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제목을 보고 그 누군가가 '웬 자수?'하고 들어와서 시를 읽어보고는 '낚였다'라고 생각을 하시면서 허망한 웃음을 웃고 계시겠거니 생각을 합니다.
예 맞습니다. 낚을 의도가 있었고 제목을 보고 끌려서 들어오셨다면 제가 제대로 '지수'를 한 것입니다.
<지수 해라>
나이를 먹어가면서
무엇이 달라졌냐고 물어 오길래 가만 생각해 보니
없는 것 같은데
있다
아무리 공을 들여도 감흥이 없는 내 무딘 감각 같은 거,
말고
잔소리가 많아지고 잔머리를 많이 써 머리가 다 빠진 거,
말고
인사가 밝아 쓸데없는 거에 인사를 더 많이 하는 거,
말고
눈덩이처럼 불어난 학자금 은행 대출 빚과 같은 거,
말고
어쭙잖은 육십이 다 되어 가니
자꾸만 돌아가신 울 아버지가 생각나는 거다
'다시 지수 해라''
울 아버지 생전 그 목소리가 자꾸만 들리는
거다.
2022. 11. 8
'지수'라는 말은 남도 섬 지방에서 쓰는 배낚시 용어로 '낚시 추의 높낮이를 다시 맞춰라'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같이 나로도에서 나고 자란 초등학교 동창들조차도 그 말을 모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배를 부리지 않은 집에서는 알 수가 없는 말입니다. 무얼 잘못해서 경찰서에 가서 '자수해라'라는 거냐고 되물어 오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왜 '설내끼'라고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노 젓는 작은 배로 시작을 하였다가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나오기 시작한 경운기의 머리를 떼어다가 달아 동력선으로 제법 먼 곳까지 드나들면서 하던 외줄낚시 또는 한 줄낚시를 '설내끼'라고 불렀는데 배 낚시업은 7,80년대에 고향 쑥섬을 포함해서 나로도의 몇몇 마을의 주업이었습니다.
나로도 주변에서 나는 민어, 감성돔, 농어와 능성어 등 주로 고급어종을 낚아 '물칸'이라고 하는 배 안의 수조에 활어상태로 살려서 수협에다 내다 팔았고 능성어는 살려서 일본으로 보냈기에 그 고기금들이 제법 나가서 당시에 나로도항의 주 수입원이었습니다.
먼바다에서 민어들이 들어오는 사월 말 오월 초가 되면 나로도 염포마을과 곡두여 사이에 있는 '중걸/가운데 여'를 중심으로 많은 낚싯배들이 일명 '통치살이'라고 하는 민어잡이 낚시를 했었습니다. '통치(일부지역에서는 퉁치라고도 함)'는 민어 중에서 크기가 어른의 팔뚝 크기보다 적은 사이즈를 일컫는 말로 민어-통치, 농어-깔때기, 감성돔-빌돔과 같이 같은 어종이어도 그 크기에 따라서 부르는 말이 달랐는데 '통치살이'는 나로도 인근에서 유일하게 잡히는 염포마을 '벼락바위'와 '곡두여' 사이의 물속 바위('여' 또는 '걸'이라고 부름)인 '중걸 또는 가운데 걸'이라고 하는 곳에서 많이 잡혔고 그 잡는 시기를 '통치살이'라고 했드랬습니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어탐기/소나가 없었기 때문에 주변의 세 군데 섬의 위치가 겹치는 부분을 확인했다가 그 위치 즈음에서 같은 배의 구성원들에게 '지수해라'라는 말을 하면서 곧 다다를 물속 바위의 높이만큼 낚시 추를 들어 올리도록 주문을 했고 이어서 '투툭'하는 씨알이 그저 그만한 통치가 입질을 하거나 운이 좋으면 '두두둑' 하면서 끌고 들어가는 어른 팔뚝보다 큰 미터급 민어도 입질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듯 잠시 잠깐의 포인트에서 그날 입질을 잘 받아 한 마리의 민어라도 낚게 되면 그냥 쌀 한 가마니를 건지는 거였고 조금 아쉬웁기는 하지만 통치라도 입질을 받아 낚아 올릴라치면 쌀 한 말 값을 벌어 들이는 것이었으니 늘 낚시 바늘의 위치를 어쩌든지 물속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는 물고기의 바로 눈앞에 대령을 해야 했기에 그날의 운수는 바로 그 '지수'하는 것과 맞아떨어져야 몇 마리라도 낚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통치살이가 끝이 나면 나로도 주변뿐만 아니라 거문도까지도 원도 출조를 나가는 배들도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고속엔진을 단 전문 낚싯배들이 여수에서도 한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소거문도, 손죽도, 평도, 광도 등을 드나들고 있지만 당시에는 제법 시간을 들여야 닿을 수 있던 먼 섬을 드나들며 씨알 좋은 물고기를 낚어다가 팔았습니다.
외줄낚시의 구성은 '갱심'이라고 하는 원줄과 '봇돌'이라고 하는 추와 '애리장(일본어가 그때까지 남아 쓰였던 것 같음)'이라고 하는 목줄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물론 도래도 주요 용구 중에 하나입니다.
'봇돌'로부터 낚싯바늘까지의 낚싯줄은 원줄보다 가는 것으로 쓰는데 주로 8호 정도였고 좀 대물을 겨냥할 때는 12호 정도로 제법 굵은 목줄을 써는데 아마도 그건 대상어종이 씨알이 큰 것들을 겨냥했었던 거 같습니다.
관건은 어떻게 그 날 그 물때에 물고기의 활동 층을 찾고 그 높이를 노리고 낚싯바늘이 지속적으로 그 높이에 유지를 하느냐였는데 그건 낚시를 매다는 목줄의 길이를 자신의 양팔 간격의 길이만큼 해서 먼저 봇돌을 바닥에 찍고 나서 앙팔 간격으로 그 높이만큼 들어올리느냐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레 새우를 매단 낚싯바늘이 바닥층을 유지할 수 있게 하거나 활동층에 미끼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낚싯바늘을 바닥층이나 활동층에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하는 들어 올리는 행동을 '지수하다'라고 했습니다.
조류를 따라서 흘리는 낚시를 하는 까닭에 수심은 수시로 바뀌게 되므로 그 적정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주 '지수'를 해야지만 물속의 지형에 맞도록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걸 제 때 하지 못하면 낚싯바늘이나 추가 물속 바위에 걸려서 결국 끊어져 버리게 되었기에 자주 해야만 했던 그런 동작이었던 것입니다.
'지수'를 자주 하는 것은 바다물속의 보이지 않는 물고기의 서식층이나 활동층과의 거리를 최대한 근접거리를 유지하도록 하는 그런 동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주 살펴라'는 말이고 물고기 한 마리를 낚더래도 '공을 들여라'라는 말이기도 할 거 같습니다.
나이를 들어 갈수록 세상 사는 일이 쉬워질 거 같은 데 그러지를 못하는 거 같습니다. 어쩐 일이든지 쉬이 다룰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러지를 못하는 것을 느낍니다.
공을 들이지 않고 설익은 경험으로만 매사를 대응하고자 하는 무모함으로부터 그런 일들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쩌든지 살아갈수록 앞이 더 밝아질 거만 같은데 살아가는 날 수가 많아질수록 살아가는 게 더 막막해지는 거 같습니다.
'지수해라 재신아'
오늘은 일곱물입니다.
가장 조수간만의 차가 많이 생기는 날입니다. 쑥섬을 떠나 평도까지 가야 하는 아버지는 새벽 세시에 일어나 낚시장구를 챙겨서 배의 발동을 겁니다. 그리고 어둠을 헤치고 배를 몰고 머언 손죽열도 중에 하나인 평도로 향합니다. 오늘은 나가는 감쉐이를 겨냥한 물때를 맞추려고 나섭니다.
머언 바다로 홀로 나서는 아버지의 새벽 어둠을 봅니다. 평도 앞에 있는 '작은여/작은 물속 바위'에 도달을 한다고 마냥 대물들이 물어준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든지 물때를 맞추고 지수를 자주 해서 그놈들이 낚싯바늘을 물 수 있도록 모든 비위를 다 맞춰야 하루 한 번의 입질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 한 번의 때을 위하여 낚싯바늘의 크기를 고르고 애리장/목줄의 굵기를 선택하고 그리고 물때를 생각을 할 겁니다. 초썰물에 맞출 것인가 초들물에 맞출 것인가. 미끼 새우를 참새비/대하로 쓸 것인가 독새비/돌새우로 쓸 것인가. 오늘은 물이 세니 '지수/추의 높낮이'를 얼마만큼 할 것인가. '발 가웃/한 발 반'을 할 것인가 그냥 '한 발/양팔 간격'만 할 것인지. 혹여나 목줄에 매듭은 없는지.
모든 변수를 살펴서 한 번의 입질에 대비를 할 것인데 그러자면 우선 나의 상태를 수시로 잘 살펴서 그것이 잔챙이가 될지 대물이 될지는 잘 모르지만 공을 들이라는 말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