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백을 위하여
일백을 위하여
'쑥섬 이야기'가 일백(一百)에 도달하였습니다.
작년 11월에 첫 회를 시작한 이래 1주일에 2회 이상의 연재를 한 셈이 되는군요.
당초에는 기존에 써 놓은 글 20여편 연재를 우선 진행하면서 추가적으로 30여편을 새로 써서 전체적으로 50여편을 목표로 연재를 계획했습니다.
연재를 진행하면서 그동안 모아 두었던 자료와 쑥섬에 다녀오면서 인터뷰를 한 자료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남기신 자료등을 토대로 50여편이 더해져서 오늘로 100회를 채우게 됩니다.
고향 쑥섬을 떠나서 그동안 객지와 해외를 전전하면서 진 고향 쑥섬에 대한 마음의 빚을 어느 정도 갚은 셈이 되었습니다.
이로서 쑥섬이야기 산문집 한 권 정도를 추려서 낼 수 있게 되었으며 때가 되면 이를 성사시켜서 책으로도 만들어 독자분들과 쑥섬을 찾는 이들에게 제공하고자 하며 잊혀지고 묵혀진 쑥섬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게 되어서 무엇보다도 뿌듯합니다.
아래에 100회로 연재를 하게 될 '안몰짝 건물짝'을 끝으로 공식적인 연재를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아직 남은 이야기가 더 있어서 비 정기적으로 짬짬이 글을 올려 나가려고 합니다. 그 이야기들이 소진되는 날 다시 한번 말씀을 올리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쑥섬 이야기의 연재를 읽어주신 여러 독자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부족한 글이었음에도 한편한편에 라이킷을 보내주셔서 커다란 힘이 되었습니다.
언제나 저의 글을 읽어주고 연재를 후원해 주는 사랑하는 가족, 형제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무엇보다도 고향 쑥섬에 계신 마을 어른들과 여러 형님, 형수님들께 안부 인사 겸 고맙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갈 때마다 저와 가족들에게 이런저런 반찬과 삼치 등을 보내주어서 편하게 쑥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채록해 올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주신 덕분입니다.
그리고 100회 동안 많은 지지와 응원을 해 주신 서울시인협회 여러 시인님들과 고향, 고교 동창들에게도 감사인사를 올리며, 시종일관 따뜻한 마음으로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신 '명씨종친회' 여러 종친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안몰짝과 건몰짝>
쑥섬에는 현지어로 된 지명이 다수가 있습니다.
'안몰짝'과 '건몰짝'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참 재미있는 현지명이면서 그 어원을 살펴보면 쑥섬마을의 태생을 들여다 볼 수가 있어서 아주 중요한 지명이랄 수 있겠습니다.
이 두개의 마을이름으로부터 쑥섬마을의 형성과정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고무신짝만한 쑥섬마을에도 집들이 있는 위치를 알 수 있도록 만들어진 다음의 지명들이 있습니다.
안몰짝 : 당초에는 '아래 마을 쪽'으로 이해하고 있었음
건몰짝 : '건너 마을 쪽'으로 이해하였음
샘밑 : 쑥섬 중앙에 있는 '큰샘' 주변의 집들이 있는 곳을 지칭하며 '안몰짝'과 '건몰짝' 사이에 있는 마을을 지칭하며 안몰짝도 아니고 건몰짝도 아닌 군(群)에 속함
신몰짝 : '안몰짝 본마당'에서 '작은섬' 쪽으로 넘어가는 쪽에 있는 집들을 일컬으며 들물이 세게 나가는 쪽이라고 해서 '조류가 거세게 나가는 쪽 마을'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함.
우첨 : '건몰짝 본마당'에서 '사랑의 돌담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덤불샘'이 나오며 그 샘이 있는 주변에 집들이 있는 곳을 '우첨'이라 부르는데 어원은 아직까지 '위쪽에 있는 마을' 정도로 이해하고 있음.
우끄테 : '건몰짝'의 북쪽 방향에 있는 마을을 지칭함. 지금은 지명이 '우끄터리'로 불리고 있으며 현지어는 '우끄테'임. '우측 끝 또는 위쪽 끝에 있는 마을'을 지칭함.
그 중에 쑥섬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자주 등장하는 쑥섬의 두 마을을 지칭하는 ‘안몰짝’과 ‘건몰짝’을 설명할 때, 저는 줄곧 ‘아래 마을’과 ‘건너 마을’로 구분되는 지명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설명해 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추석 명절에 여수에서 올라온 동생이 뜻밖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쑥섬에도 '원래마을'과 '신흥마을'로 구분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야기의 발단은 ‘쑥섬에 제일 먼저 들어와 자리를 잡은 집은 어디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동생이 지금껏 쑥섬의 고향집을 잘 보존해 준 덕분에 아직까지 쑥섬을 드나들 수 있게 되었음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으로, 쑥섬의 고향집이 아마도 쑥섬에 들어와 살아온 우리 문중의 중요한 거점이었을 것이라는 설명을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향집의 위치는 바로 마을회관 옆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그 수명을 다한 고향집 뒤안에 있던 감나무의 수령도 150년이 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향집은 쑥섬의 중심에 있는 일종의 ‘행정기관’으로서의 마을회관 옆에 있었다는 점에서, 집안에서 내림으로 집을 대대로 물려왔을 것이며 최초에 입도조 할아버지가 거처를 정한 곳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끌고 나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동생은 제 이야기에 동의하면서 쑥섬에서의 자연부락으로 최초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곳은 다름 아닌 ‘안몰짝’이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안몰짝’은 우리가 알고 있던 ‘아래 마을 쪽’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안쪽 마을 쪽’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나라 여러 마을 지명 중에 ‘내동(內洞)’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아마도 ‘안몰짝’은 그 지명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지형적 특성(산, 물, 골짜기 등)을 반영하여 명명되는 경우로, ‘내동’은 마을이 안쪽에 있다는 ‘안쪽 마을’ 또는 ‘지역 안의 마을’이라는 뜻을 지니며, 해당 지역의 중심 마을 역할을 하는 지명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쑥섬에도 제일 먼저 들어선 마을이 ‘내동’의 순우리말인 ‘안몰’로, ‘안쪽 마을’이라는 말과 방향을 나타내는 ‘쪽’이라는 방언인 ‘짝’이 붙어서 ‘안몰짝’이라는 지명이 생겨났을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쑥섬에는 원래 마을과 신흥 마을이 있었는데, 원래 마을은 ‘안몰/내동’이며 신흥 마을은 바로 ‘건몰/건너마을’이라는 것입니다.
원래 마을인 ‘안몰’은 자연발생적으로 커다란 모래톱이 있었던 지금의 ‘안몰짝’에 최초로 쑥섬에 마을이 생겨났으며, 자연 피항지로서 쑥섬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부를 새로이 축적한 부자들이 생기면서 지금의 ‘건몰짝’을 매립하고 방축을 올려 기왓집들을 올린 쑥섬의 신흥 마을이 생겨났는데, 그곳이 바로 ‘건몰짝’이었다는 것입니다.
당초에 마을을 형성하여 쑥섬 마을을 유지해 왔던 ‘내동’ 사람들의 관점에서, 신흥 부자들이 기왓집을 올리고 새로이 촌락을 이룬 곳을 지칭할 때 ‘건너마을’로 불렀을 거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선 두 마을을 연결하는 길을 내게 되는데, ‘큰샘’과 ‘마을회관’ 앞으로 돌담을 쌓아 ‘방천/방뚝길’을 만들면서 길 뒤쪽으로 다시 마을들이 들어서게 되면서 '큰샘'을 중심으로 두개의 마을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동각'을 지어서 마을의 규율도 정하고 문중간의 협업을 해 나가는 지금의 쑥섬 마을 형성해 나갔을 거라는 이야기에 저는 무릎을 치면서 동생의 추론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렇다면 고향집이 있는 곳은 행정의 중심인 마을회관이 있는 곳이므로 ‘교동’이라고 부를 만했겠다고 저는 이야기를 보탰습니다.
‘교동(校洞)’은 ‘학교 교(校)’와 ‘마을 동(洞)’으로 구성되어 ‘향교가 있는 마을’ 또는 ‘행정/교육 중심지’라는 뜻을 가지므로, 당시 고향집 주변은 그런 분위기가 연출되었을 것이라고 오랜 기억 몇 토막을 소환했습니다.
‘동각(洞閣)’이라고 부르는 지금의 마을회관 자리에는 커다란 ‘청마루’가 있었는데 그곳이 아마도 마을아이들을 가르키는 '서당'의 기능을 갖고 있었고 마을 회의를 할 적에 모였던 장소임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을 어른들이 여름이면 시조를 읊으며 여름을 지내던 모습, 북 하나로 장단을 맞춰 창을 하던 유년 시절의 풍경들도 기억하고 있으니, 충분히 마을회관이 있는 곳을 ‘교동’이라고 불러도 될 만했습니다.
그리하여 주목하게 된 집이 있었는데, 그곳은 '안몰'에 있는 저의 1년 선배인 명치민 선배의 집이었습니다.
선배의 부친은 ‘명상윤’ 씨로, 저와 같이 24대손이며 쑥섬 입도조 할아버지의 종손이었습니다. ‘안몰’의 가장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는 그 집은 최근까지도 기왓집이었고, 집의 마당도 넉넉한 집이어서 쑥섬에서도 가장 오래된 저희 문중의 종가집이 대물림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들 객지로 나와 살고는 있지만, 문중의 종갓집으로서 유지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치민’ 선배는 오래된 기와를 걷어내고 최근에 예쁜 지붕으로 바꾸고 리모델링을 하여 더 오래 유지하려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들어가서 살 수 있는 날을 기약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선대로부터 대물림받아 지금에 이른 고향집을 잘 간수하고, 다시 들어가 살 수 있는 날을 기약하자며 지난 추석절에 동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쑥섬 마을 이름에 대한 내력을 알게 해준 동생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모쪼록 저희와 같이 다른 집안에서도 자신들의 문중 대대로 물려받은 집들을 고이 지키며 자손들이 다시 들어가 살게 되어, 시끌벅적한 예전의 쑥섬 마을이 다시 형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웅다웅하더래도 시끌벅적한 쑥섬 마을에서, ‘안몰짝’과 ‘건몰짝’ 사람들이 ‘본마당’에서 줄다리기를 한바탕하고 나서, 나로도 도가에서 받아온 나로도 막걸리를 양껏 마시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함께 나와 ‘화전놀이’를 하던 그때처럼, 장고 장단을 드높이며 춤을 너울너울 추는 날이 다시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 보겠습니다.
그리해서 다시 한번 쑥섬마을이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가길 소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