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이야기(51)

아들 장가 보내준 서바닥

by 명재신

'아들 장가 보내준 서바닥'



'오메 오메 감사하요, 감사하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바닥/쑥섬의 서쪽 바다'에서 비손을 하며 연신 바다를 향해 그리고 사양도 선산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습니다.


눈앞에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지막 새우잡이 끌그물에 구름처럼 많은 새우들이 잔득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수면으로 끌어올려진 '새비빵/새우잡이 끌그물'에 정말 많은 양의 '참새비/대하'가 들어서 배로 들어올릴 수가 없어서 뜰채로 퍼 올려도 그 양이 줄어들지를 않았습니다.


'서바닥 용왕님, 사양산 조상님 고맙고 감사하요, 오메 오메'


그날은 둘째 아들 결혼식을 사흘 앞둔 날이었습니다.


모처럼 일가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 싱싱한 새우라도 잡아가면 나눠가지고 가기도 하고 함께 뭐라도 해 먹자고 해서 나선 '서바닥'이었습니다. 나이 많은 두 분이 어렵사리 투망하고 힘겹게 끌던 새우잡이 저인망 그물인 ’새비빵‘에 조금의 새우라도 들어도 감사하게 부산으로 가져가려고 '서바닥'으로 나선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서바닥' 용왕님이 둘째 아들 결혼시키는데 밑천으로 쓰라고 정말 많은 양의 ‘참새비/대하‘를 구름처럼 보내 주었던 것입니다.


'서바닥이 우리 아들 장가까지 보내줬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그날 ‘서바닥‘에 절을 거듭하면서 건네다 보이는 사양도 6대조 할아버지 선산에도 머리를 조아리며 조상님 덕분으로 아들 혼사를 잘 치루게 되었다고 감사 인사를 올렸다고 했습니다.


'니 장모 될 분이 쑥섬에 오셨을 때도 저 ‘서바닥‘이 살려 주었제'


택도 없을 것 같던 저의 결혼은 어머니의 말씀대로 쑥섬의 서쪽에 있는 바다인 '서바닥'이 지켜 주었습니다.


'서바닥'에 설치해 놓은 '삼강망/정치망 그물의 일종'으로 좋은 물고기를 잔뜩 보내줘서 완강하던 여자 친구 부모님의 마음을 얻게 해 주었고 '서바닥'으로 좋은 새우까지 보내주어서 넉넉하게 혼사를 치를 수 있는 밑천까지 마련해 주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쑥섬사람들에게 있어서 서쪽바다는 먹고살고 자식들을 키우는 생계의 터전이었으며 삶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식들 결혼까지 챙겨 주었습니다.


'우리가 자네 뭐를 믿고 맏딸을 내어준단 말인가?'


여자 친구 부모님은 성품은 좋으셨지만 저의 대책 없는 제안에는 단호했습니다. 바깥으로 나가서 공부를 더하고 싶은 것까지는 좋으나 거기에 금이야 옥이야 키운 맏딸을 데리고 공부하러 건너가겠다고 하였으니 정말 황당해하셨던 거 같았습니다.


'어림없는 소리네'


여자 친구의 부모님은 더 공부하고 싶으면 혼자서 건너가서 공부를 마치고, 그때 가서 서로 맘이 남아 있거든 결혼을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요지부동이자 결국 부모님을 만나 뵈야겠다고 딸과 저를 앞세워 머언 쑥섬행에 나섰습니다.


아마도 쑥섬으로 들어가서 '지금 우리 딸은 대학을 막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해야 하니 댁의 아들이 뜻하는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거든 그때 생각을 해 보자'는 뜻을 온전히 전하고자 했었던 거 같습니다.


여자 친구의 어머님은 그렇게 해서 저와 함께 쑥섬으로 향했습니다. 물론 여자 친구도 함께 동행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교통편이 부산에서 여수까지 고속버스로 다섯 시간을 가고서도 여수에서 여객선을 타고 두 시간 넘게 나로도항까지 가야 하는 머언 길이었습니다. 그리고도 나로도항에서 하루에 네댓 번 있는 나룻배를 타고 쑥섬으로 건너가야 하는 험난하고 머언 여정이었는데 어머님은 그 여정을 감내하면서까지 쑥섬으로 와서 그 뜻을 전하고자 했었습니다.


그 멀고도 머언 여정의 끝에서 만난 쑥섬은 정말 초행인 어머님에게는 더욱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나로도가 고향이라고 해서 제법 큰 섬으로 알고 왔고 와 보니, 다시 나로도에서 배를 타고 조그만 섬으로 더 들어가게 되니 눈앞이 캄캄했었던 거 같습니다.


'이건 정말 택도 없는 일이다'


아마도 쑥섬으로 건너가는 나룻배에서 그렇게 다짐을 하셨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쑥섬에 들어가셔서 고향 친지들과 이웃들과 부모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하면서 조금씩 굳은 마음이 풀렸다고 했습니다.


쑥섬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람 사는 맛과 정을 느끼고 그 따뜻함에 우선 마음의 빗장을 여셨던 것 같고 시절이 마침 봄날이어서 쑥섬의 봄볕과 봄풍경과 봄바다가 주는 넉넉함에 마저 마음의 문을 여셨던 거 같았습니다.


어머님의 머언 쑥섬행은 이렇게 해서 '택도 없다'고 나선 길이 '택일 하자'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마침 서바다에 놓아둔 삼강망에서 뜻 밖에도 어머님이 오신 그때에 '서바닥 조상신이 내렸다'라고 할 만큼 크고 좋은 농어와 민어 그리고 돔까지 '몽창' 들어주어서 귀한 손님을 '넉넉하게' 대접하게 하고 또 그중에 좋은 것들을 골라 아이스박스에 잘 포장을 해서 저보고 함께 가서 못 오신 아버님께 드리라고 했었던 것입니다.


'서바닥이 처가 부모님의 마음을 얻게 해 주었다'


그렇게 해서 장모님은 당신 살아생전에 쑥섬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봄볕과 봄바다와 봄풍경들을 항상 다시 보고 싶어 했고 늘 다시 한번 다녀오고 싶다고 추억하셨습니다.


'살아생전에 또 가보고 싶은 정말 좋은 동네였네'




'새우살이'


바다를 보고 있으면 홀로 바다로 나서는

아버지

사막을 보고 있으면 홀로 들로 나서는

어머니


새우 철이 되어서

서바다 혹은 서바닥, 동바다 혹은 동바닥


구름처럼 모여드는 먼바다 새우 손님들 맞으러

새벽어둠으로 나서는


한 무더기 떠서 울 막내 대학 보내야제

몽창 떠서 울 둘째 장개 보내야제


어머니 아버지


사막을 건너오셔요 바다로 건너오셔요

달이 떠가 듯 해가 떠가 듯


서바닥 봄바다에서

군무를 추고 있을 새우 맞으러

함께 가셔요.


출처: 제4시집 '쑥섬이야기' 102페이지




오른쪽 바다가 쑥섬의 ‘서바닥/서쪽바다‘입니다. 쑥섬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자 바탕이었습니다.(사진 고향친구 유재훈 작가 제공)
쑥섬의 모습입니다. 쑥섬의 뒤쪽 바다를 ‘서바닥/서바다‘라고 합니다. 이 서바닥이 필자 장가를 보내 주었습니다.


keyword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