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이야기(54)

쑥섬에는 해달이 산다

by 명재신

쑥섬에는 해달이 살았다.


'우끄터리 통안'에 살았다.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소리와 흔적으로 그들은 늘 우리 주변에 함께 살고 있었다.


여름밤에 배를 타고 밤낚시를 나가면 우끄터리 샘밑 즈음에서 그들은 놀고 있었다.


칠렁칠렁 하며 여름밤에 무수의 별빛이 쏟아져 내리는 수면 위를 유영하며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더러는 가까이 다가왔다가 안부라도 전하는 듯이 물장구를 치면서 다시 물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들의 울음소리는 고양이 울음을 닮았지만 더 우렁찼고 더 우아했다. 청명한 여름밤을 가로지르는 유성의 속도로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낭랑하였고 청량하였다.


그들은 쑥섬의 아름다운 풍경과 가난하였지만 넉넉한 유년의 기억 속에서 늘 함께 하였다.


하지만 그 해달이 사냥꾼 덫에 걸려 죽임을 당하고 가죽이 벗겨진 채 거꾸로 매달려 있던 어느 기억 속의 한 컷으로 해서 더 이상 쑥섬에는 해달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날은 '중빠진 굴'로 낚시를 다녀오던 길이었다.


'중빠진 굴'에서 제법 많은 노래미를 낚고서는 '도런바구'를 거쳐서 '통안'으로 접어들던 차였다.


쩌렁쩌렁 울리는 비명소리를 듣은 것은.


어미 해달 한 마리가 '통안'의 둠벙 근처에서 덫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남아 있는 기력으로 인기척을 듣고서는 풀어달라고 마지막 울음을 울고 있었다.


날카로운 이빨과 적의의 눈빛으로 그 덫이 가두어 놓은 반경으로부터 벗어나 새끼들이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외지 사냥꾼들이 해달을 잡기 위해 쳐 놓은 덫은 굵은 쇠사슬에 연결되어 쇠말뚝으로 고정되어 있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가까이 갈 수 조차 없었다


너무나 커다란 비명으로 '통안'은 온통 그 어미 해달이 내어지르는 소리로 가득 차 버렸다.


얼마 뒤 어미 해달은 우끄터리 동백숲 초입에 '키 작은 동백나무'에 가죽이 벗기워진 채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잔인한 외지 사냥꾼들은 '뱀바구' 앞 갯가에서 버너에 불을 붙여 물을 끓이고 있었다.


우끄터리로 낚시를 가던 중에 그 끔찍한 모습을 목도한 아이들은 경악을 하고 마을로 도망쳐 돌아와 버렸다.


'키 작은 동백나무'는 유년의 아이들이 즐겨 타고 노는 나무였다.


이후로 아이들은 키 작은 동백나무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아니 가지 못했다.


'키 작은 동백나무'는 더 이상 예전의 쑥섬 조무래기들의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껍질을 가진 우끄터리 초분골 초입에서 인사를 나누던 친구가 될 수 없었다.


'키 작은 동백나무' 켠을 지날 때마다 먼산을 보든지 바닷가에 '갈매기 도팎'을 보거나 멀리 '수래기/수락도'를 건너다보는 것으로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기억하기 싫은 기억이었다.


경이롭고 신비스럽기까지 했던 해달의 윤기와 울음소리는 동백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울고있는 '짐상스러운/징그러운' 모습으로 대체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날 이후, '키 작은 동백나무'는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섬을 떠난 아이들이 키를 키우고 주름을 늘리고 나이를 먹도록 기억에 기억을 켜켜히 쌓아 나갔지만 그날 이후로 그 키 작은 동백나무는 더 이상 관심의 대상도 추억의 대상도 되지 못했다.


그저 지우고 싶은 과거의 흉터였을 뿐이었다.


'한국에는 해달이 살지 않습니다'


어쩌면 동생도 나도 그런 주장에 근거해서 유년의 기억들을 지워나가고자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추운 지방인 캄차카 반도이거나 일본의 북해도 연안에서만 서식하는 해달이 한반도의 남쪽에 서식할 수는 없었을 것이니 어릴 적의 그 안타까운 기억들까지도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이야기 같았다.


'통안'을 지나칠 때도 '키 작은 동백나무' 주변을 지날 때도 그 자리에는 형제가 늘 함께 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부터 해달은 없었고 바다에 사는 수달만 있었다고 보면 됩니다'


더 깊이 있는 이론과 근거를 가지고 쑥섬의 해달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하는 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그 '키 작은 동백나무' 조차도 그럼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타의에 의하여 우리 유년의 키 작은 동백나무 한 그루 또한 그날 이후로 얼마나 끔찍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아왔을 것인가.


기억에서 사라져 간 그 '친구'는 아직 살아남아 있을까 아니면 흔적을 지우고 그 자리에서 자취를 감췄을까.


'해달이 배에 올라와서 삼치를 털어 먹는다'


얼마 전에 반가운 소식 하나를 '만년 청년 권호 씨'가 전해 주었다.


다시 해달이 보인다는 말이었다.


'해달'이 쑥섬 '건몰짝'까지 진출해서 배에 올라가 아이스박스 뚜껑을 열어 삼치를 꺼내 먹고 갔다는 거였다.


멸종위기종인 해달이 돌아온 것일까?


동생 말대로 '하천에 살던 수달'이 뭍으로부터 영역싸움에 밀려 도서지방까지 내려와 '바다에 사는 수달'이 되어 쑥섬에서 새로운 토박이로 자리 잡은 것일 수도 있었다.


모두에게는 '바다에 사는 수달'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여전히 '쑥섬 해달'이었다.


흔적까지도 지워버리려고 했던 '키 작은 동백나무'에 대한 기억도 그리고 우끄터리를 호령하던 해달의 우렁찬 울음소리 또한 오랜 기억으로 부터 소환해도 될 때가 된 것인가.


'이제 쑥섬에는 해달이 산다!'


그래서 오월 연휴에는 쑥섬에 들어가 해달의 자취도 찾아보고 키작은 동백나무에도 안부를 전하고자 한다.


키 작은 동백나무


어쩌랴

우리 잘못이 아니었는데


단지

어미 해달을 매달았다는

이유로


아무도 찾지 않고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세월


살아 있었으되

죽어지냈구나


뭍에서 건너온 사람들

뭍에서 건너온 수달들

설치고 다니는 시간들


이제는 돌아와 다시

꽃들이 만발하는 섬


한번 안아 보자꾸나

한번 품어 보자꾸나


우리 함께

다시 살아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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