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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수 Jun 09. 2021

한나라의 국모가 된 조조의 딸

후한 마지막 황제 헌제의 황후: 헌목황후 조씨(중국)


헨리에타 마리아 편에서 설명했듯이, 예로부터 왕과 왕비의 혼인은 정략으로 맺어집니다. 혼인한 두 사람은 집안과 집안 사이를 돈독히 해야 할 의무가 있었죠. 하지만 혼인이라는 게 반드시 좋은 의도로 맺어지는 게 아닙니다. 집안과 집안이 대등한 힘을 지녔을 때는 화합을 목적으로 혼인하기도 하지만, 한쪽 집안이 더 강한 힘을 지녔을 때는 그 집안의 힘에 잠식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 사이가 좋지 않은 집안의 경우 파국으로 치달을 위험이 큽니다. 이런 경우, 파국의 중심에 놓인 왕과 왕비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조조의 딸, 조절

헌목황후는 한나라 헌제의 계후로, 본명은 조절(曹節)입니다. <삼국지>의 권신이자 (사실상) 위나라 태조로 유명한 조조의 딸이죠. 출생연도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에 대해서도 알려진 게 없습니다. 213년, 조조가 헌제에게 세 딸을 바쳤을 때 조절이 처음 <후한서>에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조절은 어떻게 황후가 되었을까요?



황후가 되기까지 흘려야 한 피눈물

당시 조조는 한나라의 승상으로서 모든 실권을 장악한 상태였습니다. 헌제는 조조를 경계했죠. 200년, 헌제는 측근 동승에게 밀서를 주고 조조를 주살할 계획을 꾸밉니다. 그러나 도중에 발각되어 동승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모두 죽었고(이때 유비도 연루되었다죠. 다행히 목숨을 부지해 원소에게 의탁했지만요) 동승의 딸 동귀인도 헌제가 보는 앞에서 살해당합니다. 헌제는 눈물을 흘리며 이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죠. 그러거나 말거나 조조는 관도대전으로 원소 일가를 몰락시키면서 위세가 더 강해집니다. 조조를 넘볼 제후가 없게 되었죠. 그러자 조조는 헌제를 꼭두각시로 만들고 국정을 마음대로 주무릅니다. 조조의 행각을 보다 못한 황후 복씨가 나섭니다. 복 황후는 아버지와 함께 조조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으나 사전에 발각됩니다. 조조는 황후를 폐위시키고 집안을 몰살시키죠. 복 황후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맨발로 끌려가면서 살려달라고 빌었습니다. 하지만 헌제는 내 목숨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한탄할 뿐이었죠. 결국 복 황후는 유폐된 뒤 죽었습니다. 조조는 외척이 성장할 기미를 없애기 위해 아예 자신이 외척이 되기로 결심하죠. 그 결심을 토대로 215년, 조조는 딸 조절을 황후 자리에 앉힙니다.



코에이 삼국지 13의 조조(출처: 나무위키)


하늘이 너희를 돕지 않을 것이다

216년, 조조는 헌제를 협박해 위왕 자리를 얻어냅니다. 220년 조조가 죽고 조조의 아들 조비가 위왕 자리를 물려받죠. 같은 해 10월, 조비는 한 술 더 떠 헌제에게 선양, 즉 왕위를 나에게 물려주라고 협박합니다. 이때 조절은 헌제의 편에 서서 조비의 왕위 찬탈을 막으려 하죠. 『후한서-헌목황후전』에 따르면, 조비가 황제의 지위에 오른 뒤 사자를 보내 옥새를 가져오려 합니다. 하지만 조 황후는 옥새를 주려고 하지 않았죠. 사자가 끈질기게 찾아오자 조 황후는 옥새를 건네주는데, 사자가 옥새를 받으려 할 때 조 황후는 옥새를 집어던집니다. 흐느끼면서 "하늘이 절대로 너희를 돕지 않을 것이다!"라고 외쳤죠. 그러자 주위가 숙연해지고 아무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고 합니다.



코에이 삼국지 12,13,14의 한나라 황제, 헌제 유협(출처: 나무위키)


한나라의 마지막 황후, 헌목황후 조씨

이후 위나라가 세워지고 헌제는 산양공 직위를 받습니다. 황제에서 제후로 격하된 거죠. 조 황후는 산양공부인이 되어 헌제의 곁을 지킵니다. 떠도는 전설에 따르면 헌제는 자신의 봉토에서 선정을 베풀어 민심을 얻었다고 합니다. 평생 권신에게 휘둘리며 산 헌제는 양위한 후 그나마 평화롭게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헌제는 조용히 살다가 234년 세상을 떠납니다. 조 황후는 남편보다 26년을 더 산 뒤 260년 6월 7일 세상을 떠나죠. 당시 위나라 황제였던 조환은 한나라 예법에 따라 장례를 진행했고 헌제의 무덤인 선릉에 합장합니다. 그리고 헌목황후라는 시호를 내립니다.



황후의 예언, 위나라의 운명

한편, 위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조 황후는 하늘이 절대로 너희를 돕지 않을 거라고 외쳤는데, 위나라의 운명을 생각하면 그 예언은 적중합니다. 위나라는 조비가 죽고 조예-조방 순으로 황위를 물려받는데, 사마씨 집안이 권력을 잡으면서 조방은 폐위당하고 황후도 죽임을 당했죠. 그 뒤를 이은 조모는 신하에게 시해당했고요. 그때가 260년으로 조 황후는 이 상황을 전부 전해 들었겠죠. 조조의 후손들이 남편과 똑같은 운명을 맞이하는 상황을 들으면서 조 황후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나저나 나관중은 헌목황후가 조비와 같이 헌제를 괴롭히는 인물로 묘사했다죠. 실제 헌목황후의 행적을 생각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도 모종강이 나중에 정사에 가깝게 수정해서 다행이에요).



코에이 삼국지 12, 13의 헌목황후 조씨(출처: 나무위키)




헌목황후의 집안은 권력이 강했습니다. 황실보다 더 큰 권력을 지녔죠. 그 권력을 토대로 황제와 혼인할 수 있었고요. 하지만 헌목황후는 자신의 집안을 저버리고 평생 한나라 황후로 살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나라 황후로서 책무를 다하겠다는 의무감이 있었던 걸까요? 어릴 때부터 권신들의 꼭두각시로 살아온 남편에 대한 연민 때문일까요? 권세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을 잔혹하게 죽이는 집안사람들에게 회의감을 느꼈던 걸까요? 정확한 답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조씨 집안의 여인으로서 조씨 집안을 위해 황후가 되었지만 마지막까지 한나라 황제를 섬기며 살았던 여인, 헌목황후의 지조와 강단이 오래오래 기억 남기를 바랄 뿐입니다.



<참고 자료>

나무위키, 헌목황후 조씨, https://namu.wiki/w/%ED%97%8C%EB%AA%A9%ED%99%A9%ED%9B%84%20%EC%A1%B0%EC%94%A8?from=%ED%97%8C%EB%AA%A9%ED%99%A9%ED%9B%84#s-3

위키백과, 헌목황후, https://ko.wikipedia.org/wiki/%ED%97%8C%EB%AA%A9%ED%99%A9%ED%9B%84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지 상식 백가지, 조 황후는 헌제를 폐하려는 조비를 꾸중했는가?,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687080&cid=60582&categoryId=62895

삼국지인물, 헌목조황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146023&cid=60582&categoryId=62896

나무위키, 헌제, https://namu.wiki/w/%ED%97%8C%EC%A0%9C#s-2.3

나무위키, 효헌황후 복씨, https://namu.wiki/w/%ED%9A%A8%ED%97%8C%ED%99%A9%ED%9B%84%20%EB%B3%B5%EC%94%A8#rfn-1

중국역대인물사전, 복황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702601&cid=62063&categoryId=62063


*네이버 블로그에도 게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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