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먼 보리밭
'뒷먼 보리밭'
바람이 많은 봄날이었습니다.
하지만 봄에만 바람이 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들풀을 요절의 늪으로 몰고 간 것은 바람만이 아니었습니다. 바람은 그 대궁지를 튼실하게 해 주었을 망정 들풀의 기를 꺾어 놓지는 않았습니다.
길섶에도 들풀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사이클을 타고 지나가고, 그 옆을 뛰는 사람들과 걷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어쩌면 그렇게 기죽지 않고 제 빛을, 초록의 기운을 받아 대궁지를 올려 알곡을 맺고 있는지, 생명력이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한번 받은 명(命)의 생애 주기를 이어가기 위해 길섶의 여린 순들은 대궁지를 올려 바람에도 다시 일어섰습니다.
마음이 무언가에 쫓기듯 늘 긴장했고, 그 여파로 여유 있게 뭐라도 좀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성장(盛裝)의 옷들, 그 연약한 이파리가 퍼렇게 살을 키우도록 그리고 어느새 알곡을 맺도록 봄은 더디게 왔다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천지를 눈꽃처럼 하얗게 밝히던 벚꽃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 아래에는 영산홍과 철쭉들이 자리 잡고 화려한 시간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사월이 가고, 오월이 오고 있었습니다.
쑥섬에는 땅이 많지 않습니다.
밭은 좀 있지만 논은 없습니다. 다른 섬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다랭이논도 쑥섬에는 없습니다. 경사가 급하고 물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섬에 밭으로 일궈 먹을 만한 땅이 넉넉하지 않으니 뒷먼 벼랑을 개간해서 흙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방축을 쌓고 흙을 얹어 밭으로 일궜습니다.
그중 하나가 '쑥섬 뒷먼밭'입니다.
아버지 이전 세대에서 일궈 먹던 밭자리였을 터인데, 그 벼랑에서 어떻게 담을 쌓고 흙을 퍼올려서 밭으로 일궜을까 싶을 만큼 위태로운 벼랑에 지어진 밭자리입니다.
밭의 가장자리에서 돌팔매질을 하면 한참 있다가 그 돌이 바위에 닿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바로 아래에서 뛰노는 한국 토종 돌고래인 상괭이를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서바닥'이 훤히 보이고,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전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른 봄철에 할머니는 늘 호미 한 자루를 들고 물을 챙겨서 그 벼랑 위의 '뒷먼밭'으로 지심을 매러 올라가셨습니다.
보리밭에 지심을 매러 간다고 하셨지만, 실은 징용 가서 죽은 큰아들 이름이나 실컷 불러보려고 올라가는 거라고 어머니는 점심 무렵 도시락을 챙겨서 저를 올려 보냈습니다.
뒷먼밭, 그 창창한 봄볕 아래에서 할머니는 지심을 매다가 제가 올라가면 그새 목이 잠겨서 그러셨습니다.
"아까부터 나를 자꾸 불러."
밥 한 숟가락을 떠서 고시레를 하면서 "잘 묵고 편한 데 가거라." 하면서 당신의 아들을 불러서 구천을 떠돌지 말고 편한 세상으로 어여 가라는 기원을 하셨습니다.
사월이 가도록
살아 있는 이의 무관심
그래서 할머니는 날마다 나의 방에서 울고 계셨는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메마르고, 소리도 없으며 표정도 없는 울음을, 다시 오월이 오도록.
내가 도시락을 싸 들고 쑥섬의 능선을 넘어 뒷먼 보리밭으로 찾아갈 때마다 할머니는 봄볕 아래에서 두 다리를 뻗어 놓고 울고 계셨습니다. 아니면 이미 울고 난 흔적이 역력한 부은 눈두덩이를 하고 계셨습니다.
'오리똥눈듸' 가파른 벼랑 위에 있는 '뒷먼밭'은 할머니가 유일하게 태평양 전쟁 때 사이판으로 징용되어 돌아오지 못한 당신의 큰아들을 목이 터져라 불러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천 길 낭떠러지 아래 아득하게 보이는 갯바위로 젊은 장정들이 오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필시 그곳에는 우리 아들도 있을 거라는 알 수 없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또 지심을 매고 있는데 벼랑 아래에서 "어머니!"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벼랑으로 내려가려고 몇 번이나 시도하셨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쑥섬의 뒷먼밭에서 내려다 보이는 것은 더없이 찬란하고 광활하며 무궁한 '서바닥'이었을 뿐, 아무런 부름도 아무런 메아리도 없이 봄볕만 적요하게 내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너무나 나른하였으므로 잘 차려입은 장뀌들이 간간히 오월 보리밭에서 대양을 향해 울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철저하게 사라져 버린 소멸의 의미를, 죽음이 상징하는 것을.
서로의 운명을 달리하고서도 만날 수 없음을 기나긴 삶의 여정을 통해 익히 알았던 터여서 더욱 가슴이 미어지는, 그래서 슬픈 항아리의 주둥이를 크게 하였는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함께 사이판 군도의 일본군이 건설 중이던 비행장 활주로를 만드는 데 강제 동원되었다가, 미 공군의 기총소사에 허벅지를 관통당한 후 후송된 야전병원에서 허망하게 일본군 의관이 놓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맞고는 그대로 절명해 버렸다는 이야기를, 함께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다가 구사일생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찾아와 함께 못 돌아와 머리를 조아리던 젊은이에게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어떻게라도 나중에 유골이라도 수습해 와야 한다며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그래, 땅에 묻을 때 표를 좀 해 놓지 그랬는가? 자네가 가 보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은가? "
"여기 표를 좀 남겨 두고 가게나. 어디쯤인지 그림이라도 좀 그려 주고 가시게나."
할머니는 사자의 전령처럼 찾아온 그 젊은이를 붙들고 그러셨습니다.
남양 군도 섬 중 하나인 사이판이 건너편 나로도 그 어디쯤인 것으로 생각하셨던지,
"아야, 애비야. 네가 가서 좀 데려오너라."
죽음의 문턱에 서서 할머니의 호흡 한 번마다 겨우 달려 나오는 말들의 조합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넓고도 넓은, 어린 나의 시야가 머무를 수 있는 곳으로, 쑥섬에서 가장 커다란 뒷먼 보리밭에서도 통곡을 다 마무리 짓지 못하셨는지. 눈에 가득 죽음의 색을 담고서도 어흥거리며 당신의 묫자리 걱정도, 살아 있는 이들의 눈도 외면한 채 이역의 땅에 버려진 들풀을 걱정하며 안쓰러워하며 한스러워하며 살아 있음을 마무리하셨습니다.
그 오월이 오면,
보리 대궁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오월이 오면, 그 보리밭 가장자리에서 성장(盛裝)한 장뀌의 울음이 오월 봄날을 치솟아 오를 것이고, 거기 쑥섬 뒷먼 보리밭에서 서바닥을 향해 아직도 수습하지 못한 당신의 아들 이름을 부르며 가슴을 치고 있을 할머니의 소리도 함께 들리는 것입니다.
'오월 장뀌'
소리 하나로 쑥섬을 내어 지르네
봄은 익어 보리꽃으로 흐르고
오월 뒷먼밭에 살아 숨길마다 더운 기운 풍기네
옷 잘 입은 오월이 몬당에서 울고 있네
오월의 소리를 너무나 닮아 있는 소리로
젊은 한 나절을 울고 있는 소리소리 보리밭
커다란 울음소리 하나로 귀퉁이에서 부르던
징용 가 죽은 큰아들 부르다 자진하던
할머니 오월이 생각이 나고
지금은 잡초로 뒤덮인 뒷먼 밭
길이나 제대로 났는지
그 많던 장뀌들 어디로 떠나갔던지
출처 : 제4시집 '쑥섬이야기' 110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