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놀이-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아가, 쉬었다가 가자"
할머니는 손주가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잠시 등에서 내려달라고 했다.
"가벼운데 뭘"
나는 생각보다 가벼운 할머니를 그냥 업고 '작은섬' 길을 내쳐 내려가려고 했다.
"아가, 쉬었다가 가자, 나도 업혀만 있으니 힘들어"
할 수없이 할머니를 길섶에 내려드리고 잠시 쉬도록 했다. 제법 순을 키운 '달롱개/달래'가 무성하게 나 있었다.
할머니의 시선은 저 아래에 방파제에서 들려오는 장고소리를 쫒고 있었다. 다시 장고 장단에 따라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젊은 아낙네들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아가, 할매 때문에 니가 고상이 많다"
할머니는 작은섬 방파제를 가보고 싶어 했다.
작은섬 방파제에는 화전놀이가 한창이었다. 작년까지는 '안몰짝 본마당/마을마당'에서 하더니 올해에는 웬일인지 '작은섬' 방파제에서 한다고 쑥섬의 아낙들은 모두 고옵게 차려입고 아침절부터 나룻배를 타고 방파제로 몰려갔었다.
할머니도 갈 때는 나룻배를 타고 갔었다.
화전놀이였다.
쑥섬에서는 매년 아낙네들이 주축이 되어서 두어 날을 어울려 노는 날을 정해 놓고 놀았다. 그것이 바로 '화전놀이'였다.
동백꽃이 지천으로 피는 때에 동네마당에서든 우끄터리에서든 더러는 안몰짝 방파제에서 짧게는 하루를 길게는 사흘 내내 장고를 치면서 놀았다.
쑥섬의 화전놀이는 음력 3월 3일인 삼짇날이거나 양력으로 4월 5일이 되는 한식날 전후에 진달래가 만발하는 시기로, 주로 쑥섬의 아낙네들이 준비를 하고 함께 놀았지만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리는 마을 축제였다.
다른 지방에서는 진달래꽃을 따서 화전을 부쳐 먹으며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마을의 분위기를 털어내고 새로운 생산의 시절로 들어가는 축제였지만 쑥섬에서는 주로 쑥섬 쑥과 월동 쪽파로 부침개를 부치고 '서바닥/쑥섬 서쪽의 바다'에서 잡아온 싱싱한 서대로 만든 서대 무침회와 나로도 주변에서 잡힌 준어/준치를 미나리와 함께 버물린 준치/준어 막걸리 초무침을 대야 가득히 술안주로 준비를 했다.
그리고 나로도 도가에서 말통으로 네댓 통을 받아온 나로도 막걸리를 하루 종일 마시면서 장고를 치면서 하루를 푸짐하게 놀았다.
장고는 '영주네 엄마'가 젤로 잘 쳤다.
너울너울 춤을 추는 춤사위도 고왔고 잘 차려입은 할머니들도 젊은 아낙들도 부끄러움을 내려놓고 '본마당'에서 막걸리를 들이켜 가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하루를 실컷 놀았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며는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얼시구 절시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화란춘성 만화방창
아니 노지는 못 하리라
차차차 차차차
영주네 엄마가 치는 장고장단이 굿거리장단으로 가락을 맞추면 쑥섬의 젊은 아낙들은 숨겨놓은 끼를 다 부리면서 둥실둥실 춤을 춰댔고 허리가 다 구부러진 할매들까지 그 속에 어울리며 너울너울 춤을 추면서 함께 '노랫가락 차차차'를 따라 불렀다.
그리고 우리 같은 조무래기들은 할머니들이 챙겨주는 쑥지짐과 서대무침회를 얻어먹으면서 나로도 도가 막걸리를 홀짝홀짝 얻어 마시고는 얼굴이 벌겋게 되어서 어른들 사이에서 휘청거리던지 아니면 우끄터리 동백숲으로 들어가 동박새처럼 동백꽃 꿀물을 빨고 놀았다.
"이거시 인자 마지막이 될랑갑다"
할머니는 방파제 그 너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축제의 무리에 섞여 당신의 마지막 춤을 추시고는 잠시 쉬는 사이에 그러셨다.
노동으로 구부러져 있던 허리는 이 날만큼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펴져서 낭창거리며 어깨 선을 부드럽게 만들었고 주름이 잔뜩 내려앉은 두 손은 고운 춤선을 그으며 봄 하늘의 아지랑이 같이 너울 거렸다.
나는 그 할머니의 모습을 멀찌감치 앉아 그 너울거리는 모습들을 눈에 담고 있었다.
어쩌면 살아생전에 마지막 축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는지 반나절을 거기에서 하얗게 춤을 추고 노오랗게 노래를 하면서 장고장단과 함께 너울거리는 모습으로 당신의 마지막 화전놀이에서 남은 모든 미련들을 다 소진하고서는 그러셨다.
"아가, 인자 가자"
해가 중천을 지나고 모두 서대회에 밥을 말아서 한 그릇씩 하고서 오후 따사로운 봄볕에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무리들로부터 떨어져 나온 할머니는 이제 그만 돌아가자며 따라간 손주에게 손을 내밀고는 작은 손주의 등에 당신의 몸을 얹었다.
그리고는 손주와 할머니는 '작은섬 방파제'에서 오르는 그 '옹삭한' 오르막 길을 한발 한발 딛고 올라와 다시 길게 수평으로 나있는 장다리꽃이 무수히 피어있는 ‘작은섬 길’을 지나고 있었다.
화창한 봄날 이루어지던 화전놀이는 그렇게 쑥섬의 '작은섬 방파제'에서 장고장단에 너울거리던 쑥섬 아낙네들의 춤과 '작은섬 길'에서 할머니를 업고 건너오던 손주의 모습으로 해서 마지막이 되었다.
'아가 고맙다'
화전놀이
동백꽃 피고지고 동박새 오고가고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장고 장단 흥겹고 노래 소리 드높다
나로도 도가 막걸리가 넉넉하다
서바다 서대 무침회 한 다라이다
남녀노소 하루 하나가 되는 거라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안몰짝 보리마당에 화전이 부쳐지고
영주네 엄니 장고 가락에
니나노 닐리리야 니나노
니나 할 것 없다 모두 나오너라
얼씨구 좋다
안몰짝 보리마당이 너울대는 춤사위로
장다리 꽃도 봄볕이 모자라다
출처 : 제 4시집 '쑥섬이야기' 중 76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