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이야기(49)

조선 최고의 명당

by 명재신

'조선 최고의 명당'



무학대사가 조선 최고의 명당을 찾아 남하를 하고 있었다.


백두산으로부터 시작해서 금강산으로 따라잡았던 맥이 다시 설악산, 오대산을 거쳐 속리산으로 흐르고 있었다. 바로 백두대간의 중심축인 금강산이거나 설악산 즈음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따라잡고 있던 명당의 맥은 오대산도 태백산도 지나쳐 더 남하를 하더니 어느덧 지리산을 향해 흐르고 있었다.


지리산 어디쯤에 있을 거라고 마지막 정점을 향하던 명당지맥은 지리산에서 다시 호남정맥으로 옮아 타더니 고흥의 팔영산으로 빠지고 있었다.


'필시 조선 최고의 명당은 팔영산에 있는 모양이다!!'


호남정맥의 마지막에 있는 고흥의 팔영산은 8개의 봉우리가 마치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데 무학대사는 다도해를 조망할 수 있는 팔영산이 그 명당지맥의 마지막 정점이 될 거라는 기대로 고흥 땅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흐름은 팔영산에서 멈추지 않았고 고흥반도 아래로 내려가는가 싶더니 나로도의 봉래산으로 빠지고 있었다.


'여기구나 봉래산이구나'


대사가 배를 얻어 타고 이제 한반도의 가장 남쪽에 있는 '나라섬/나로도'가 그 최고의 명당을 가진 땅이 되겠구나 하는 마지막 기대로 봉래산으로 올랐는데 명당지맥이 흐름은 봉래산에서 멈추지를 않았다.


염포마을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당황한 대사는 다시 마지막 지맥을 따라 내려가니 그 흐름은 뜻밖에도 염포마을 '매바위'로 다시 오르고 있었다. '매바위'는 바로 염포마을 남단으로 흐르는 봉래산 자락의 마지막 지점에 뚜욱 하고 멈춘 절벽이었다.


'아아, 여기도 아니다!!!'


뜻밖에도 매바위 끝이 조선최고의 명당일 거라고 따라 올라갔더니 그 흐름은 천길 낭떠러지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들어 버렸다.


'이럴 수가, 조선 최고의 명당이 저기 바다 밑에 있다니!!'


무학대사가 탄식을 하면서 그 바닷속에 있을 명당을 어림하였다. 그 지점은 '곡두여'와 '매바위' 사이에 있는 물속이었다.




'곧 올 것이다'


썰물이 '떠지고/느려지고' 있었다. 음녘 사월 열흘 3 물 때의 초들물로 물돌이를 시작하고 있었다.


쑥섬에서 출어를 한 열 척의 낚싯배와 나로도 각 포구에서 출어를 한 배들까지 30여 척의 낚싯배들이 모두 '중걸'로 다시 집결을 해 있었다.


너울이 높았다.


아침 물때에서는 배들마다 별 재미를 못 보고 있었다. 이른 아침 물때에 낱마리 낚는 정도였고 '곡두여' 벼락바구 근처에 닻을 놓아두고 다들 점심을 먹고 다시 초들물 물돌이를 할 때를 기다렸다가 오후 물때를 보려고 모여들었던 것이다.


'한 마리 올 것이다'


아버지는 '매바구/매바위'와 '곡두여'를 가늠하고 나머지 한 지점을 시산도 쪽을 넘어다 보더니 물속에 자리 잡고 있는 '중걸'이 다가오고 있다며 다시 한번 '지수'를 하라고 일렀다.


아침 물때에도 점심 물때에도 우리 배는 '통치' 서너 마리 수준이었고 '금/시가'이 될만한 놈들은 입질조차 받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지수를 좀 적게 해 봐라'


'지수'는 낚싯바늘이 바다밑의 바닥과의 거리를 마추는 것을 말했다. 낚싯바늘과 ‘봉돌/추‘과의 거리는 자신의 양팔 간격으로 맞추어 놓고 주기적으로 봉돌을 바닥에 닿게 했다가 한 팔 만큼 들어 올리면 낚싯바늘은 바다 밑바닥에 닿을 듯 말 듯이 위치하게 되어 있었다.


낚싯바늘이 바다 밑바닥을 조금씩 끌면서 낚시를 해보라는 말이었다.


바로 옆에서도 그만 그만한 낚싯배들이 삼십여 척이 초들물까지의 물돌이 시각에 맞춰서 '중걸'을 중심으로 오르내리며 통치 한 두 마리씩을 낚아 올리고 있었다.


파도가 높아서 바로 근처에 있는 배들이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물속에 있는 '중걸'을 지날 때마다 오히려 봉돌의 높이를 조금 더 낮게 깔고 가고 있었다.


뭔가 대물을 겨냥하고 있음이었다.


자형이 배가 쑥섬 작은섬 방파제를 마악 돌아서 '서답바위' 초입으로 접어들자마자 바닷물에 세수를 하게 하고 '코바위'를 지날 때쯤 코를 잡고 코끼리 돌기를 스무 바퀴를 시켰다. 그리고 '백말바구'를 지나칠 무렵에 큰절을 세 번 시켰다.


'대물맞이' 의식이었다.


그랬으니 대물로 적어도 미터급 민어는 한 마리 낚을 것이라고 확신을 하는 듯 신중하게 지수를 거듭하고 있었다.


너울이 심한 날에 바닷물에 세수를 하게 하고 코를 잡고 스무 바퀴를 돌게 한 뒤에 절을 세 번을 시켰는데 희한하게 그렇게 하면 멀미를 덜 하였고 우연이었는지 정말 영험이 있었는지 그런 날은 어른 팔 크기의 씨알 좋은 민어를 낚는 경우가 많았다.


'한 마리 올 것이다 곧'


봄철이 되면 쑥섬의 낚싯배들은 조선 최고의 명당일 거라는 '중걸'로 낚시를 다녔다.


민어를 낚시로 잡는 일명 '통치살이'였다. 외줄로 낚시를 하는 것을 나로도 일원에서는 '설내끼'라고 했었다. 전통방식의 배낚시였다.


통치는 크기가 어른 팔목보다 작은 시이즈를 말했고 그보다 더 크면 중민어 팔뚝 크기라야 민어 축에 든다 했다.


제주해협이거나 여서도 근해에서 월동을 위해 내려갔던 민어들이 살을 키워 다시 연안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들러서 일정기간 먹이활동을 하면서 힘을 키우는 곳이 바로 '곡두여의 중걸'이었다.


나로도 서남단에 위치한 '곡두여'는 곡식을 탈곡할 때 쓰는 '곡두'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무인도인데 염포마을의 '매바위'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 중간 지점 물속에 '여/물속 바위'가 하나 있는데 그걸 쑥섬에서는 '가운데걸' 또는 '중걸'이라고 불렀다. 어른들은 그 '중걸'이 다름 아닌 나로도 일원에서 말로 전해지고 있는 '조선 최고의 명당'일 거라고 했다.


'걸'은 '여'와 함께 도서지방에서 쓰는 물속 암초를 두고 쓰는 말이었다.


'왔다!'


자형이 갑자기 엉덩이를 들썩이며 오른손을 하늘을 향해 치켜 세우며 챔질을 야무지게 하였고 곧바로 왼손이 뒷줄을 따라잡는가 싶더니 뒷줄을 당겨 채지를 못하고 있었다.


'걸인 거 같소. 걸'


잔득 기대를 하고 챔질을 했는데 ‘걸‘에 걸린 모양이었다. '걸'은 낚싯바늘이나 봉돌이 바위에 걸렸다는 말이었다. 지수를 적게 했으니 '중걸'을 지나면서 필시 어딘가에 걸린 거 같았다.


'!'


낚싯줄을 잡아당겨 낚싯바늘을 단 줄을 끊으려고 용을 쓰는가 싶더니 뒷손이 한번 더 따라가 댕기는 순간 뭔가 이상함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있어, 뭔가 있어!'


자형이 힘을 주어 당겨서 '걸이 걸린' 낚싯줄을 끊으려 하는 순간 뭔가 바다밑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는 거였다.


'대물이다!'


아버지가 담방에 뜰채를 들고 배 뒤쪽 고물에서 앞으로 뛰쳐오면서 하나 걸었다는 것을 확신하는 듯 했다.


자형은 한 발을 올리는가 싶더니 두 발을 주었고 두 발을 올리는가 싶더니 네 발을 주고 있었다. 물속에 대물은 낚시를 문 채로 배를 끌고 조류를 따라 아래를 빠지고 있었다.


주변 배들이 너울에 묻혔다가 돋았다가를 하면서도 우리 배에서 대물을 건 것을 건네다 보고서는 하나둘씩 배를 멀리 빼 주고 있었다. 대물이 주변 낚싯배들에서 내린 낚싯줄과 엉키지 않도록 멀리 이격을 시켜 주는 것이었다.


자형과 대물과의 몸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버지는 확신을 하고 있었다. 낚싯줄도 낚시도 마땅한 것을 채비했다는 것을.


쑥섬 선창에서 배를 타고 작은섬 방파제를 빠져나오도록 무언가 오늘은 결연한 표정이었다. 낚싯바늘도 평소보다 한 사이즈 큰 28호를 묶으라고 하였고 '애리짱/낚시 매는 줄'도 늘상 쓰던 8호 대신에 12호를 쓰라고 한 것부터가 뭔가 오늘 대물을 걸어 보려는 의지가 다분해 보였다.


'아주 큰 놈인 모냥이다. 정말'


배가 중걸로부터 멀어지도록 자형은 놈과 힘 겨루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놈도 힘이 빠졌는지 두 발을 올리면 한 발 정도 끌고 들어가고 있었다.


부레에 공기가 들기 시작하면서 놈은 맥을 못 추고 있는 거 같았다.


'이 놈 하나면 된다, 잘 걷어 올려 보자'


자형은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주거니 받거니를 계속했다. 나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뒤로 가서 배의 방향 키를 잡아 행여나 낚싯줄이 배 밑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배의 방향을 조정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자형이 이물에서 곧 수면에 드러날 대물맞이를 위해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다 왔다, 조금만'


아버지가 낮게 소리를 쳤고 자형이 사력을 다해 치고 들어갔다가 다시 끌려오는 놈을 마지막으로 다루고 있었다.


수면으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서서히 떠 올랐다. 놈이었다.


'으어어어'


갑자기 자형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탄성소리였지만 희열의 정점에서 지르는 절규 같은 희한한 소리였다.


'우아아아, 우아아아'


다시 극도로 주린 듯한 울림이 깊은 복부에서 시작해서 울대를 거쳐 올라와 온 바다로 울려 퍼졌다.


어른 키보다 더 큰 대물이었다.


거무잡잡한 몸채가 오월 봄볕에 광기를 냈다. 얼마나 바다 속 세상에서 오래 살았는지 등에는 따개비들이 잔득 붙어 있었고 비늘 하나의 크기는 어른 엄지손톱 보다도 더 컸으며 물속 용왕만이 입을 거 같은 찬란하고 견고한 갑옷을 입고서는 총기 있게 커다란 눈으로 물 밖 세상을 둘러보는 듯 초연했다.


놈이 수면으로 떠 올랐다가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더니 이번에는 배 밑창으로 낚시줄을 끌고 들어 갔다. 자형은 낚시줄을 당겨 버티다가 줄을 풀어주고 있었다.


'신령이다'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였다.


물속에서 억겁의 세월을 지낸 물속 세상의 대왕이었다. 온몸을 감싸고 있는 비늘의 광채와 커다란 두 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안광은 물속 세상을 아우르다가 바깥세상으로 잠시 나온 물속의 신령이었다.


조선 최고의 명당을 찾아온 머언 대양의 순례자의 모습이었다.


'신령이다, 신령이다'




<곡두여, 곡두여>


얼마나 한양 바라기였으면

밀려나 밀려와 궁궐에서 가장 먼 곳

나라섬까지 쑥섬까지 밀려와

조선 최고의 명당 이야기를 만들어

물속 바위에 명당을 만들어 놓고

매년 머언 바다 봄손님 마중 나왔는가


곡두여 곡두여


봄볕 창창한 날 너울이 첩태산 같던 날

어른 키보다 더 큰 대왕민어를 다 잡어 놓고서는

펄펄 뛰는 시늉만 했을 뿐

놔주신 것이지 놓친 것인지 내색하지 않더니


물 한 잔 올리고 두 손을 모아

떠나보내는 그 뒷모습을 보았네


잘 가시게 잘 가시게


모쪼록 잘 가시거든

우리 자식들 우리 자손들 우리 섬사람들

잘 좀 보살펴나 주시게

잘 좀 지켜나 주시게


잘 가시게 잘 가시게



곡두여 사진입니다.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저 앞에 있는 ‘중걸’에서 민어낚시철에 많은 낚시배들이 오르내렸습니다(고향 친구 유재훈 작가가 드론으로 찍어서 보내준 곡두여 사진임)
나로도와 쑥섬을 빠져나가는 방파제 앞으로 배가 지나오고 있다. 가운데 위쪽 왼편으로 곡두여와 매바위가 보인다.
오른쪽이 곡두여이고 왼쪽이 매바위이다. 그 중간 바다밑에 ’중걸‘이 있다. 그날 자형은 그 대왕민어를 걷어 올리지 못하고 놓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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