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삼 똥구멍 이야기
<해삼 똥구멍 이야기>
순천대학교 발행 논문집에 이 내용이 나옵니다.
쑥섬 주변으로는 여러 해산물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런 겨울철에는 굴(석화), 살조개(바지락 종류), 돌김, 파래, 산파래, 톳, 돌미역, 깽거리 등이 많이 납니다. 무엇보다도 간조가 되어서 물이 많이 빠지는 사리 때에는 개불과 해삼이 많이 잡힙니다.
그래서 겨울철에 쑥섬에 갈 일이 있으면 가능한 한 사리 때를 맞춰서 가곤 했습니다.
이 즈음부터 설명절 전후로 쑥섬을 가게 되면 마을에서 ‘개를 터서(특정 해산물을 날을 정해서 채취를 하게 함. 여기서 ’개‘는 갯바탕 또는 갯가의 개임)’ 채취를 하는 굴과 살조개, 바지락 등을 많이 구할 수가 있었고 또한 겨울철 별미인 개불과 살조개를 ‘칫둥’이나 ‘노랑바구’에서 잡아서 먹거나 ‘작은섬 마당널이’로 가서 차가운 바닷물에 손을 걷고 물속을 더듬어 해삼을 잡는 재미가 쏠쏠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로 어려서부터 쑥섬의 작은섬에 있는 '마당널이'라는 곳에서 해삼을 잡았습니다. 객지에 살면서도 명절에 부모님을 뵈러 가거나 휴가를 받아 모처럼 쑥섬에 들어갈 일이 있을라치면 어김없이 '마당널이'에 들러서 물속을 더듬어 해삼을 잡아서 초고추장에 찍어 두어 잔의 소주를 곁들여 먹는 맛에 겨울철 쑥섬행을 고집하는 편이었습니다.
추운 겨울 바다에 무릎을 걷고 들어가면 온몸이 얼어붙기 때문에 이런저런 불쏘시개를 구해서 '마당널이' 바위틈에 화톳불을 피우고 언몸을 녹여가면서 덜덜 떨면서 잡던 '마당널이 해삼'은 아직도 더 해보고 싶은 쑥섬의 겨울놀이 중에 하나입니다만 그런 재미삼아 잡아먹던 해삼도 어느 시절에는 생계를 위하여 ‘인자 묵고 살라고 밤낮으로 잡아 날랐던‘ 모양입니다.
<해삼 똥구멍 이야기>
- 원제 : 해삼 때문에 싸운 며누리와 시아버지
아, 전에,
한 사람이 인자 청상 메, 메느리가 홀압씨로 사는 씨, 씨압씨를 하나 모시고 사는
메, 메느리가 있었드랍디다.
인자 그랬는디 그래갔고
인자 묵고 살라고 막 해삼을 막 밤낮 잡어 나르드라여.
메, 메느리가 해삼을 밤낮 잡으로 댕긴디
잡아갖고 오먼은 똥구멍을 딲 비서 묵어불고는
몸뗑이만 씨압씨를 주고 그러드라네.
그래서 인자 한번은 인자 해삼을 잡아갖고 온 중을 안디
아 그 인자 똥구멍을 주잖애 안 준디
인자 몸뗑이만 하나 갖고 왔드랑마.
"아야, 그 해삼 똥구멍을 어쨌냐?"
글머는
"예, 해삼 똥구멍을 저그 나가 묵어 부렀습니다."
그러먼 할 것인디
"나가 묵어 부렀어라"
인자 메느리가 생각코 묵기좋은 해삼 몸뗑이를 준건디. 근다고 인자 좋게 그랬어 인자.
긍께로 아 그러먼 씨압씨 역시도
"아 그러먼 나를 니가 언제라고 해삼 똥구멍을 줬을라디냐."
그러믄 하껏인디
"아야. 니가 나를 언제 똥구멍 한 번을 줬냐. 니가 나를 똥구멍을 언제 한 번 줘 봤냐?"
인자 그랬다요 그래.
- 출처 : 남도문화 연구 나로도(羅老島)의 설화
- 구술자 : 나로도 사양리. 이원심. 여. 67세, 애도(쑥섬)에서 17세에 사양리로 시집을 오셨단다.
- 채록자 : 최덕원. 김혜숙(순천대 국문과) 1986
주1* 마을 아주머니들이 왜 해삼 이야기는 해주지 않느랴고 다그치자
"아, 해삼. 그 이야기 한번 해볼까?" 하시며 말문을 열었다.
청중들은 이미 한번 들은 이야기인 것 같았으나 이 할머니가 재미있에 구연하자
모두들 박장 대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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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삼 똥구멍' 이야기는 순천대학교에서 1986년도에 발간한 '남도문화 연구 나로도(羅老島)' 논문집의 나로도 설화 편에 나오는 데 구술을 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쑥섬에서 17세에 쑥섬의 바로 옆에 있는 섬인 사양도로 시집을 가신 67세의 '이원심' 할머니였습니다.
고향 나로도와 쑥섬 관련 시와 산문을 쓰던 대학 재학 시절에 우연히 '남도문화 연구 나로도(羅老島)' 논문집을 대학도서관에서 찾아내고는 복사를 해서 두고두고 가지고 다니면서 쑥섬이나 나로도에 대한 소재를 구할 때는 이 논문집을 꺼내 읽으며 이런저런 소재를 찾아서 시나 산문에 인용을 하거나 변용을 해서 글을 썼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해삼 똥구멍 이야기'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어두육미라고 해물들도 부위별로 특별히 맛이 있는 부위를 많이 찾는데 그것들 중에 민어는 애, 장어는 꼬리, 멍게는 주둥이 그리고 해삼은 똥구멍랄 수 있는데 이 ‘해삼 똥구멍’ 이야기는 이와 관련된 일화이며, 어쩐 영문으로 혼자되어 살고 있는 시아버지와 청상으로 살고 있는 젊은 며느리 간에 해삼 똥구멍을 두고 맛난 해삼 똥구멍은 안 주고 왜 며느리 너만 먹느냐 하며 투정을 부리는 ‘씨압씨(시아버지)‘와 ‘메누리‘간의 일화입니다.
‘아야, 그 해삼 똥구멍은 어쨌냐?‘
나로도의 부속도서인 쑥섬이든 사양도이든 주업이 어업이었던 만큼 그 옛날에도 해난사고로 남정네들이 먼 뱃길을 오가면서 조난을 당해서 일찍이 돌아가신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어릴 적에도 여럿 젊은 분들이 해난 사고로 젊은 나이에 바다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있었으니 그 이전에는 얼마나 더 있었을지요.
저의 쑥섬 집안 분 중에서도 그런 분이 한 분 계셨습니다.
젊어서 홀로 되시고도 늘 단아한 모습으로 홀로 되신 자리를 지키시다가 요양원으로 들어가시기 전까지 쑥섬에서 사시다가 돌아가신 큰어머니셨는데 어느 해 여름 고향 집에 들렀더니 어머니와 화단 앞에 계시는 모습을 보고는 그분에 대한 시를 위의 '해삼 똥구멍'의 구술을 변용해서 첫 시집인 '돌부처 도서관 나서다'에 실었습니다.
어떻게 홀로 되시고도 그 젊은 날을 홀로 넘어와서 저곳에 계실 수가 있었을까 하는 측은지심 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삼 똥구멍 이야기'도 그 내면에는 그런 아픈 시절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인자 묵고 살라고 막 해삼을 막 밤낮 잡어 나르드라여'
일찍이 혼자되어서 어린 자식들을 건사하고 또 위로는 어떤 연유인지 혼자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시아버지를 모시는 '청상과부'의 멍에를 지고 살아가는 며느리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래도 모여서 한가락 노래로, 한바탕 웃음으로 흘리면서 그 고단한 시간들을 넘어갔을 줄 압니다.
'니가 언제라고 나한테 똥구멍이라도 줘 봤냐?'
<나로도 설화(3)>
- 흰상사화
맨드라미 벼슬로 뜨겁던 토방 볕을 지나
흰상사화 주리 튼 팔월 남새밭에 이르면
물질로 건져온 해삼 똥구멍
죄다 잘라먹는
스물에 홀로된 나로도 쑥섬 이씨 할머니
육자배기로 잘 나가다가는 눈물 한번 흠쳐내고
아, 전에 청상 메누리가 있었다요. 그래.
해삼 잡아다가 목구멍에 풀칠하던 시상,
밤낮으로 잡아다가 씨압씨 하나 모시던 메누리.
해삼 몸뚱이는 고옵게 발라내어 씨압씨 상에 놓고
똥구멍만 먹고 살던 메누리한테 그래,
씨압씨 드릴라 넣어준 해삼 몸뚱이 다시 내 줌시롱
해삼 몸뚱이는 인자 질렸다고 니 묵으라 건네줌서 인자.
아야 해삼 똥구멍은 어쨌냐. 그랬다요 그래.
나가 먼저 묵어 부럽습니다. 그랬다요 그래.
그랬등마 씨압씨가 인자
아야 니가 나를 언제라고 똥구멍 한번 줬을라디야.
니가 씨압씨라고 언제 똥구멍 한 번 줄라디야 그랬다요.
그래.(주1)
무성으로 살아와 無毒性으로 살아가는
상사화 같이 흰상사화 같이
예쉰일곱 주름에 수줍어서 부끄러워하면서
사랑타령 춘향이 장단으로 가락 뽑아 올려서는
젖은 눈 살짝 훔치는
팔월 남새밭 너머에 하얀 꽃잎
(주1) : 순천대학출판부 발행 '남도문화연구' 중 나로도 주민 인터뷰 내용 일부를 시적으로 변용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