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박새-동백꽃 꿀 이야기
동박새-동백꽃 꿀 이야기
뜬금없이 동백꽃이 보고 싶어졌다.
유년시절에 동백나무 가지를 옮겨 다니면서 꿀을 빨아먹던 동백꽃이, 동백나무가 보고 싶었다.
"봄비가 좀 와야 써, 안개비가 오면 더 좋고"
가문 탓에 전국이 산불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인데 무슨 '동백꽂 꿀' 타령이냐는 지청구라도 들을까 싶었는데 고향 친구는 날이 밝자마자 우끄터리로 돌아가서 동백꽃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동백꽃 꿀이 생각이 나서"
왜 갑자기 올해 부쩍 동백꽃이 피었는지를 묻고 또 묻는 친구가 의아스럽기도 하련만 무던히도 내색을 하지 않고 쑥섬 우끄터리의 동백꽃 소식을 소상히 전해 주어 고마웠다.
오랜 해외생활로 잊혀져 가고 있는 동백꽃의 노오란 꽃향과 달짝지근한 꿀물 맛을 다시 기억하고 싶었다.
갯바위 낚시를 다녀오는 길이었거나 우끄터리에서 환상처럼 펼쳐지던 화전놀이의 풍경과 동백꽃 꿀물을 빨아먹기 위해 동박새처럼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던 기억이 어제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허기도 갈증도 아니었고 그것은 바로 쑥섬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의 치레였다.
빡빡 밀어놓은 머리통에 노오란 동백꽃 화분을 잔득 묻히고 동백꽃에서 흐른 동백꽃 꿀물이 얼굴과 목덜미와 그리고 옷에 잔뜩 묻은 쑥섬의 아이들이 동백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꿀물을 빨아 먹으며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는 모습이 동박새 같이 너무나 생생하게 생각이 났던 것이다.
<동박새>
동백꽃을 좋아했지요.
붉은 웃음 겨우내 머금어다
이른 봄 날 지천으로 터트려 놓은
겨울꽃이라 좋아했지요
오오, 통째로 펴선 통째로 입술 던져 스러짐
어쩌면 그 꽃은 그대 입술이었는지도 몰라요
겨울에 피어난 꽃 사색으로 죽어지낼 적
뜨겁게 사르는 우리만의 사랑법의 표현
내 겨우내 그대 입술에 입맞춤합니다
겨우내 그리워 바람으로 욕심 추려 내어선
정갈한 마디마디
날아드는 동박새로 이제야 꽃이 피고 있어요.
쑥섬에서 커 나온 아이들 팔할은 '쑥섬 동백꽃 꿀물을 빨아먹고' 키를 키웠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하나둘씩 피기 시작하는 우끄터리 동백꽃은 겨울 동안에는 눈에 보일만큼만 피어 나오다가 양력으로 3월에 접어들면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하였다.
바람도 없는 봄바다에 산더미처럼 높은 파도가 한식날 즈음이 되면 멀고 먼 대양으로부터 밀려왔다. 그것을 사람들은 한식파도 한다고들 했다. 그 파도를 따라 물고기들이 몰려온다고 마을에서는 한 해의 어로작업을 위해 어구를 추스르고 어장 채비를 했다.
그리고 한식파도가 있을 때면 우끄터리 동백숲에는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했고 때마침 우윳빛처럼 빛깔 고운 물안개가 사방을 초병처럼 지켜 앉으면 동백꽃은 더 많은 꿀을 내어 놓았다.
추운 삼동에는 주로 갯바탕에서 '개불'이나 '해삼'을 잡아먹던 아이들이 추위가 좀 누그러지고 남풍이 불어와 화전놀이를 하는 날 즈음에 모두 우끄터리 '초분골'로 몰려들어서 동백꽃에 입맞춤을 해 댔다.
연초록의 작은 새로 아주 귀엽고 예쁘게 생긴 동박새처럼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쑥섬의 아이들도 이른 봄이면 여늬없이 동백나무 숲으로 날아 들어왔다.
우리가 동백나무에 기어올라가 동백꿀물을 빨고 있으면 바로 옆가지에는 동박새가 아주 가까이까지 근접해서 동백꿀을 빨아먹어 댔다.
동박새와 쑥섬의 아이들이 쑥섬의 동백꽃의 꿀물을 나누어 빨아먹으며 키를 키우고 자랐났다.
동백나무는 주로 겨울에 꽃을 피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쑥섬의 동백꽃은 겨울의 끝과 봄의 초입에 대부분의 꽃을 피웠다. 이렇게 봄에 피는 동백꽃을 춘백이라고 부른다고 했지만 우리는 그냥 동백꽃이라고 불렀다.
겨울에 피는 동백꽃은 벌이나 나비의 도움을 받아 수분이 될 수가 없으니 동박새가 동백꽃의 수분을 돕고, 동백은 동박새에게 꿀을 제공하면서 서로의 의존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그 동박새들의 무리들 사이에 나와 그리고 유년시절의 친구들이 있었다.
동백나무에 올망졸망 매달려 있는 쑥섬의 아이들과 동박새가 경쟁하듯이 꿀을 빨면서 달짝지근한 꿀을 탐하였다.
그러다 보면 꽃에서 흐르는 꿀물이 옷의 여기저기에 묻고 흐르게 되는데 이게 얼룩이 되어서 손으로는 지워지지 않았고 멀쩡한 옷에 얼룩이 지니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한테 야단을 맞기 일쑤였기에 얼룩들을 지우러 모래샘에 들렀다.
동백꽃 꿀로 허기를 채운 아이들은 모래톱 가운데에는 뎅그마니 ‘삼바구‘라고 하는 바위 근처로 다시 모여들었다.
모래샘 아래 '삼바구' 근처에는 조그마한 모래톱이 있었다.
여자아이들이 거기에서 놀고 있었다.
봄볕이 따뜻해지면 쑥섬의 사내아이들이 우끄터리의 동백숲 동백나무에 매달려 있었고 쑥섬의 여자아이들은 우끄터리 모래샘 아래에 있는 ‘삼바구’ 근처에서 두꺼비 집을 지으며 놀거나 ‘빠끔살이/소꼽놀이‘를 하면서 놀고 있었다.
'새야 새야 물 질러 온나 꽁아 꽁아 집 지어라, 꽁아 꽁아 물 질러 온나, 새야 새야 밥 지어라'
작은 조막손 위에 모래를 얹어서 꿩과 새를 바꿔가면서 불러 함께 밥과 집을 지으며 쑥섬의 작은 초가집에서 벗어나 근사한 자신들의 집을 짓어 놓고 배부르게 살게 해달라고 소원하며 함께 합창을 하듯이 노래를 부르며 '빠끔살이/소꼽놀이'를 하며 놀았다.
동백나무에 오르지 못하는 더 어린 동생들은 누나들을 따라와 옆에서 검정고무신 뒤축을 까 뒤집어 뱃놀이를 하면서 큰 바다로 떠나갈 꿈을 키우며 함께 놀거나 아니면 우끄터리 '뱀바구' 옆에서 '흙탱가리/진흙이 뭉쳐진 돌'를 곱게 빻아서 이 진흙가루에 물을 잘 괴어서 남동생들은 탱크며 비행기를 만들었고 여동생들은 바지락과 굴 껍질에 온갖 맛난 음식들로 진수정찬을 차려 봄 손님 맞을 채비를 해서 신랑각시 놀이를 했다.
"그래 쑥섬은 언제 내려오실 건가?"
오랫동안 상선을 타다가 근자에 은퇴를 하고 고향집으로 낙향을 하여서 3년째 쑥섬에서 살고 있는 친구는 탐방객이 만들어 놓은 하트 모양의 동백꽃 사진을 찍어 보내주면서 함께 동백꽃 꿀물을 빨아 먹으러 내려 오라며 손짓을 했다.
"동백꽃 꿀물도 좀 뽈아 묵어야 실하게 또 한 해를 나제?"
몇일 째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쑥섬의 우끄터리 동백숲에도 봄비가 내리고 있을 터였다. 마지막 꽃을 피운 동백나무에는 이 계절의 마지막 동백꽃들이 잔득 꿀을 머금어 멀리 객지로 떠나가 있는 동박새들의 귀환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