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 이야기(98)

- 바다도깨비 불보기

by 명재신


바다도깨비 불보기


‘도깨비불’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정말 존재하는 걸까요?


도깨비불 이야기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등장합니다. 동화나 설화 속의 도깨비불은 어딘가 친근하면서도 사람들과 가까운 존재로, 상서로운 기운을 전해주는 불빛이자 때로는 불의에 대한 응징을 대신해주는 신비로운 존재로 그려집니다.


설화 속 도깨비는 재물과 복을 관장하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도깨비 방망이를 두드리면 금은보화가 쏟아지고, 도깨비와 씨름을 해서 이기면 곡식과 보물을 잔뜩 안겨주며,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고 합니다. 반면, 심보가 고약한 사람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쑥섬에서도 도깨비에 얽힌 이야기는 자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여름밤이면 마을 앞 선창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어른들의 옛이야기를 듣다 보면, 오싹한 혼불 이야기와 함께 도깨비불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누군가 건너편 나로도 진터마을 산기슭을 가리키며 외칩니다.


“도깨비불이다~~!”


아이들은 놀라서 어른들 품으로 달려들 것 같지만, 쑥섬 아이들은 달랐습니다. 오히려 고개를 돌려 어른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며, 서로 먼저 도깨비불을 보겠다고 눈을 반짝였습니다.


그 이유는, 쑥섬 아이들은 이미 ‘바다도깨비 불보기’ 놀이를 통해 도깨비불이 복을 가져다준다는 이야기를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쑥섬에는 조금 특별한 도깨비불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바로 ‘바다에서 활개를 치는 바다도깨비불’입니다.


선창가에서 입담 좋기로 유명했던 한 어르신이, 보름달이 넉넉히 떠오른 어느 여름밤에 ‘바다도깨비 불보기’ 놀이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이 이야기를 가장 생생하게 전해준 분은 강호네 아버지였습니다.


숫용이었던 쑥섬의 옛 이야기, 뒷먼에서 낚았다는 팔뚝만 한 대물장어 이야기와 함께 ‘바다도깨비 불보기’는 그 시절 아이들과 어른들이 즐겨 나누던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고기잡이가 주업이었던 쑥섬과 인근 도서 지역에서는 이 바다도깨비불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구전으로 전해 내려왔습니다.


정월 초 사흘날에는 ‘당신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한 해의 풍어, 풍년을 기원했고, 상당굿과 하당굿을 통해 다시 한 번 풍어제를 올렸습니다.


지금의 쥐불놀이와 비슷한 ‘뇌성화’ 놀이는, 기름을 적신 솜뭉치를 빙빙 돌려 쑥섬 뒤편 벼랑과 밭둑을 태우며 바다 농사의 풍어를 기원하는 아이들의 정월 대보름 놀이였습니다.


‘뇌성화 놀이’가 아이들의 풍어 기원이라면, ‘바다도깨비 불보기’는 어른들의 놀이였습니다. 정월 대보름날, 쑥섬 정상에 올라 밝게 떠오른 보름달 아래 서쪽 바다를 내려다보며 도깨비불을 찾는 놀이였죠.


그렇다면 정월 대보름 밤, 쑥섬 서쪽 바다에서 찾고자 했던 그 불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왜 쑥섬 사람들에게 그토록 중요한 행사였을까요?


지금처럼 통신과 방송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어부들은 단순한 직감이나 경험에만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하늘과 바다의 기운, 조짐을 살피며 상서로운 기운이 어디서 발원하는지를 찾으려 했습니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어른들은 삼삼오오 ‘몬당’으로 향합니다. 대체로 ‘간내산포’, ‘멀마산포’, 그리고 당산 양쪽에 있는 ‘산포’로 오르는데, 이곳에서는 서쪽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기 때문입니다.


보름달이 중천에 떠오르면, 모두가 먼 바다를 바라봅니다. 그러다 갑자기 바다 수면에서 불빛이 일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불빛들이 점차 한곳으로 모여들고, 마침내 커다란 불덩이가 되어 밤바다를 구르기 시작합니다.


“도깨비불이다~~~!”


불덩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외치며 손벽을 치면, 주변 사람들이 모여들어 도깨비불이 움직이는 방향을 가리키며 함께 외칩니다.


“도깨비불이다! 바다도깨비불 봤다~~~!”


휘엉청 밝은 보름달 아래, 쑥섬 몬당은 어른들의 외침과 아이들이 붙인 불빛으로 환하게 빛납니다.


“저기다! 저쪽으로 출어하면 올 한 해는 만선이다!”


어른들은 도깨비불이 움직이는 방향을 주시하며 손을 모읍니다. 그쪽으로 선단이 출어하면 만선을 기대할 수 있다는 오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깨비불이 향하는 방향으로 출어하면, 삼치, 병어, 갈치, 멸치까지 그물이 터지도록 잡힌다는 기대를 안고 몬당에서 내려옵니다.


“불 봤다! 도깨비불 봤다~~!!”


도깨비불을 본 어른들은 곧장 마을로 내려와 ‘안몰짝 본마당’에서 매구와 풍물을 울리며 한바탕 놀이를 시작합니다.


이 풍물놀이는 정월 대보름부터 시작되는 ‘지신밟기’의 첫걸음이자,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는 쑥섬 마을의 흥겨운 잔치의 시작입니다.


도깨비불보기 놀이에서 비롯된 믿음 덕분에, 쑥섬 마을은 정월 한 달 내내 풍년과 풍어의 기운으로 흥이 넘쳤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바다도깨비불은 존재했던 걸까요? 그 방향으로 출어하면 만선을 이룰 수 있었던 걸까요?


그렇답니다.


쑥섬 어른들의 이야기였으니, 믿지 않을 수 없지요.


그 실체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밤바다에서 물고기 떼가 일으킨 물보라, 야광 플랑크톤, 멸치 떼를 쫓는 삼치나 병어의 어군이 형성되며 생물 발광 현상(야광충)이 나타났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시절, 정말 도깨비불이 있었을 거라고 믿습니다.


상서로운 불덩이를 기다리던 쑥섬 사람들의 마음과, 그 흥겨웠던 시절의 기억을 그대로 전하고 싶습니다.


정말 궁금하시다면, 내년 정월 대보름날 쑥섬 몬당에 올라가 직접 확인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함께하실 분이 있다면, 내년 정월 대보름날 쑥섬으로 한 번 오시지요.


정월 대보름날 이 서바닥/서바다 쪽으로 시선들이 모여들었을 겁니다. 바다도깨비불은 필시 이 방향에서 일었을 거 같습니다.
'바다도깨비 불'을 찾아 쑥섬 몬당으로 올랐을 쑥섬 사람들의 행렬들이 보이는 듯 합니다.
정월 대보름날 밤에 저 서바닥을 내려보고 있었을 쑥섬사람들의 시선을 떠올려 봅니다. 어느쪽으로 올 한해 출어를 하면 풍어를 기대할 수 있을지 눈에 불을 켜고 내려다 보았을 겁니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