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이야기(50)

어봉호 이야기

by 명재신

‘어봉호 이야기‘



그 아이는 ‘쑥섬 당골래/무당'의 아들이었다.


그 아이가 갯돌로 내리치는 것을 나는 손으로 받았다. 힘으로 안되니 녀석은 비겁하게 갯돌을 잡아 들었다.


‘다시 고기를 많이 잡아 올 거야!’


녀석이 다시 엉겨 붙었다. 내가 박치기로 그 아이를 받았다. 그 아이가 머리를 붙들고 떨어져 나갔다.


‘물벙새가 무슨 고기를 잡는다는 거야?’


그 아이가 다시 갯돌을 치켜들고 눈에 불을 켰다. 뒤에는 엉거주춤 ‘물벙새 어벙호’가 색이 다 바랜 오색 깃발을 나부끼고 있었다. 비어있는 ‘갱본/갯가‘에 달랑 한 척의 배만이 오도카니 얹혀 있었다.


'물벙새 어벙호'의 원래 이름은 '어봉호'였다.


너무 오랫동안 출어를 하지 않은 탓에 배의 밑창에는 파래와 김이 자라났다가 탈색이 되어서 노인네 흰수염처럼 치렁거렸다. 자주 바닷물이 새어드는지 선주였던 '근홍이네 할아버지'가 하루가 멀다 하고 기관실에 찬 물을 퍼내고 있어서 '물벙새 어벙호'라고 불렀다.


‘우리 엄마가 그랬어 다시 대삼치를 잔뜩 잡어서 돌아올 거라고 ‘


쑥섬의 말뚝들은 텅텅 비어 있었다.


여전히 나로도 주변에서는 철마다 좋은 고기들이 수도 없이 잡히고 있었다. 우리나라 최대 삼치파시가 열리고 있었던 나로도항은 일본으로 직수출하는 무역선이 시나브로 드나들었고 어판장에서는 참장어며 병어며 새우가 넘쳐나고 있었다.


하지만 쑥섬으로 들어오는 배들은 더 이상 없었다.


쑥섬의 앞바다는 들고 나는 배들로 세 겹 네 겹의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고 했다. 선원들도 선주들도 보급품을 조달해 주는 마을 사람들도 신바람으로 늘 활기가 넘쳤다고 했다.


그랬다던 쑥섬 앞바다의 배들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는 모두 나로도항으로 몰려가 버리고 없었다.


이제는 쑥섬은 나로도항의 방파제 역할 밖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로도항으로 몰려드는 바람과 파도를 막기 위해 나라에서는 쑥섬의 양쪽으로 커다란 방파제를 쌓았다. 그리고 쑥섬과 작은섬 사이까지 방축을 쌓아서 쑥섬 뒤쪽에서 몰려드는 거친 파도와 바람을 막게 했다.


이렇게 방파제 역할만 하게 되면서 건너편 축정마을이 나로도항으로 피항지와 기항지의 역할을 하게 되고 어업전진기지로 이름을 얻게 되면서 천연 피항지였던 쑥섬으로는 더 이상 배들이 들어오지를 않게 되었던 것이다.


덩그러니 ‘물벙새 어벙호‘ 한 척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날의 싸움도 그것 때문이었다. 나는 ‘엿장수 만식이’가 나룻배에 건너올 시간대에 맞춰서 ‘똥못/목선에 쓰는 쇠로 된 못’을 주워 엿으로 바꿔 먹기 위해 ’ 갱번‘으로 내려와 있었고 그 아이는 ‘갱번‘에서 내다 버린 유리구슬이라도 주워 보려고 내려왔다가 ‘물벙새 어벙호’를 두고 시비가 붙었던 것이었다.


나는 어봉호 주변을 어슬렁 거리며 '똥못'을 찾으면서 늘 부르던 사설을 흥얼거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물벙 물벙 물벙새야 / 언제나 서바닥에 나가 볼래 / 어벙 어벙 어벙새야/ 언제나 대삼치 잡어다 줄래 / 어벙 물벙 어벙호야 / 작은삼치나 몇 마리 잡어다 주소’


그 아이는 어봉호를 놀리지 마라고 그랬고 나는 그 사설을 반복하면서 시비가 붙었던 것이다.


‘늘 병어, 삼치로 만선이었대. 지금 근홍이네가 기와집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저 배가 돈을 많이 벌어다 줘서 그랬다고 했어.’


용왕굿의 영험으로 쑥섬 부귀영화를 불러들였다고 하는 ‘쑥섬 당골래’가 그 아이의 엄마였다.


그 아이와 엄마는 ‘덤불샘‘ 위에 있는 집에 살았다. 어떻게 그 아이의 엄마가 당골래가 되었는지 언제부터 쑥섬으로 들어와 당골래를 하고 있었는지는 아는 바가 없었지만 그 아이는 늘 당찼고 기가 셌고 영민했다.


'야, 어벙호에 굿을 한다고 그 물벙새가 어떻게 다시 고기를 잡으로 바다로 나가냐’


‘엄마가 하는 용왕굿은 늘 영험하댔어!'


‘그래서 많다던 배들은 없어지고 저 어벙호 한 척만 남었냐?’


올해 정월 보름날 어봉호의 만선풍어를 위한 용왕굿이 선창에서 한판 벌어졌었다.


묵은 오색깃발이 다시 걸렸고 여러 날을 근홍이네 할아버지는 어봉호 밑창에 부착물들을 제거하느라 땀을 흘렸었다. 거기에 불을 붙인 버너로 배 밑창을 그을려 주는 ‘연애‘를 시켜 주니 비로서 번듯한 어선으로 한창 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거기에 페인트까지 칠을 하니 금세라도 힘찬 기관음을 내면서 쑥섬 앞바다를 한 바퀴 돌고서는 서바다로 병어와 삼치를 잡으러 출항을 할 기세였다.


어른들 이야기 속에서나 들을 수 있는 '돈섬'으로 떵떵거렸던 쑥섬의 좋은 시절을 다시 불러 들일 것만 같았다.


쑥섬의 마지막 당골래였던 그의 엄마는 자신의 모든 기력을 다 끌어내어서 '건몰짝' 선창에서 용왕신을 청하였다. 어봉호의 이름과 선주인 근홍이네 할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만선과 풍어를 축원하였고 그 앞에서는 나로도 도가 막걸리 힘을 빌어 남은 진력을 다해 근홍이네 할아버지도 휘청거리며 춤을 추면서 썩썩썩 비손을 하였다.


그 기세로 금방이라도 어봉호는 출어를 하여 대삼치를 배가 가라앉도록 잡아서 만선깃발로 징과 괭과리를 치면서 쑥섬으로 들어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 축원이었다.


거창했던 그 용왕굿도 별 수 없었다. 어봉호는 한식날 화전놀이를 하고서 한참을 지나고서도 출항을 하지 못하고 돌말뚝에 줄을 걸고 쑥섬 앞 ‘갱본/바닷가’에 떠 있었다.


오기로 했던 선장은 인근 섬의 더 큰 배 선장으로 가버렸고 오마던 선원들도 더 이상 쑥섬으로 건너오는 나룻배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출항을 위해 준비한 돈들도 바닥이 나도록 어봉호는 돌말뚝에 묶여 있었다.


근홍이네 할아버지가 다시 기관실이나 물칸에 찬 물을 퍼내느라 하루가 멀다 하고 오르내리고 있었다.


‘어봉호‘는 다시 '물벙새 어벙호‘가 되어 버렸다.


그 아이가 그랬다.


쑥섬에서 선주들이 기와집을 짓고 고흥 가는 길에 전답을 사서 지주가 되게 한 것도 자기 엄마가 영험해서 그 굿으로 해서 매번 만선으로 들어오는 것이라고.


하지만 쑥섬의 몬당으로 올라가서 목이 터져라 복을 부르던 동네 형님들의 '뇌성화'의 구원도 쑥섬의 부를 불러주고 늘려 주었다던 쑥섬 마지막 당골래의 용왕굿의 영험도 효험도 없었다. 더 이상 선장도 선원들도 쑥섬으로 건너오는 나룻배에 몸을 싣지 않았다.


‘선장도 없는 저 물벙새가 어떻게 다시 바다를 나가냐고 ‘


'갱본/바닷가’에는 수없이 박혀 있던 돌말뚝과 나무말뚝은 여전히 비어 있었고 하나둘씩 삭아서 흔적을 지워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엄마가 그랬어. 다시 쑥섬으로 사람들을 불러 들일 거라고’


그 아이의 눈에는 쌍불이 다시 켜졌다.


그 불은 마치도 자기네 엄마가 만선축원을 해 주던 선창에서 쑥섬으로 몰려드는 외지 사람들을 맞이하면서 춤을 추는 모습을 건네다 보는 거 같았다.


‘야 그런다고 사람들이 무얼보고 들어 온다는 거냐?’


내가 다시 그 아이에게 박치기를 하려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녀석의 이마로 숙이는 순간 눈에 번갯불이 번쩍 일었다. 녀석이 어느 사이에 갯돌로 나의 이마를 내리친 것이다.


머리에서는 금세 피가 솟았고 얼굴로 피가 주루루 흘러내렸다.


‘야, 이놈들’


어봉호를 손보고 있던 근홍이네 할아버지가 금새 달려왔다.


'이놈들, 이놈들아 그만해라 그만해'


한방을 찍힌 나는 다시 놈에게 박치기를 하려고 근홍이네 할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이 자식이'


이마의 피를 소매로 닦아 내며 그 아이에게 다시 달라 들었고 나도 제발 니 말대로 그랬으면 좋겠다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녀석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내 단단한 이마로 녀석을 내리찍었다.


‘더 이상 옛날 이야기 하지 마!'


나는 ‘쑥섬의 박치기 왕’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내 이마를 피하지 않고 자기 이마로 맞받으며 그랬다.


‘쑥섬으로 다시 사람들이 몰려올거야!’



‘어봉호’


어복호(魚福號)였겠지?


서해 연평도까지 갔다 왔다고

동해 대화퇴도 드나들었다고?


물벙새여서

허구헌 날 물을 퍼내던

근홍이 할아버지

한 때 돈방석에 앉혔다고?


어봉호야 어벙호야


설날이면 한창때 깃발 휘날리며

만선 귀항 꿈꿨을 터


지금은 어느 바다로 나서서

만선을 꿈꾸고 있을까?


오른쪽 돌계단 앞에 늘 ‘물벙새 어벙호’는 말뚝에 줄을 걸고 오랫동안 정박해 있다가 시간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 계단 앞에서 ’쑥섬 당골래’ 아들하고 박치기 싸움을 했었다.
쑥섬 주변으로는 돌말뚝과 나무말뚝이 수도 없이 박혀 있었다. 모두 배들이 정박하는데 ‘모릿줄‘을 매는 말뚝이었다. 지금은 길을 넓히면서 모두 묻혀 버렸다.
한창 때는 70여 척의 배들이 여기에 두 겹 세 겹으로 정박해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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