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없는 길
길없는 길
가파른 벼랑을 한 아이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한 손에는 낚시대를 들고 다른 한 손은 바위 끝을 잡아 버티어 내면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파도가 쳐오면 잠시 위로 피신을 하였다가 잔잔해지면 다시 겨냥한 포인트에 낚시대를 드리워서 한 마리 물고기를 잡으려고 눈을 반짝입니다.
애초부터 그곳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누군가 지나갔고 어느 누가 지나갈 것이나 그 길에는 흔적이 남지 않으므로 다시 길을 더듬어 가야 합니다.
그 벼랑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길이 없으므로 그 소년은 벼랑의 여기저기를 살펴서 마땅하게 발을 디딜 곳을 찾아서 가파르게 난 벼랑의 한 켠에서 위태로이 낚시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 아니므로 그곳에 가면 늘 물고기가 지천으로 물어댔습니다. 잠시 잠깐이면 두어뭇(뭇=10마리 단위)은 너끈히 잡을 수 있기에 소년은 기회가 닿으면 그 벼랑을 찾습니다.
그 벼랑의 이름은 '작은섬 솔밑'입니다.
해풍에 그리고 거친 파도에 패인 벼랑이어서 거의 직각에 가까운 경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곳에는 가는 사람마다 다른 길을 찾아 건너가야 하는 벼랑입니다.
누대로 누군가는 그곳에서 낚시를 하였을 것이고 미역을 따 왔을 것이며 파도가 드나드는 그 물밑에서 자라는 홍합이며 전복이며 해삼을 잡아다 날랐을 것입니다.
함께 그리고 홀로 그 벼랑을 타면서 잡어다 날랐을 귀한 해산물들은 가족들의 먹거리가 되고 더러는 내다 팔어서 생계를 유지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 소년도 입질 하나 하나를 소홀이 하지 않고 한손으로 벼랑의 끝을 잡고 겨우 지탱하고 있는 발밑을 살펴서 한 마리라도 더 잡으려고 애를 쓰는 것도 그렇게 주렁주렁 잡어가면 동네 어른들이 '치세/칭찬'을 할 것이고 어머니는 언제 그새 가서 그렇게 많이도 잡어 왔냐며 애썼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줄 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구도 잘 가지 않는 길.
세상을 그렇게 건너갈 것이라는 것을 예감이라도 했을까요?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건너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 소년은 그때 알기나 했을까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막연한 시간을 지나고 나면 그 지나온 시간과 지나온 여정에 탄성을 짓는, 어쩌자고 그런 길을 택하여 왔으며 어떻게 헤쳐 나왔을 꼬 하는 경이로움으로 몸서리를 치게 되는 지금까지의 길들을 되돌아보면서 지금의 이 시간을 반추하게 되는.
소년의 그 반짝이는 눈빛이 기억이 납니다.
'서바닥'으로 지는 석양을 건네다 보면서 이제는 마저 남은 길을 건너야 더 어두워지기 전에 '작은섬 마당널이'에 닿을 수 있습니다. 남은 길에서 마저 거둬 들여야 하는 물고기들을 몇이라도 더 잡아 가려면 발끝에 걸린 바위 모서리를 더 잘 살피고 오른손 한쪽으로 버티어 잡은 벼랑의 남은 길도 잘 건너가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지금껏 잡은 두어뭇의 물고기들도 잘 챙겨가야 어머니의 화안한 웃음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며 아직 저녁을 '자시러/드시러'가지 않고 있을 동네 어른들의 '치세' 한 마디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벼랑을 잡은 손에 달린 길다란 물고기 꿴 줄의 무게가 소년을 흐뭇하게 합니다. 그렇지 이런 곳을 지나는 사람만이 잡을 수 있는 물고기들이야. 무게감이 주는 희열을 주저 앉히며 남은 길을 잘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들뜬 마음을 다잡습니다.
소년은 그 길을 지나서 바깥세상으로 나서고 나서야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전히 암담하고 막연한 길들을 직면하고 어찌어찌 헤쳐나갔던 일들을 떠올립니다.
사막의 길에서 오지의 길에서 밀림의 길에서 그리고 바다의 길에서 나아갈 길을 찾아 헤메던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것을 알고나 있었을지요. 모든 길들은 스스로 열어가야 하는 것을 알기나 했을지요.
소년은 섬을 떠나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로 나아가 세상의 끝까지 갔다가 작년 5월에서야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작은섬 솔밑바구'에 하얀 파도와 검게 그을린 소년이 방점이 되어서 눈에 들어옵니다.
아직도 부지런히 벼랑을 타고 움직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멀리 수락도로 석양이 지고 노을이 붉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