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꽃 병아리꽃
‘개나리꽃 병아리꽃‘
“저 꽃이 무슨 꽃이지?”
“병아리꽃이요”
“왜?”
“병아리를 닮았잖아요”
병아리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지난 주말에 뛰었던 10키로 단축마라톤에서 비가 오는 주로(走路)에서 우의를 입고 아스팔트만 보고 뛰느라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노오란 색의 꽃들이 사방으로 화안해지기에 눈을 들어보니 노오란 개나리꽃이 비를 흠뻑 맞으며 도로 양쪽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아, 경식아, 경미야’
지난달 쑥섬의 고향집 마당에서 찍은 사진들을 정리를 하다가 누님 조카들이 모여서 찍은 사진이 있길래 그걸 핸드폰 사진으로 찍어서 누님들과의 단톡방에 올린 적이 있었다.
“ 가운데 있는 아이가 누구니?”
서울에 사시는 큰 누님이 조카들 사진 속에 의문의 얼굴이 한 명이 있다고 누군지를 물어왔다.
처음에는 여수 누님 조카 얼굴로 알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 뒤에 있었고 형제들이 알 수 없는 얼굴이 한 명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뜻밖에도 경식이었다.
‘맞아, 경식이‘
경식이었다.
부산에서 늦깎이 대학을 다닐 적에 전세를 살던 집주인의 아들이었다. 당시에 경식이와 그의 동생 경미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나는 다니던 포항제철을 그만 두고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온전한 직장을 그만 두고 공부를 더 하겠다고 부산으로 내려 왔었는데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전세금으로 묶어두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월세 대신에 전세를 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주변의 아이들을 모아 과외를 하고 있었는데 경식이와 경미도 약간의 과외비를 받기는 했지만 수시로 올라와서 방에서 공부를 함께 하던 아이들이었다.
남매의 아빠가 운영하던 남포동 구두공장의 부도로 남부민동에서 제 아빠도 없이 부산을 떠났던 경식이 경미네의 뒤를 쫓아 가던 그 길도 온통 개나리꽃 길이었다.
나는 그때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창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창원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내다보는 들녘은 완연한 봄이었다. 담백한 초록의 버들가지가 그랬고, 진달래가, 화려한 복사꽃이, 그리고 개나리꽃, 아니 병아리꽃 무더기들이 그랬다.
경미와 경식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저들이 나고 자란 부산을 떠나 낯선 창원으로 떠나가야 했던 초등학교 4학년 짜리 소년과 소녀의 기억에는 이사 가던 날의 풍경이 어떤 무늬로 남아 있을 것인가가 내내 안쓰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던 나는 그들에게 잠시 2층에 전세로 살았던 삼촌으로 도움을 주지는 못하고 가서 제 엄마의 멱살이라도 잡아서 전세보증금을 내어 놓으라고 강짜라도 놓으려고 가는 그 길이 안타까웠다.
그들이 부산을 떠나기 전, 여름 방학 쑥섬행을 할 때 경식이를 데리고 갔었다.
이미 경식이와 경미는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에서 아빠가 운영하던 구두공장이 잘 안 되어 곧 넘어갈 거라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잠시 이층으로 올라와서도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다. 예전의 활기는 사라지고 또래 아이들의 무리에도 어울리지 못하고 있는 남매가 안타까워서 방학 때 쑥섬가는 길에 동행을 했었다.
얼굴에 그늘이 역력했던 그 아이는 '서바닥'이 내려다 보이는 몬당길에서, '뒷먼'의 비탈진 '비렁길'에서도, 천길 낭떠러지 '중빠진 굴'에서 환호했고 좋아라 했다.
모처럼 내려온 서울의 조카들과 함께 어울려 '우끄터리'에서 옹삭한 동백나무를 타고 올라가 수없이 열려 있던 동백을 따면서 놀았고 그 중에 몇을 바다 멀리 던져 놓고 그것들을 다시 주워오는 게임을 하는데 합류를 했으며, 여객선이 남기고 간 파도를 타며 멱을 감고, 방파제의 돌틈에서 '반장기/돌게‘를 홀치기를 사용해서 함께 잡으며 신이 나서 환호성을 질렀고, '노루바구'가 있는 '통안'에까지 가서 돌을 바위에 세워두고 그 돌을 맞추어 넘어 뜨리는 게임에서는 단연 으뜸이었다.
녀석은 야구를 좋아 한다면서 돌을 던져 멀리 세워놓은 돌을 맞추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밤에는 쑥섬 선착장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조카들과 박수를 하면서 하는 '사치기 사치기 사뽀뽀' 게임을 하기도 하였고 그게 지치면 집에서 가져온 배게를 베고 누워 여름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을 세면서 조카들과 함께 은하수를 헤엄쳐 이 별 저 별로 항행하는 것을 즐겼다. 어디론가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는 때에는 모두 탄성을 했고 다 크면 함께 별똥별을 주으러 가자며 손가락을 걸기도 했다.
아름다운 쑥섬에서의 몇 날을 그렇게 모든 것을 잊고 함께 했다.
'삼촌, 아빠 회사가 오늘 부도 났데요'
하지만 경식이는 작은섬 노랑바구에서 '메추리/바다 모래무지'를 잡던 날 부산에서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왔다. 그 아이는 쑥섬에서의 꿈같은 시간 중에도 모든 관심은 부산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남은 날들을 나는 뒷먼으로 데려가서 비렁도 함께 타고 목넘으로 데려가서 바위도 타고 작은섬길의 오르막 내리막을 함께 하면서 굳건하기를 주문했었다.
맏이로서의 역할은 그래도 경미와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는 거라고 그것이 엄마 아빠가 이 힘든 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라고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았다. 동생 경미를 챙기고 엄마를 도와서 다시 아빠가 일어설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할 거라는 다소 어려운 말도 했었다.
“삼촌, 조금만 참아 주세요. 형편이 닿는 대로 제일 먼저 갚을께요”
경식이 엄마는 떠나기 며칠 전에 전세 보증금은 어떠한 일이 있더래도 갚을 거라며 기다려 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 전세 보증금은 대학오기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6년간 모은 전 재산이었다.
“무엇을 믿는단 말입니까? 무엇을.”
섣부른 불안은 떨쳐버리기로 했으면서도 내부에서 나를 괴롭혔던 것은 ‘무엇을 믿는다는 건가?’였고 ’ 무엇을 받아낼 수가 있기나 하는 건가?’였다. 게다가 새로 들어온 집주인의 말은 결국 창원으로 나를 내몰고 말았던 것이다.
‘무엇을 믿는단 말인교 지들이 뭐가 있다꼬!’
삼촌, 왜? 사람은 참 좋은 계산기를 가지고 있어. 어디에? 봐 여기 있잖아.
경미는 열 개의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그리고는 까르르 웃었다. 마치 제 놈이 삼촌에게 알려준 개나리꽃 같이, 병아리꽃 모양으로 노오랗게.
삼촌에게서 구구단을 배우느라 땀을 빼는 게 안쓰러워 간간이 옛날 쑥섬 귀신이야기를 해 주면 상 밑으로,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 오들오들 떨던 그 깜찍한 모습과 모든 셈을 손가락 계산기를 사용하려 해서 못하게 하였더니 나의 눈을 피해서 양손을 상 밑에 넣고서 그예 계산을 끝내고선 답을 적으며 또 노랗게 웃어 자지러지던 경미 따위는 더 이상 내 불신을 잠재워 주진 못했던 것이다.
그저 늦깎이 대학생활의 방편으로 시작하였던 전셋집 주인 딸과 아들의 과외선생일 뿐이었고 개인지도 때 서로 편리한 호칭의 하나였을 뿐인 가짜 삼촌,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경미 경식이와 엄마를 보고 창원을 떠나와야 했다.
나는 멀리서 그들의 모습을 건네다만 보았을 뿐이었다.
준비해 간 아무런 서류도 아니, 그 서류들을 담어갔던 가방도 열지를 못했다.
경미 엄마는 어시장에서 열심히 손님들을 부르고 있었다. 부산에 살 적에 조용하던 모습과는 정말 다른 모습으로 수건을 뒤집어 쓰고는 어시장의 그 시끄러운 소음에서도 목소리는 우렁차 있었다.
그 옆에는 경식이가 있었다.
경식이는 제 엄마를 도와서 무언가를 열심히 잔일을 해 주고 있었다.
그들은 정말 굳건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다시 땅 위 세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지하의 가두워진 공간에서 펄펄 살아 있었다.
별똥별을 찾아 금방이라도 나설 것 같은 활력이 넘쳐 나고 있었다.
내가 반송시장이란 곳으로 달음질쳐 갔을 때까지도, 지하에 상설 시장으로 내려갈 때까지도 단단히 물고 있었던 어금니를, 되돌아 나오며, 바쁘게 생선을 파느라고 여념이 없어 보이는 경식이 엄마와 경식이를 뒤로하고 반송시장 그 지하계단을 오르면서 경직된 근육들을 풀고 있었다.
삼촌, 왜? 병아리꽃이 피었다. 어디에? 여기,
경미는 제 볼을 가리켰다. 제 볼에 핀 병아리꽃, 보조개였다.
창원을 떠나면서 본 길가에는 나의 조카 경미의 보조개가 이쁘게 피어 있었다.
"믿음으로 시작했으니 믿음으로 끝낼께요, 삼촌."
‘개나리꽃 병아리꽃’
반송시장에 비린내가 진동을 하더라
전세 보증금을 날리고서는 눈이 뒤집혀
씩씩대며 찾아 들어간 창원 지하상가에
펄펄 뛰는 활어같이 손님을 부르느라
손뼉까지 치는 엄마 옆을 지키고 있던
경미야 경식아
살아보니 세상 사는 길 비렁길 투성이인 걸
여전히 험한 세상 고비고비 넘어가고 있는지
이제는 좋은 세상 호호하하 웃으며 살고 있는지
기별이라도 하고 싶고 안부라도 묻고 싶구나
삼동을 넘어 이제는 봄으로 가는 고개에
개나리꽃 피었다 병아리꽃 피었다.
양 볼에 이쁘던 보조개꽃 피었다.
출처 : 동아문단 ‘노우’ 제79호
1998. 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