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천주교를 통해 '평등사상'을 엿보다
2021년 3월 26일,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역사왜곡으로 논란이 되다가 2회 만에 폐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감독, 작가를 비롯한 제작진들은 사과문을 게시하면서 논란이 끝났지만, <조선구마사>는 아직 방심위 심의를 남겨 놓고 있고 아직 방영되지 않은 <설강화>의 논란이 현재 진행형이죠. <조선구마사>가 사상 초유의 폐지 사태를 일으키자 또 다른 역사왜곡으로 논란 중인 <설강화>도 폐지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조선구마사>는 얼마나 왜곡했기에 폐지까지 되었을까요?
아마, 조선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두 임금 태종과 세종을 왜곡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조선구마사>에 따르면, 태종이 환시에 시달려 무고한 백성들을 도륙하고, 훗날 용비어천가를 발간하는 충녕대군이 조상을 비하하고, 외국인 선교사를 맞이할 때 구석진 곳에 웅크린 채 비굴하게 대접하죠. 더구나, 조선 기생집에 월병, 피단 같은 중국 음식이 널려 있는 모습까지 있으니 중국의 개입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까지 떠돌았습니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닙니다. 시놉에 따르면, 충녕대군이 구마 의식을 배워서 구마 사제가 된다는 설정까지 있다고 합니다. 충녕대군이 편지로 선교사를 불러서요. 충녕대군이 선교사를 부른다? 조선이 어떤 나라인지 조금이라도 안다면, 왕자와 선교사의 교류가 이상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조선의 천주교는 지배층이 받아들인 종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조선의 천주교는 어떻게 전파되었을까요?
뚜렷한 계급주의였던 조선 사회
조선의 천주교는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알아보기 전에 조선의 계급 체계를 알아봅시다. 조선의 계급은 양반&중인&양민&노비로 나뉩니다. 양반은 지배계급으로서 유학을 공부해 벼슬을 차지했습니다. 군역&세금 면제라는 특권을 누렸죠. 중인은 양반 밑에서 행정 실무를 맡아보던 사람들로, 기술관&향리&서리&토관&군교&서얼 등이 대표적입니다. 기술직으로서 부를 쌓으면 양반 못지않은 특권을 누릴 수 있었지만 상당수는 양반에게 가려져 빛을 발하지 못했죠. 양민은 일반 백성으로서 농사&장사&공업 등 생산활동에 종사하고 전세&역&공납 등의 의무를 도맡았습니다. 천민에는 노비&백정&광대&무당&창기가 있으며, 노비의 경우 양반에게 예속되어 일종의 재산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양반이 마음대로 매매&상속&증여할 수 있었던 존재였던 거죠. 그러나 이렇게 뿌리 깊은 계급사회도 후기에 접어들면서 점차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양반의 경우 숫자가 증가하면서 조선에 천주교가 전파될 즈음에는 세력에서 밀려나 가난하게 사는 양반들이 많았습니다. 부농이 증가하면서 양반 행세하는 사람이 늘었지만 상당수의 양민과 천민들은 여전히 양반들에게 핍박받으며 살았죠. 프랑스혁명처럼 왕을 처형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고요. 조선의 왕은 무소불위의 절대군주로, 정사의 최종 결정권자이자 경배의 대상이었거든요. 조선시대 왕의 권력이 어느 정도였냐면, 상평통보 같은 주화에 용안이 새겨진 모습을 본 적 있습니까? 없을 겁니다. 용안이 천한 백성들의 손에 쥐어지거나 땅바닥에 굴러다니게 하는 것은 크나큰 결례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세도정치로 인해 왕의 권한이 약해졌다고 해도, 조선 백성들 입장에서는 왕은 여전히 신과 같은 존재였죠.
유교 빼면 전부 사교(邪敎), 요사스러운 종교다
잘 아시다시피, 조선의 지도이념은 성리학과 유교였습니다(이 사실을 알면 충녕대군이 선교사를 부른다는 설정이 정말 황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삼강오륜, 즉 임금&웃어른&부자간의 예, 부부간 유별을 중시했죠. 조상을 숭배했기 때문에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요. 불교&도교&민간신앙 등은 이단으로 규정되어 사교 취급받았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암암리에 이러한 사교들을 믿고 있었고 국가 입장에서는 골칫거리였는데요. 천주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천주교가 왜 박해당했는지 알아보기 전에,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천주교는 조선에 어떻게 전파되었는가?
조선에 선교사가 파견된 것은 사실입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에 있던 예수회 소속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 신부가 조선에 파견되어 성무 활동을 벌였죠. 하지만 조선인들은 선교사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죠. 침략자들을 뒤따라와서 새로운 신앙을 전파하려는 선교사를 경계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일본군이 철수되면서 신부는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무런 성과를 낳지 못한 채로요. 중국과 교류하기 위해 베이징에 파견된 조선 사절들이 예수회 선교사들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조선 천주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은 천주교에 관한 책을 그들에게 전해주었는데, 이때 마테오 리치 신부가 집필한 『천주실의』가 이미 조선에 알려져 있었죠. 천주교 공부에 열의를 펼치는 조선인 학자들(권철신, 이덕조, 정약전&약용 형제)은 베이징으로 가는 이승훈 친구 이벽에게 예수회 선교사들의 책에 나와 있는 교리를 알려주었습니다. 이승훈은 선교사들을 찾아가 물어보기로 했죠. 이승훈은 베이징 주교인 프란치스코회의 알렉샨드르 데 구베아와 빈번한 만남을 갖고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받았습니다. 미사성제에 참석하고 성사들이 어떻게 집행되는지 보았으니, 이승훈은 완벽한 천주교 신자가 되었던 거죠.
조선인들이 직접 사제와 신부를 선출하다
이승훈 십자고상 및 그리스도교 서적들을 갖고 조선에 돌아왔습니다. 이벽도 천주교 신자가 되고 사람들을 입교시켰으나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유생들은 그를 박해했죠. 결국 이벽은 배교했고 이승훈은 이를 보고 충격에 빠졌다가, 도리어 용기를 내어 조선에서 사제를 선출하기로 결심했습니다(역경이 찾아올수록 더 열심히 해야 해). 이승훈과 뜻이 맞는 조선인 교우들이 모여 권일신을 주교로 선출하고 이승훈과 다른 몇 명을 신부로 선출했죠. 하지만 조선인 신자들은 스스로 사제를 선출한 게 유효한지 의문을 품었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만이 신품성사를 거쳐 성무 수행의 권한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죠. 베이징 주교와 서신을 주고받은 뒤, 주교는 주문모를 조선 국경에 보냈습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박해가 시작되고 주문모는 왕명에 의해 체포령이 떨어졌습니다. 주문모는 용케 몸을 피했지만 주문모의 가주와 그를 조선으로 안내한 교우 두 명이 체포당하고 순교당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점점 늘어나, 1801년에는 만 명 이상이 되었습니다. 명도회를 세우고 그리스도교 교리에 심취했죠. 순조가 왕위에 오르고 안동 김 씨가 정권을 잡으면서 박해는 더 거세어집니다. 1801년에 300명 이상이 순교한 후 수십 년에 걸쳐 대대적인 박해가 진행되었습니다.
최초의 정식 사제로서 성인으로 선포된 김대건 신부
이렇게 천주교 박해가 거세었던 19세기 초반, 김대건이 태어납니다. 김대건의 집안은 대대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증조부가 10년 동안의 옥고 끝에 순교했고, 김대건의 아버지도 기해박해 때 순교했죠. 아버지가 순교당하는 것을 보고 자란 김대건은 신학생으로 발탁되어 마카오로 가게 되면서 본격적인 천주교 공부를 시작합니다. 마카오에서 페레올 주교를 만날 무렵, 조선 교회가 곤경에 처하자 김대건은 베이징에서 페레올 주교와 함께 조선에 잠입합니다. 페레올은 김대건을 사제로 서품(가톨릭에서 특별한 의식에 의하여 교회 공직자들을 임명하는 절차)했고, 신임 사제가 된 김대건은 서울에서 천주교를 전파합니다. 그러나 서양 성직자가 잠입할 수 있도록 해로를 개척하다가 체포되고 말았죠. 김대건은 당당하게 자신의 생애를 모두 진술했습니다. 그의 투철함과 고결함에 감명받은 왕은 사면하려 했는데, 마침 조선인들이 세 명의 선교사를 살해한 일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는 프랑스 세실 제독의 서한을 받게 되었습니다. 양인과 내통했다고 생각한 왕은 김대건을 처형했고, 천주교는 사교로 몰리면서 신앙을 버리지 않는 자는 모두 처형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그가 성직자로 활동했던 기간은 1여 년에 불과하지만, 짧은 기간 동안 조선교구의 부교구장으로서 투철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따라서, 1925년 로마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로 선포되었고, 1984년 성인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유네스코는 김대건을 2021년 세계기념인물로 확정했죠. 우리나라의 조폐공사도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제조한 주화를 천주교 대전교구청에 기증했습니다.
백성이 전파한 종교, 천주교
이렇게 조선 천주교는 끊임없이 박해당하면서 성장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천주교가 지배층의 종교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러면, 천주교가 박해당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윗 단락에서 조선은 신분제 사회였다고 언급했습니다. 천주교는 평등을 강조한 종교이자, 예수를 숭배하는 종교였기 때문에 조상과 조선의 왕을 숭배한 조선 성리학의 교리와 맞지 않았죠. 그러므로 당시 지배층들은 천주교가 조선의 신분제도를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효를 중시하는 조선인들의 분개를 사기도 했고요. 실제로, 조선 정조 때 유학자 윤지충이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제사를 지내지 않아서 처형당했습니다.
그런데도 천주교가 널리 퍼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천주교의 내세 사상과 평등사상 때문입니다. 착하게 살면 다음 세상에서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누구나 다 평등하다고 알려주니, 양반들에게 핍박당하던 백성들, 남편의 말에 복종해야 했던 여성들이 믿을 수밖에요. 덕분에 천주교를 도입한 사람은 양반이었으나 신자들 대다수는 양민, 천민, 여성이었습니다.
<조선구마사>와 <설강화>는 시대도, 소재도 다릅니다. 하지만 두 드라마가 공통적으로 왜곡하고 있는 사상이 있습니다. 바로 '평등사상'이죠. <조선구마사>에 따르면 충녕대군이 선교사를 불러들입니다. 하지만 실제 조선 천주교는 민간에서 시작된 종교로서, 피지배층들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설강화>는 6월 민주항쟁을 다룬 드라마로, 간첩첩과 안기부를 미화해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시놉에 따르면, '극 중 배경과 주요 사건의 모티브는 1987년 대선 정국이며 군부정권, 안기부 등 기득권 세력이 권력유지를 위해 북한 독재 정권과 야합해 음모를 벌인다는 가상의 이야기'인데, 1987년에 북한 독재 정권이 왜 나오는 것일까요? 운동권 시대에 민주항쟁에 참여한 학생과 시민들이 '북한 간첩'으로 몰려 죽거나 고문을 당했던 역사를 떠올리면 가상의 스토리라 해도 불편해집니다. 서브 남주가 안기부 수장으로 '대쪽 같은 인물'이라고 하는데, 무고한 학생과 시민을 상대로 고문을 자행했던 안기부를 '대쪽 같은 인물'로 미화하는 의도가 무엇일까요? 6월 민주항쟁도 독재 정권에 맞서 '평등한 세상'을 기원했던 사람들의 항쟁인데 말이죠. 2021년 현재,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역사를 보다 쉽게 공부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사람들도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어느 것이 사실이고 거짓인지 분별하는 눈을 갖추게 되었죠. 하지만 해외로 나가는 순간 상황은 달라집니다. 한류 열풍이 불면서 한국의 대중매체가 해외로 스트리밍 되고 있지만, 이에 비해 역사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은 상황입니다. 재미가 역사를 위한 msg가 될 수는 있지만, 역사가 재미를 위한 도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상상력으로 내용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은 좋지만, 역사를 폄훼할 정도로 지나친 상상력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요?
<참고 문헌 및 자료>
파리 외방정교회, 『조선천주교-그 기원과 발전』, 살림, 2015
조선시대 신분제는 어땠을까요?
https://blog.naver.com/studym_/222280523607
조선의 종교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88817&cid=40942&categoryId=31534
유교사상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798271&cid=49285&categoryId=49285
삼강오륜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09075&cid=40942&categoryId=31532
천주실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63228&cid=46646&categoryId=46646
김대건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51915&cid=46646&categoryId=46646
천주교 박해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60168&cid=47306&categoryId=47306
천주교의 전래와 박해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50772&cid=58584&categoryId=58623#TABLE_OF_CONTENT3
[조선구마사 사태] ② '설강화'로 번진 논란…"창작 자유 침해" 우려도
http://www.joynews24.com/view/1355502
'조선구마사' 역사왜곡 논란에 전주이씨종친회 "방영중지 요청"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57&aid=0001561638
프란치스코 교황께 증정되는 '김대건 신부 기념메달'
https://news.v.daum.net/v/20210401110202523
<사진 출처>
역삼동성당 홈페이지
http://www.yscatholic.com/page/?pid=ko_history
'조선구마사' 역사 왜곡, 시청률도 주저 앉아 [종합]
https://www.hankyung.com/entertainment/article/202103244935H
역사왜곡 '조선구마사' 반중정서 못넘고 폐지
https://www.sedaily.com/NewsVIew/22JYJ9UEQN
*네이버 블로그에도 게시된 글입니다.
(저는 무교입니다. 천주교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이 있을수도 있어요. 읽어보시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