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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수 May 16. 2021

요즘 학교에는 ‘이게’ 있다

하루 지나서 스승의 날을 돌아보다

다산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문사(文史)를 닦도록 권하였는데, 나는 머뭇머뭇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저는 세 가지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둔하고, 둘째로 막혀 있고, 셋째로 미욱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선생님께서 이르시기를 “공부하는 자에게 큰 병통이 세 가지 있는데 너는 하나도 해당되는 것이 없구나. 첫째 외우기를 빨리하면 그 폐단은 소홀한 데 있으며, 둘째 글짓기에 빠르면 그 폐단은 부실한 데 있고, 이해를 빨리하면 그 폐단은 거친 데 있게 된다. 무릇 둔하면서 파고드는 자는 그 구멍이 넓어지며, 막혔다가 소통이 되면 그 흐름이 툭 트이고, 미욱한 것을 닦아 내면 그 빛이 윤택하게 되는 법이다. 파는 것을 어떻게 하느냐? 부지런하면 되고, 소통은 어떻게 하느냐? 부지런하면 되고, 닦기는 어떻게 하느냐? 역시 부지런하면 된다. 이 부지런함을 어떻게 다할 수 있느냐? ‘마음가짐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스승과 제자, 그 만남의 소중함 (살아있는 고전문학 교과서, 2011. 4. 19., 권순긍, 신동흔, 이형대, 정출헌, 조현설, 진재교)


다산 정약용은 조선 후기 유명한 실학자였다. 정조 때 벼슬길에 올랐으나 서학(西學)을 접했다는 이유로 강진으로 유배를 갔다. 유배 생활 때 15살 된 황상을 만났다. 황상은 정약용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제자였다. 황상은 정약용 밑에서 공부를 하려고 하지만, 세 가지 단점(둔하다, 막혀 있다, 미욱하다) 때문에 주저하였다. 하지만 정약용은 황상에게 단점을 장점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격려하였다. 부지런하면 된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후 황상은 정약용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살아갔다. 정약용의 장남과도 연을 맺어 우정을 유지하기도 했다. 정약용은 황상이 51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지만, 황상은 늙어서도 정약용을 그리워하였다.




스승과 제자의 인연은 조선 시대 학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60년대에도 스승과 제자가 연을 이었던 사례가 있다. 스승의 날의 유래를 보면 알 수 있다. 스승의 날은 1963년 충남 강경여고에 다니던 청소년적십자 단원들에 의해 유래되었다. 병환으로 누워있는 스승을 병간호하고 퇴직한 스승들을 위한 행사를 진행하면서 5월 26일을 ‘은사의 날’로 지정했다. 1965년 협의회에서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하였고 2021년 현재까지 5월 15일에 ‘스승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해 만백성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스승이라고 생각했고, 세종처럼 제자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스승을 기억하기 위해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한 게 아닐까.



나에게도 기억에 남은 선생님이 계신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다. 2000년대 초반이었으니 20년이 다 되어간다. 선생님은 똑똑하고 말도 잘 듣는다면서(어디까지나 선생님의 생각일 뿐이다) 나를 아껴주셨다. ‘얌전한 모범생’이었으니 선생님 눈엔 예뻐 보였을 터(얼굴이 예뻤다는 게 아니라….)였다. 그러나 학급에는 모범생만 있는 게 아니었다. 평범한 아이들도 있고 말 안 듣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중 유독 사고를 많이 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그 아이들을 교탁에서 혼냈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지켜만 봤다. 겨울쯤, 교사 평가를 하는 날이었다. 선생님의 좋은 점, 나쁜 점 등등 적다가 평소 선생님이 어떤 모습인지 그리는 칸을 보았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선생님의 얼굴을 그렸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런데 며칠 뒤 알게 되었다. 선생님의 머리에 도깨비 뿔이 달려 있었다. 방망이를 들고 씩씩대고 있었다. 왜 혼나는지는 모르고 선생님이 소리 지르고 화내는 모습만 기억한 것 같았다. 다행히 선생님은 어린아이의 실수라고 생각하고 나를 계속 예뻐해 주셨다. 사과했는지 안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간 후에도 선생님이 전근 가실 때까지 자주 선생님을 찾아뵙고 인사한 거로 보아 사과를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유독 기억에 남았던 교사 평가 시간이었다.



한때 스승의 날은 과도한 선물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선물의 가격대에 따라 학생을 차별 대우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2016년 김영란법 도입으로 교사에게 선물하는 사례가 줄어들었다. 심지어 합법적인 카네이션까지도. 대신, 학생들끼리 편지나 롤링페이퍼 같은 걸 써서 교사에게 주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수업이 자리 잡으면서 스승의 날이 무의미해졌다. 편지를 공유할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5월 14일 실천교육교사모임에 따르면 지난 9~14일 전국 교사 984명을 상대로 스승의 날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코로나 여파로 가장 걱정되는 부분 중 ‘대면 상황에서의 의사소통 능력 및 대인관계 능력 부족’이 54.2%를 차지했다. 모 중학교 교사의 증언에 따르면 학생들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 벽만 보고 수업하는 상황이 되었다. 컴퓨터가 아이들과 선생님을 연결하는 창이 아니라 벽이 되어버린 것이다. 온라인이다 보니 말을 듣지 않는 학생을 제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교사와 학생뿐 아니라 학생 간에도 서로 어울릴 기회가 줄어들었다. 아마 9살 때 선생님이 아이들을 공개적으로 혼낸 이유도 다른 아이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이젠 선생님을 도깨비로 그리는 사태는 없을 테니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상에서 다 같이 스승의 노래를 부르는 등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스승의 날을 기념할 방법은 존재한다. 문제는 학생과 선생님 사이에 놓인 ‘벽’이다. ‘스승과 제자는 없고 교사와 학생만 있다’라는 말이 왜 생겼을까. 교권 추락, 입시 중시 풍토, 사교육 발달, 원격 수업 활성화 등으로 선생님은 수업만 하는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그마저도 사교육 발달로 인해 제대로 듣지 않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정약용과 황상의 관계처럼 선생님과 학생들도 의무감이 아니라 진정으로 서로서로 격려해주는 관계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참고 자료>

정약용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7423&cid=46622&categoryId=46622

[문화곳간] “유배지서 만난 인연”… 역사 속 스승과 제자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858447

스승과 제자, 그 만남의 소중함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528062&cid=47319&categoryId=47319

대한적십자사 홈페이지

https://www.redcross.or.kr/rcy_activity/rcy_activity_teacherday_introduce.do

스승의 날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23219&cid=50221&categoryId=50230

[그땐 그랬지]“선물 No, 편지는 Yes” 달라진 스승의 날 풍경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8&aid=0004930403

교사 82% "스승의날, 교육의날로 바꾸자"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21&aid=0005352272

"얼굴 대신 형광등 보고 수업해요"…코로나 2년차, 쓸쓸한 '스승의 날'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8&aid=0004587247

원격 수업에 갇힌 2년...스승의 날에 전한 학생들의 '진심'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2&aid=0001588423




어느덧 출맛 스터디를 5주 차 진행했으니, 두 번째 한글 에세이네요. 제 경험을 공개적으로 보여드리니 부끄러우면서도 떨리네요. 설레기도 하고요. 이게 에세이의 매력이려나요? 일단 스스로 글을 만들 수 있어야 남의 글을 옮길 수 있는 것 같아요. 창작의 고뇌를 거쳐야 작가들이 '이러이러한 의도로 글을 썼구나'하고 이해가 되거든요. 이번 에세이도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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