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이야기(55)

환희의 언덕

by 명재신

‘환희의 언덕‘


어제 서울에서 쑥섬으로 내려오는 길은 비가 오고 강풍이 부는 날씨에 연휴 첫날이어서 지체와 정체가 거듭되는 머나먼 여정이었다.


서울에서 꼬박 10시간이 걸렸었다.


다행히 쑥섬에 도착하고 하루가 지난 오늘은 날씨가 쨍하게 개이고 따뜻한 봄볕이 좋았다.


고향집 화단에 피어있을 ‘목단’의 영접을 받을 것이라 기대를 했었는데 아직 꽃망울만 머금고 있었다.


누님 형제들이 보태준 경비로 큰 부담 없이 이번 쑥섬행이 이루어져 너무나 기대되는 고향행이었다.


날이 하도 좋아서 몬당에 두 번이나 올라갔었다.


두 번이면 어떠랴. 세 번도 네 번도 오를 수 있는 곳이었다.


식전에 덤불샘길을 통해 올라 ’서바닥/서바다’를 조망하면서 ‘간내산포/여자산포‘와 ’멀마산포/남자산포’를 거쳐 ‘신선바구/신선대’를 통해 ’성화등대‘와 ’중빠진굴‘을 다녀왔었다.


마침 ’중빠진굴’의 그 벼랑 끝으로 일출이 돋고 있었다.



오후에는 가족들과 함께 ‘당숲’으로 오르는 ’삐딱길/비탈길’을 잡아 ‘당숲’을 경유했다. 그리고 ‘깔딱고개‘를 올라 ’환희의 언덕‘으로 향했다.


'환희의 언덕'


당초에는 쑥섬에는 없는 지명이었다.


쑥섬 아이들이 남의 밭언덕을 털어서 캐온 칡이나 겨울을 나고 있는 밭에서 몰래 캔 겨울당근을 질겅대면서 겨울을 나던 야생 놀이터가 있는 곳이었다.


‘환희의 언덕‘은 당숲에서 나와 ‘깔딱고개‘ 끝에서 만나는 포토존 터널과 함께 단숨에 이름을 얻어 담번에 명소가 되어 버렸다.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쑥섬을 찾는 탐방객들은 늘어나기 시작했고 다녀간 사람들을 통해 무수히 많은 사진들이 인터넷에 오르기 시작했었다.


그곳을 오르면 드넓은 ‘서바닥’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작은섬‘의 ’ 솔밑바위‘의 절경이 눈앞에 갑자기 펼쳐지게 해서 탐방객들의 가슴을 뻥 뚫리게 해 주겠다는 취지는 상상 이상이었다.



지자체에서도 거들어 쑥섬을 전남도 민간정원 1호로 만들어서 전국 방송도 나오게 하고 여러 예능프로에도 서로 앞다투어 소개를 하기 시작하였던 곳이었다.


쑥섬 투어를 하기 위해 ‘삐딱길‘을 올라 수령 400백 년 이상의 나무들이 울창한 '당숲'을 거쳐 ‘깔딱고개’를 오르면 바로 이곳에 닿게 되는데 느닷없이 시야에 펼쳐지는 '작은섬' 절벽인 '솔밑바구'와 '서바닥'의 조화와 그 비경에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오는 곳이어서 사람들은 그곳에서 숨통이 빠앙하고 터지는 희열과 환희를 맛보게 해 주겠다고 계획한 투어코스는 대 성공이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은 한결같았던 모양이었다.


아주 어려서부터 사진을 찍을 양이면 제일 먼저 찾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쑥섬 아이들치고 앨범에 ‘작은섬 솔밑바구‘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없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세상으로 나아간 쑥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가면서 객지로 나갔다가 고향 쑥섬을 찾을 양이면 젤 먼저 찾아가는 곳이 바로 ‘작은섬 솔밑바구’였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만신창이가 된 자신을 돌아보면서 험한 세상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힘을 얻어 가는 곳이기도 했다.


또한 ‘서양화가 해암’ 최주휴 화백도 30대에서부터 평생을 쑥섬으로 건너와 ’작은섬 솔밑바구’를 배경으로 그림을 그려왔던 곳이기도 했다.


예술가의 시선으로도 ‘솔밑바구‘의 멋진 절경은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었다는 말이었다.


당신이 평생을 그림을 그리게 해 준 곳이 바로 ‘작은섬 솔밑바구‘의 멋진 경치였고 파도였고 내리는 석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쑥섬을 찾는 모든 탐방객들 또한 수백 년의 동백숲을 건너 ‘깔딱고개’를 오르며 세상의 매운맛을 지독하게 맛보고서 지쳐 맥이 빠질 즈음에 눈앞에 펼쳐지는 뜻밖의 파노라마와 이국적인 절경을 통해서 단숨에 그간의 만사시름을 해소하게 해 주어서 이름값을 해주는 ‘환희의 언덕’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환희의 언덕‘은 쑥섬의 꽃밭을 일구고 꽃길을 내면서 만인의 힘든 삶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곳으로 만든 신의 한 수였다는 것을 모두는 동의를 하고 남았던 것이다.


그리고서 내가 찾은 오늘도 ‘환희의 언덕’에서 조망하는 오후의 절경은 여전히 환상 그 자체였다. 수없이 찾아들어 건네다 보고 조망을 하였고 사진을 찍었음에도 매번 다른 모습과 다른 생각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기에 감사했다.


우리 가족은 여러 포즈를 취해 가면서 다시 한번 우리의 방문을 기록에 담았다. 변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나이를 먹고 있었고 계절이 바뀌어 있었고 하루의 시간이 달랐기에 ’작은섬’으로 쏟아지는 봄볕의 색감도 환상 그 자체였다.


그래서 '환희의 언덕'이 고단한 삶을 아직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와서 그 짐을 내려놓고 새로운 기운을 담어 가라는 말씀을 건네고 있었고 우리 가족들 모두에게도 같은 교감을 하고 있었다.


멋진 풍광에 환호하고 환희를 느끼게 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동안 오랜 해외생활을 하면서 비어있는 곳간을 채우기 위해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가족들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정년퇴직을 마악 하고 난 뒤의 막연한 생각들을 가지고 와서 푸념하고 해소하고 가려고 ‘삐딱길’을 오르고 ’깔딱고개‘를 헤쳐 왔었던 것이다.


오늘 다시 찾은 ‘환희의 언덕‘에서 정년퇴임 이후의 나의 길을 묻고자 올랐던 것이다.


어디로 갈 것인가 또 어떻게 남은 제2의 인생의 길을 헤쳐나갈 것인가였다.



그러다가 그 깎아지른 절벽 아래 직하의 벼랑을 타고 가로지르고 있는 까까머리 아이를 찾아내었다. ‘솔밑바구‘ 아래 깎아지른 벼랑에서 낚싯대를 메고 낚시를 하기 위해 가로 지르고 있는 유년의 나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세상으로 나서기도 전에 어린 내가 길을 찾아내서 벼랑을 타고 건너고 있었던 것이다.


‘저기에도 길이 있었구나‘


까까머리의 내가 건너온 저 험한 벼랑에도 길이 있었다는 생각을 해 내고는 나는 전율을 느꼈다.


지금껏 건너왔던 그 대책 없던 길들과 중동의 모래사막을 건너기도 한참 전에 나는 저 벼랑에서 길을 찾아 가로질러 건너왔다는 것이다.


그랬으면서도 여기에 와서 남은 길을 묻고 찾고 있다니.


나는 비로소 내 안에 막혀 있던 어떤 돌 하나를 느꼈다. 길을 막고 있던 작은 돌멩이를 들어내는 것이 우선이었구나.


쑥섬에서 나고 자란 모든 이들도 여기에 와서 평생을 유년의 길을 보고 갔었겠구나.


‘작은섬 솔밑바구’을 건네다 보며 평생을 같은 저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던 해암 화백도 결국은 길을 묻고 있었던 것이겠구나.


길을 찾으려고 와서 저 벼랑에도 길이 있었음을 깨닫고 또 남은 길을 찾으러 갔을 수도 있었겠구나.


비로소 터져 나오는 희열과 환희의 함성.


오늘도 나로도항에서 쑥섬선착장으로 두 척의 ‘쑥섬호‘가 수많은 탐방객들을 실어서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부터 지팡이를 짚은 허리굽은 할머니들까지도 쑥섬의 명소 ’환희의 언덕‘으로 향하는 ’삐딱길‘을 오르고 있었다.




<환희의 언덕>

그라제라

세상은 이 맛에 사는 거제라

금방까지 깔딱고개 이놈의 세상살이

어째 이리 심이 드는가 싶다가도

알다가도 모를 깊으나 깊은 숲길

영문 모를 비렁길 간당간당 하다가도

잠시 잠깐이라도 여기

화악 트인 남해 바다

그림 같은 절경으로 그대 앞에 나서자고

억겁을 깎고 깎아 영겁을 견디고 견뎌

여기 앞에 그대와 함께 만세를 올리고

환호를 터뜨려

그대 건너온 길 그대 걸어온 길

응원하고 격려하니

여기 모든 시름 만사 잊고

하루 한 해 한 생 거뜬하시길

가뿐하시길 두 손 모아 기원이니

세상의 길 다시 걸어가는 거제라

그라제라


‘작은섬’의 벼랑을 ‘솔빝바구’라고 부른다. 저 벼랑 아래에도 길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쑥섬행이었다.
환희의 언덕은 왼쪽의 ’작은섬’의 깎아지른 벼랑과 함께 왼쪽으로 조망되는 화악 트인 ‘서바닥‘이 탐방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명소가 되어 있다.
정면에 보이는 섬들은 거문도로 뱃길에 있는 손죽도, 평도, 소거문도, 광도이고 오른쪽으로 멀리 보이는 섬이 완도군에 속해있는 청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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