 달'
동산에 뜨는 달
안몰짝 건몰짝 가시나들
강강수월래 돌고 돌아
추렴이나 하자고
몰래 몰래 불러나 볼까
당숲에 얹힌 달
우끄터리 신물작 머시마들
도둑놈 순사 숨고 숨어
주벅그물 서리나 하자고
소리 소리 불러나 볼까
초분골에 지는 달
안몰짝, 건몰짝 가시나들
우끄터리 신물짝 머시마들
신랑 각시 놀이로
밤 새는 줄 모르네.
출처 : 제4시집 『쑥섬이야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