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는 마디가 있다
마음이 급해지면 동작이 경직된다. 근육에 힘이 과도하게 들어가기 때문이다. 마음의 여유를 없애 짜증이 유발돼 화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조급한 마음, 화를 내는 것은 마음에 마디가 생긴 것이다. 대나무 가지에 마디가 있듯이 마음에도 마디가 있다. 마음의 마디는 몸의 상태를 드러낸다. 경직되거나 흥분된 상태이다.
왜 마음의 마디가 발생하는지 살펴보자.
거스르는 몸짓은 마음의 마디를 유발한다
은행을 들어갈 때 출입문을 어떻게 여는지 관찰해보자.
밀면서 여는 것이 아니다. 당기면서 여는 것이다.
은행 문을 연다는 것은 걸어가는 같은 방향으로 손을 뻗는 것이다. 자연스러우며 별다른 힘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은행 문을 당겨 열기 위해 일단 걸음을 멈춰야 한다. 걸음의 진행방향과 반대방향으로 힘을 써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더 크게 된다.
심리적으로나 근육생리학적으로 급할 때는 움직임이 직진하기 마련이다. 멈추거나 몸을 뒷방향으로 기울이지 않는다. 은행에서 용무를 마치고 출입문 앞에 선다. 나가려는 동작을 일으킬 때 머릿속에서는 진행 방향을 주시하고 앞발을 드는 순간 뒷발로 강하게 지면을 밀어낸다. 짧은 거리에서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다.
그런데 시선과 자세가 앞 방향으로 나가고자 상체는 앞으로 기울여 무게중심은 앞으로 쏠려 있는 데다, 추진력을 얻고자 뒷발로 지면을 강하게 밀고 있는 상태에서 멈추기란 쉽지 않다.
은행 출입문이 당겨야 열린다는 것이 이제는 보편화됐기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있다. 시행 초기에는 문을 밀쳐여느라 죄 없는 출입문만 골탕 먹었다.
문 앞에서 갑작스럽게 멈추려는 동작을 살펴보자.
앞발에 제동을 걸고 앞으로 기울어진 상체를 일으켜 세운다. 시선을 진행방향에서 급작스럽게 문으로 옮겨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근육에 신속히 전달되어야 한다. 글루코스와 산소를 담은 혈액이 신속히 팔과 발로 이동시키고자 심장 박동은 급히 상승한다. 갑자기 늘어난 혈액량 때문에 혈관 내 압력이 높아져서 혈압은 치솟는다.
혈압이 높으면 흥분하기 쉽다. 시야가 좁아지고 판단력이 흐려진다. 은행 범죄자가 범행 후 도주할 때 직진하게 된다. 이런 심리를 역이용한 것이 은행 문의 작동방식을 바꿔버린 것이다. 열면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당긴 후에 나가도록 말이다.
급하게 걸을 때 잠깐 멈췄다가 다시 걸어 보자.
힘이 든다.
왜 그럴까?
다시 걷기 시작할 때 많은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 도로 주행 중 횡단보도 앞의 빨간불에서 정지했다가 예측 출발하고자 할 때이다.
보통 운전자들의 패턴을 보면, 파란불로 바뀌자마자 바로 출발한다. 신호등이 빨간불에서 파란불로 바뀌기 위해 주황색 불이 깜빡거릴 때 벌써 오른발의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가속페달을 밟으려는 예비동작으로 들어간다. 그 동작을 하기 직전에 무의식적으로 앞 차의 브레이크 등에 불이 꺼지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왜냐면 정지상태에서는 브레이크를 밟고 있기에 자동차 후미의 브레이크등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다. 이 불이 꺼진다는 것은 곧 앞 차가 출발한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1~2초 사이에 이루어져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대략 3초만 지체되어도 뒤차 운전자는 벌써 클랙션 보턴에 손이 올라간다. 앞차더러 빨리 출발하라고 알리려는 것이다.
왜 3초 인가?
뒤차 운전자는 신호가 바뀌자마자 출발하기 위해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고 가속페달을 바로 밟기 위해 긴장되어 있다. 이 짧은 순간에 오른쪽 하체 근육이 긴장되어 있다. 이 동작을 실현하기 위해 그 부위로 상당히 많은 신경전달물질과 혈액 속에 산소와 영양물질이 빠른 속도로 공급되고 있다. 그런데 예상되는 1~2초가 아닌 대략 3초 정도 경과하면 준비된 동작을 갑자기 멈춰야 하기 때문에 분노 호르몬인 아드레날린 분비가 촉진되면서 신경질적인 경적을 울리게 되는 것이다.
급한 동작이나 흥분된 마음은 마음을 들뜨게 한다. 마음의 마디를 만들어낸다.
급한 마음은 섬세한 몸짓을 만들기 힘들다
마음이 급하거나 긴장되면 동작이 크다. 움직이는 뼈와 뼈 사이의 각도가 커진다는 것이다.
근육이 긴장되면 작은 뼈들을 조절하는 근육을 쓰기보다는 큰 동작을 만들어내는 근육이 중심이 된다. 섬세한 동작을 만들어 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은행의 소매치기는 문을 열고 나가고자 할 때 안에서 잡아당겨 열기보다는 밀어서 여는 것이 순간적으로 더 편하다. 급한 출근길에 와이셔츠 단추 구멍을 끼우기 힘든 것도 같은 원리이다. 빨리 끼우고자 팔과 손가락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근육을 과도하게 수축하게 만들기 때문에 작은 구멍으로 단추를 넣는 세밀한 동작이 잘 나오지 않는다. 실패만 거듭되면 마음이 더 급해져 화만 나게 된다.
과거 군부대에서 군화는 군화끈을 작은 구멍에 넣어 꿰어 쓰는 방식이어서 비상출동 시 애를 먹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에는 개선된 군화로 자크형이 나와 있다.
경직된 근육은 세밀한 동작보다는 큰 동작을 위주로 만들어낸다.
왜냐하면 뼈와 뼈 사이는 관절로 연결되어 있는데, 부드럽게 움직여야 작은 동작, 세밀한 동작, 각이 작은 동작이 구사된다. 손가락으로 무엇을 집는다는 가, 단추를 꿰맨다든가, 방향 전환을 한다든가 하는 동작의 구현이 가능하다. 급하게 움직이는 동작은 각도가 작은 동작을 만들어 내기가 어렵다.
마음이 급해지면 동작도 빨라진다
마주 오는 상대방과 잘 부딪칠 때를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버스에 타고자 할 때, 지하철 개찰구에 먼저 들어가고자 할 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거나 타고자 할 때 잠시 속으로 숫자를 헤아려 보자. 또는 시계를 들고 재보자. 대략 1~2초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 순간만 기다리면 서로 행동이 중첩되지 않는다. 이것은 심장 박동수와 관계가 있다. 심장 박동이 빠를수록 행동도 빨라진다. 예를 들어 혈압이 높거나 다혈질의 경우에는 행동이 빠른 이유가 심장 박동수가 빠르기 때문이다. 달리 보자면 이러한 경우에 행동을 반박자 느리게 해 보자. 행동을 급하게 해서 생기는 실수 등을 예방할 수 있게 된다.
마음의 요동은 몸을 경직시킨다
마트 계산대에서 줄 서기에도 마음의 마디가 있다.
자기 순서를 기다릴 때 저마다의 대기시간이 있다. 이 시간이 넘어서면 자기도 모르게 조급해진다. 보통 줄 서기 지연에 따른 마음의 불편함이 발동되는 것은 자기 줄의 바로 앞 또는 두 번째 앞에서 지체될 때이다. 3~4명 앞이라면 심리적으로 내 차례가 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리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1~2명 앞이면 달라진다. 곧 내 차례가 되리라 생각되어 무의식적으로 지갑에 손이 가고 빨리 물품을 들고 가게를 나가고자 하는 일련의 예비동작들이 준비된다. 앞줄의 지체로 멈칫하는 순간, 혈압이 오르면서 분노 호르몬, 아드레날린 분비가 증가하면서 심박수도 증가하고 마음이 급해진다.
계산하고자 하는 손님이 상품을 옮기거나 계산원의 동작에 순조롭지 못한 변수가 생겨 예상 시간보다 10여 초 정도 늦어지면 벌써 마음이 불편해진다. 눈 주위 근육이 긴장되기 시작한다. 지체되는 장면을 응시하며 도대체 왜 내 앞에서 멈칫대는지 불편한 심정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대체로 멈칫대면서 걸리는 계산원과 고객 사이의 계산과정은 50초~1분 정도 지체된다. 이럴 때 보통 왜 유독 내 줄만, 오늘따라 지체되는 걸까 느끼게 된다.
마음에는 긴장과 이완의 마디가 있다
지나간 과거에 대한 집착은 마음의 마디이다.
집착을 떨구는 것은 마음의 마디를 풀어내는 것이다.
마디가 사라지면 마음에 변화가 생긴다. 긴장된 상태에서 편안하고 여유로운 상태로 바뀐다.
대화를 보자.
마음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다가 어딘지 막히면서 답답해지는 순간이 마디이다.
상대방 말이 길어지는 경우이다. 개인에 따라 상대방 말에 집중하는 시간이 다르다. 성격이 급하거나 일에 쫓기고 있을 때는 그 시간이 짧다. 만약 이 시간을 넘어서면 조급해지면서 몸을 움찔거리거나 입술 근육에 힘이 간다.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몸짓인 것이다. 내가 말할 타이밍에 상대방이 대화에 끼어드는 경우도 그렇다. 이 때는 순간적으로 조급해진다. 마음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다가 끊겨버리는 '마음의 마디'인 것이다.
스마트폰 세대에게 카톡은 마음의 마디가 더 짧다.
카톡을 보내면 상대방이 내 글을 읽었다는 숫자 1이 언제 사라지나 확인한다. 거의 몇 분 동안은 답문자가 안 오나 신경이 쓰인다. 연인 사이라면 카톡을 보내고 30초가 지나도록 반응이 없으면 지금 바쁜가 보다 생각한다. 10분이 지나면 초조해진다. 뭔가 문제가 있나? 초조감과 걱정이 들다가 급기야 화가 날 수 있다.
마음의 마디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는 너그러워질 수 있기에 마음의 마디가 매끄럽다. 직장인은 스트레스가 쌓이는 평일이 마디이다. 주말이 되면 쉴 수 있는 상태로 전환되어 마음의 마디가 느슨해진다. 직장인의
가장 큰 마디는 연봉협상과 퇴직이 될 것이다. 승진은 마음의 마디가 사라지고 퇴직은 도드라진 마디가 될 것이다. 학생은 수업시간이 작은 마디이고 시험이 큰 마디이다. 평일 동안 학업에 집중하느라 피곤해진 심신으로 마음의 마디가 굵어졌다기 주말에 엷어진다.
마음의 마디를 없애자
마음의 마디가 사라진 집단의 힘은 크다. 연주자들의 마음은 마디가 사라져서 호흡을 맞추기 수월하다. 교향악단 연주자들의 리듬은 지휘자에 의해 조절이 된다. 마음의 마디가 없는 집단은 한 호흡처럼 움직일 수 있다.
연주자들끼리 오랜 시간 이루어진 숙련의 결과이다.
일상생활의 뜻밖의 상황에서 생면부지의 타인과 마음을 맞춰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고속도로 합류 지점에서 주행 중에 합류하는 차를 만나게 될 때이다. 자신의 차가 먼저 지나가기 위해 속도를 더 내야 할지 아니면 양보하기 위해 속도를 늦춰야 할지 순간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판단에도 상호 간의 마음이 맞는 것이다. 직진하는 차량의 운전자와 합류하는 운전자의 뇌 속에는 각각 차량의 속도에 따른 위치 변화를 보면서 양보할 것이냐 자신이 먼저 지나갈 것이냐를 판단하는 것이다. 마음의 마디가 엉키지 않으면 운전하는 차량의 흐름도 매끄럽다.
마음의 마디가 없으면 대화도 매끄럽다
대화할 때, 매끄러운 대화는 상대방과 나의 말이 서로 부드럽게 밀고 당기듯이 오간다.
상대방이 말하고 있는 동안 나는 듣고 있다. 내가 말할 때를 살펴보자.
목소리는 내쉬는 숨이 성대를 울려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말하려는 순간 제동이 걸리면 (즉 상대방이 말을 끝내지 않고 연이어 말하려 할 때) 나는 순간적으로 말을 멈추어야 한다. 날숨이 순간적으로 정지되어 무호흡 상태가 되고 발성 관련 근육 들(기관지, 가슴, 목 근육, 얼굴 근육)이 제동을 걸기 위해 긴장된다. 이에 따라 신경계가 순간적으로 교란되어 혈압이 올라가고 흥분 호르몬이 분출되다 보니 짜증 나거나 화가 나게 되는 것이다.
리듬을 타는 대화가 좋다. 마음의 마디가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말이 끝나는 순간에 부드럽게 나의 답변이 이루어진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의 리듬이 매끄러워야 하는 것이다. 마음의 맺힌 마디가 없으면 공감이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