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청춘>을 통해 5.18 민주화 운동을 돌이키다
우리 현관에서부터 저기 밑에 있는 양림동까지 학생들이 전부 줄을 섰어요. 체중이 모자라면 그냥 가라고 했거든요. 그중에 춘태여고 학생이 있었는디 애기가 커요. 그래서 금방 피를 빼고 보냈어요. 근디 한 시간도 안 돼갖고 그 애가 딱 총 맞아 죽어서 왔어요. 우리가 얼마나 애통할 것이에요. 금방 피가 식기도 전에 그 애가 와 가지고, 교복을 입고...
-정순자, 5.18 당시 기독병원 간호과장(출처: 『광주, 여성』,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기획, 후마니타스, 2012)
학생들이 병원에 들어온 것을 안 이상, 군인들이 그대로 물러날 리가 없었죠. 놀란 간호사들과 환자들은 다급히 침대 밑으로 들어갔어요. 그랬더니 "우리는 국군이다. 나와라. 간호사 나와라. 우리는 국군이다"라고 방송을 했죠. 정말로 어디 코미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일들이 벌어진 거예요.
-오경자, 5.18 당시 조선대병원 간호과장(출처: 『광주, 여성』,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기획, 후마니타스, 2012)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고 하잖아요. 근데 제가 거기에도 정말 많이 실망했어요. 법이 정말 있을까. 그전에는 완전히 나쁜 사람이 교도소를 가는 줄 알았어요. 근데 제가 5.18을 겪고 교도소 면회를 가서 '아, 이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거기서 느꼈어요. 그때 정신적인 혼란으로 엄청 힘들었죠. 내가 감당하기에는 마음의 상처가 너무 큰 거예요. -정숙경, 5.18 당시 요한병원 상담사(출처: 『광주, 여성』,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기획, 후마니타스,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