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이야기(56)

복을 가져다준 성화등대

by 명재신

'복을 가져다준 성화등대'



"쑥섬에는 잘 들어가셨는지요?"


어제까지 비가 많이 왔고 아침에 쑥섬을 나설 때까지도 비가 오락가락했기에 걱정이 되었다.


전주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계시는 14 명을 모시고 쑥섬행을 하실 거라고 시인문학회 신 회장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은 2주 전이었다.


남도 문학기행을 계획하시면서 쑥섬을 방문 일정에 포함하시겠다고 연락을 해 주신 것이다.


해서 '쑥섬이야기' 시집을 보내드리면서 기왕이면 우리 가족이 모처럼 쑥섬에 가있는 동안 오시면 좋겠다 싶어서 일정을 확인해 보니 아쉽게도 우리 가족이 쑥섬에서 나서는 날에 들어오는 일정이었다.


전남도 제1호 민간정원의 멋진 꽃밭정원과 몬당에서 조망되는 '서바닥'과 기암절벽의 '작은섬'까지 좋은 투어코스와 함께 쑥섬 이야기도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 가족은 쑥섬에서 연휴를 보내고 마지막 날 서울로 올라와야 했기에 쑥섬에서 첫 배로 나섰다.


날씨는 어제의 많은 비와 바람이 부는 날씨의 뒤끝이어서 곧이라도 비가 더 올 것만 같았다. 쑥섬으로 들어오신다는 시간대에 또 비가 내려서 당숲을 거쳐 환희의 언덕과 몬당길을 경유하시는데 힘드신 여정이 될까 싶어 걱정이었던 것이다.


"성화등대에서 마악 우끄터리길로 가는 길을 잡았어요"


서울로 향하는 차 속에서 전화를 드리니 쑥섬에 잘 도착했으며 당숲을 경유해서 환희의 언덕과 몬당을 거쳐서 어느 사이 '성화등대'까지 가셨다고 했다.


신 회장님은 '중빠진굴'은 못 내려가게 막아 놓았드라며 쑥섬의 최고 절경을 못 보시고 '성화등대'까지만 보고 '우끄터리'의 동백꽃길로 길을 잡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날씨는 괜찮다고 해서 마음이 놓였다.


중빠진굴을 못 보았다고 하시니 아쉽긴 했지만 성화등대만 보아도 되었다 싶었다.


좋은 일들만 불러다 주는 성화등대였기 때문이었다.


길을 제대로 잡아 험한 세상 풍파를 건널 수 있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쑥섬이 있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형들과 동생들이 쑥섬에서 나고 자라면서 복을 다시 돌려달라고 '구복(求福)'의 외침을 했던가.


매년 정월 대보름날, 몬당에 있는 '멀마산포/남자산포'에서 '뇌성화/쥐불'을 돌리면서 '쑥섬에서 나간 복은 모두 다 다시 들어오게 해 달라'고 구원하기를 수십 년을 해 왔었지만 쑥섬은 빈 집만 늘어만 가고 한번 나간 쑥섬의 젊은이들은 다시는 돌아오지를 않았던 것이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아니면 쑥섬으로 향하고자 했던 복덩이가 제대로 길을 잡았던 것이었을까.


원래 사양도와 쑥섬 사이의 좁고 거센 물목을 지나는 항로에는 사양도 쪽에 등대가 있었다.


사양도 등대는 명씨 문중 선산 바로 밑에서 불을 밝히우고 있었고 생전의 아버님(왼쪽 사진 안의 중간에 계시는 분)은 늘 등대와 선산 사진을 즐겨 찍으셨다.


그 등대는 우리 문중 선산의 바로 아래에 있었기에 등댓불이 밤바다를 항행하는 모든 배들의 길잡이가 되어주면서 우리 성씨인 '明'의 일월성신(日月星辰)에게 구복(求福)을 해주는 불빛으로 사양도 등대가 역할을 잘해 줄 것이라고 믿었었다.


생전에 아버님도 그런 연유로 선산에 공을 들이고 조상께 지극정성을 다한 까닭이었다.


'해(日)가 떠도 제일 먼저 닿고 달(月)이 떠도 제일 먼저 닿는 곳에 길을 밝히는 등대가 서고 쑥섬에 불을 밝히는 송전탑까지 그 아래에 서 있으니 우리 명(明)씨 자손에게 광명(光明)의 길이 열릴 것이다'


아버님이 장문의 시를 써서 보내주시며 앞으로 좋은 일들만 있을 거라고 말씀하신 까닭도 선산 아래에 있던 등대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아버님의 장문의 시가 적힌 편지를 받은 해에 나는 대학문학상을 3군데나 당선이 되는 영광을 안았었다. 영남대학교에 소설이, 경산대학교에 시가, 그리고 다니고 있던 동아대학교에서 '제주해협'이라는 시로 대상을 받았던 것이다.


대기업에 취직도 되고 어여쁜 아가씨를 맞아 결혼도 하고.


그 해에 나는 동생과 사양도 선산에 올라 감사하다며 고맙다며 절을 거듭 올렸었다.


여러 좋은 일들이 생긴 그 해에 동생과 사양도 선산에 올라 거듭 절을 올렸었다.



등대가 있는 사양도에도 복(福)을 가득 가져다주었었다.


전국 소득순위 1위를 할 만큼 '중선배'를 많이 부리는 마을이 된 사양도 선창마을에는 배를 댈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배들이 드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쑥섬은 여전히 빈집만 늘어가고 돌담들은 내려앉고만 있었다.


'우리 쑥섬에서 나간 복을 다시 돌려 주시요'


어쩌면 한 때 남도 최고의 섬으로 '돈섬'이라는 이름을 얻었던 쑥섬에서는 복이 되돌아오기를 소망하고 갈망해서 몬당에 올라 불을 붙인 '뇌성화'를 윙윙 돌리며 정월 대보름날 구복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1991년도에 찍은 사진에도 사양도 선산 아래에 있는 사양도 등대사진이 들어 있었다.
쑥섬에서 찍은 사진 중에 사양도가 배경으로 들어가는 사진에는 늘 등대가 등장을 하였다.


그런데 등대가 쑥섬에 세워지면서 그토록 바라던 복이 제대로 길을 잡았던 것이었을까?


쑥섬의 '도런바구' 바로 위에 등대가 세워지면서 모든 배들에 새로운 길잡이 역할을 하면서 쑥섬에는 좋은 일들을 생기게 해 준 것이었다.


쑥섬으로 등대가 옮겨온 배경은 알 수 없지만 윗녘인 시산도 쪽에서 쑥섬 쪽으로 내려오는 배들이 주로 난파가 되는 지점은 쑥섬 쪽이었다.


중빠진굴’과 ‘오리똥눈디’ 그리고 ‘배밑에‘는 오랜 세월 악천후나 안갯속에서 배들이 부딪혀 난파가 되었던 유명한 벼랑이었다. 때문에 사양도와 쑥섬 사이의 좁은 물목을 지나는 배들에게는 쑥섬의 끝부분인 ’도런바구‘가 깃점이 되어야 온전하게 방향을 잡아서 조류나 바람의 영향을 고려해서 좁은 바닷길을 제대로 잡을 수 있었으리라.


그러한 현실적인 부분이 등대를 쑥섬의 ‘도런바구’ 위에 세우는 계기가 되었을 테지만 그 이후로 쑥섬에는 좋은 일들이 생기기 시작을 했다.


젊은 부부가 쑥섬에 자신들이 꿈꾸어 왔던 ‘꽃밭정원‘을 몬당에다가 만들기 시작했고 쑥섬마을 사람들이 합세를 해서 구슬땀을 흘려가며 일군 지금의 쑥섬이 서서히 세상의 이목을 끌게 되었던 것이다.


숨겨져 있던 비경을 바탕으로 꽃밭정원을 몬당에 가꾼 젊은 부부의 꿈과 쑥섬 주민들의 협심으로 한 땀 한 땀 가꾸기 시작한 몬당의 꽃밭정원이 전국적으로 이름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 지금의 쑥섬이 있기까지 등댓불 하나로 모든 복이 다시 찾아들었으랴.


객지로 떠나간 모든 쑥섬 사람들이 일구월심 내 고향 쑥섬을 노래하였고 그리워하였으며 다시 좋은 세월이 찾아들기를 바랐으며,


남아 있는 쑥섬 사람들 또한 젊은 부부가 일구고자 하는 몬당의 꽃밭을 위해 오랫동안 금단의 숲이었던 당숲의 문을 열어서 세상사람들이 들어가 볼 수 있게 결단을 내려준 것도 한몫을 했으며,


쑥대밭이 되어 있던 뒷먼밭과 몬당밭들에 자신들의 꿈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한 젊은 부부의 피와 땀이 있었으니 가능했으리라


거기에 행정당국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니 지금의 쑥섬에 복이 찾아든 것이리라.


어찌 등대 하나로 모든 복들이 쑥섬으로 향해 왔으랴.


다만 그런 구원들이 하나가 되었기에 가능했으리라


거기에 '성화등대'의 불빛이 만인의 길을 제대로 잡아 주면서 만사가 잘 풀리게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화등대의 불빛은 쑥섬에 복을 불러 주는 성스러운 불빛인 것이라고 여전히 믿는 것이다.


쑥섬에 들어와 있는 사흘동안 '쑥섬호' 1, 2호가 쉴 새 없이 탐방객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한 척으로는 찾아드는 탐방객들을 다 실어 나를 수 없어서 한 척 더 늘렸다는 것이다.


어제 하루만도 1,700명이 연휴를 맞아 쑥섬으로 들어왔다고 하니 이제 쑥섬은 전국적으로도 이름을 얻고 '나간 복이 다시 돌아오라'라고 했던 소망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그 시기가 '성화등대'가 쑥섬에 들어온 시기부터였다는 것이다.


성화등대는 그래서 쑥섬마을에 복을 가져다준 고마운 존재였던 것이다.


'늘 좋은 일만 생기실 겁니다'


신 회장님과 함께 오신 전주 문학회원 여러분과 쑥섬을 다녀가시는 모든 분들께 그 말씀을 올리고 싶었던 것이다.


"앞으로 좋은 일들만 생기실 겁니다"


성화등대


바로 오너라 그대여

오는 길 바로 와야 가는 길 바로 간다

목포에서 오는 길이더냐

여수로 가는 길이더냐


아직 갈 길이 멀다


졸지 마라 졸지 마

지척이 중빠진굴이요

더 가면 천길 절벽 오리똥눈디, 오지안, 배밑*이다


사는 일, 사람 일 밑도 끝도 없이 막막한 길일지라도

망망대해 성난 파도 어둠 속 길일지라도

울지 마라 울지 마 길동무는 늘 있게 마련

멀리 가는 길 남은 길 마저 가야 하느니


여기 한 점 성화등대 그댈 위해 밤마다 꽃 피우니

모든 성화 여기 두고 세찬 조류 휘돌아 가는 도런바구*로

모두 다 떠나보내라


가벼웁게 그대 가는 길 그대로 자알 가시길

저기 저 일출 따라 저기 저 수락도 너머 석양을 따라


가던 길 끝까지 잘 가게 되리라.


*중빠진굴, 오리똥눈디, 오지안, 배밑, 도런바구 : 성화등대 주변 벼랑 아래 바위 이름

출처 : 제4시집 '쑥섬이야기' 중 15페이지


'오리똥눈디'에서 바라본 '성화등대'의 모습이다. 필자는 이 등대가 쑥섬에 복을 가져다 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화등대는 목포방향에서 여수방향으로 항행하는 배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밤에 항행하는 길잡이 '성화등대'가 쑥섬에 복을 가져다주는 고마운 존재인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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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