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연수 Jun 16. 2021

우리 사랑하는 사이에요. 왜 이러세요!!!

로마 2대 황제 티베리우스의 여인: 빕사니아 아그리피나(로마)

빕사니아 이야기라 쓰고 티베리우스 이야기라고 부릅니다


[For example] the arranged marriage, which you see constantly in the historical fiction and television show, almost always when there’s an arranged marriage, the girl doesn’t want it and rejects it and she runs off with the stable boy instead. This never fucking happened. It just didn’t. There were thousands, tens of thousand, perhaps hundreds of thousands of arranged marriages in the nobility through the thousand years of Middle Ages and people went through with them. That’s how you did it. It wasn’t questioned. Yeah, occasionally you would want someone else, but you wouldn’t run off with the stable boy.
[예를 들어] 역사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정략결혼이 항상 나온다. 항상 정략결혼을 해야 하고 소녀는 그것이 원치 않아 마구간 소년과 도망친다. 현실에선 그딴 일 일어나지도 않는다. 중세 천 년 간, 귀족들 사이에 수천수만 수십만 건의 정략결혼이 있었고 다들 그렇게 살아갔다.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뭐, 딴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마구간 소년과 도망 치진 않았다.
-조지 R.R. 마틴('왕좌의 게임' 작가) <타임지>에서


마틴 작가의 말에 따르면, 고대든 중세든, 옛날에는 정략결혼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당연한 일이었기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죠. 그래서 왕족이나 귀족들 간에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그들이 화제가 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이들이 순탄한 생활을 했는지 장담할 수는 없는데요. 설령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권세나 인맥을 위해 다른 여자를 첩으로 들이는 경우도 흔했으니까요. 지금부터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커리어도 차곡차곡 쌓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까지 했으나 한 사람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기 때부터 시작된 망명 생활

티베리우스는 기원전 42년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이 똑같아요. 편의상 네로라고 부르겠습니다)와 리비아 드루실라의 맏아들로 태어납니다. 티베리우스는 순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당시, 옥타비아누스-안토니우스-레피두스가 동맹을 맺고 공동 통치를 하던 시기였지만, 기원전 41-40년, 안토니우스가 이집트에 있을 때 안토니우스의 아내와 동생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네로는 이 반란에 참여했죠. 그래서 티베리우스는 갓난아기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로마를 떠나 여러 도시를 떠돌았습니다. 수에토니우스의 <황제열전>에 따르면, 갓난아기였던 티베리우스가 울음을 터뜨려 버려질 뻔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숲에서 산불이 났으나 어머니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하죠.



로마로 돌아왔으나

티베리우스가 3살 때 사면령이 내려집니다. 가족들은 로마로 돌아오고 옥타비아누스와 화해를 해요. 어머니 리비아 드루실라는 미모와 지성을 갖춘 여인이었는데, 옥타비아누스는 리비아에게 반합니다. 옥타비아누스는 네로를 찾아가 이혼하라고 요구하죠. 당시 옥타비아누스의 권세가 강해지던 무렵이라, 티베리우스의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이혼합니다. 말이 좋아 요구이지 사실 명령이었던 셈이죠. 이때 리비아는 네로의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어요. 네로는 옥타비아누스에게 이혼하는 대신, 티베리우스와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양육권을 주장합니다. 옥타비아누스는 흔쾌히 허락하는 대신, 네로에게 결혼식 날 신부의 아버지 역할을 하라고 합니다. 즉 아내의 아버지 역할을 하라고 한 거죠. 결국 결혼식 날, 네로는 신부의 아버지가 되어서 두 사람의 결혼식을 지켜봅니다. 


티베리우스 황제의 석고상(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계부 옥타비아누스를 만나다

결혼한 지 3개월 뒤 동생 드루수스가 태어납니다. 티베리우스와 드루수스는 아버지 네로 밑에서 자랐죠. 아버지는 재혼하지 않고 두 아들을 잘 키웠는데, 티베리우스가 9살이 되던 해 네로가 세상을 떠납니다. 이후 어머니와 계부 옥타비아누스의 밑에서 살게 되었어요. 옥타비아누스는 과묵한 티베리우스보다 쾌활한 드루수스를 더 예뻐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친부를 잃고 계부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으니, 소외감을 느꼈을 법합니다. 그러다가 티베리우스가 12살이 되던 해, 옥타비아누스는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를 패배시키고 1인자로 군림하게 됩니다. 옥타비아누스는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개선식을 치렀는데 개선식 마차에 양자 티베리우스와 조카 마르켈루스를 태웁니다. 이들이 내 뒤를 이을 후계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죠. 그렇게 옥타비아누스는 조카 마르켈루스를 후계자로 밀기 시작합니다. 티베리우스는 아직까지 황제의 측근이자 친부 네로 가문의 후계자일 뿐이었어요.



로마 제국의 화제가 된 연애결혼

옥타비아누스는 기원전 27년, 황제가 되어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티베리우스는 군인으로서 본격적으로 전공을 쌓았죠. 마르켈루스와 함께 로마 국경 일대를 시찰하거나, 황제의 장군들 밑에서 군사 교육을 받으면서요. 또한 원로원에 아우구스투스와 함께 출석하거나, 동생 드루수스와 함께 이민족을 격파하고 갈리아 일대를 휩쓸면서 승승장구했죠(계속 같이 하는군요). 이렇게 승승장구하다가 기원전 19년, 23세가 된 티베리우스는 빕사니아 아그리피나와 결혼합니다. 빕사니아의 아버지 빕사니우스는 아우구스투스의 최측근으로 악티움 해전에서 아우구스투스의 승리를 이끈 인물이었습니다. 어머니 폼포니아는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의 친구 아티쿠스의 딸이었고요. 이렇게 창창한 집안이었으니 황실에서 밀어준 결혼 같지만, 사실 두 사람은 연애결혼을 했습니다.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결혼으로 이어진 케이스였죠. 매우 희귀한 연애결혼이었기 때문에 로마 귀족들 사이에서 매번 화제에 올랐습니다.



죽기 싫으면 내 명을 따르라

두 사람은 5년 후 아들 드루수스를 낳고 행복하게 삽니다. 아들과 동생의 이름이 똑같은데, 로마에서는 이름 돌려 막기가 흔하니까요. 그러나 일부러 아들에게 동생의 이름을 붙여준 것 같기도 해요. 티베리우스는 아내와 아들, 동생을 가장 사랑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장인 빕사니우스가 급사하고 동생 드루수스가 사고를 당하면서 티베리우스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합니다. 티베리우스는 동생이 게르마니아에서 낙마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갑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죠. 티베리우스는 동생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슬퍼했습니다. 그리고 동생의 유해를 직접 운반해 로마로 돌아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아우구스투스의 후계자이자 조카였던 마르켈루스가 죽으면서 후계자 구도가 엉망이 됩니다. 원래 아우구스투스는 전 아내(아우구스투스는 리비아와 결혼하기 전에 스크리보니아라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스크리보니아와 이혼한 뒤 리비아와 재혼한 거죠) 사이에서 낳은 딸 율리아와 마르켈루스를 결혼시켜 마르켈루스를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었죠. 마르켈루스가 죽자 아우구스투스는 율리아를 티베리우스의 장인 빕사니우스와 재혼시켰습니다. 근데 빕사니우스도 죽고 율리아는 다시 과부가 됩니다. 그때 아우구스투스의 눈에 티베리우스가 들어옵니다. 아내의 아들이면서, 군인으로서 리더십도 충만한 인물이었거든요. 아우구스투스는 티베리우스를 후계자로 삼기 위해 율리아와 재혼하라고 요구합니다.


티베리우스의 첫 번째 아내 빕사니아 아그리피나(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나보고 장모와 결혼하라고?

그런데 티베리우스의 아내 빕사니아가 멀쩡히 살아있었습니다. 더구나 두 사람은 연애결혼했고 티베리우스는 동료들에게 베스타 여사제 같다고 조롱당할 만큼 아내에 대한 순정을 지키던 인물이었죠. 하지만 아우구스투스는 계부이면서 동시에 황제였습니다. 어머니 리비아도 아우구스투스의 견해를 지지하는 상황이었고요. 티베리우스는 명령을 철회해 달라고 울고 불며 빌었으나 소용없었습니다. 결국 기원전 11년, 티베리우스는 31세에 빕사니아와 이혼하고 의붓누나이자 장모였던 율리아와 재혼하게 됩니다. 이때 빕사니아는 티베리우스의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빕사니아는 갈루스라는 새로운 남자와 재혼합니다. 이혼 후 티베리우스는 빕사니아와 거리에서 만났는데 티베리우스가 눈물을 흘리며 따라가자 빕사니아는 아무 말 없이 떠났고 티베리우스는 빕사니아의 떠나는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은둔의 길을 걸어 간 후계자

이후 티베리우스는 사실상 공동 황제가 되어(아직 즉위한 건 아닙니다. 즉위는 나중에 해요) 호민관 직위까지 받게 됩니다. 티베리우스와 율리아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티베리우스는 잘해보려 했으나 율리아는 다른 남자들과 관계를 맺으며 방탕한 생활을 했죠. 더구나 율리아에게서 얻은 아들마저 요절하자 부부관계는 파탄에 이르게 됩니다. 실의에 빠진 티베리우스는 기원전 6년, 36세에 모든 공직을 내려놓고 로도스 섬에서 은둔합니다. 그와 중 율리아는 계속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기원전 2년, 아버지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간통죄로 고발당하고 처형당합니다. 하지만 티베리우스는 섬에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7년이 흘렀습니다.


티베리우스의 두 번째 아내 대 율리아(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로버트 그레이브스가 쓴 소설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에서는 티베리우스가 이혼 후에도 빕사니아에게 집착합니다. 빕사니아의 재혼 소식을 듣고 따지러 왔다가 당신이 없으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고 두렵다고 하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 티베리우스는 황제가 된 뒤 무섭게 변해버립니다. 어떻게 변했을까요? 이후 티베리우스의 모습은 다음 <리비아 드루실라> 편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참고 자료>

나무위키, 티베리우스, https://namu.wiki/w/%ED%8B%B0%EB%B2%A0%EB%A6%AC%EC%9A%B0%EC%8A%A4#s-2.1.4

Wikipedia, Vipsania Agrippina, https://en.wikipedia.org/wiki/Vipsania_Agrippina

위키백과, 티베리우스, https://ko.wikipedia.org/wiki/%ED%8B%B0%EB%B2%A0%EB%A6%AC%EC%9A%B0%EC%8A%A4

위키백과,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https://ko.wikipedia.org/wiki/%EB%A7%88%EB%A5%B4%EC%BF%A0%EC%8A%A4_%EC%95%88%ED%86%A0%EB%8B%88%EC%9A%B0%EC%8A%A4

나무위키,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https://namu.wiki/w/%EB%A7%88%EB%A5%B4%EC%BF%A0%EC%8A%A4%20%EB%B9%95%EC%82%AC%EB%8B%88%EC%9A%B0%EC%8A%A4%20%EC%95%84%EA%B7%B8%EB%A6%AC%ED%8C%8C

James Poniewozik, GRRM Interview Part 2: Fantasy and History, Time, https://entertainment.time.com/2011/04/18/grrm-interview-part-2-fantasy-and-history/#ixzz1VgVNlXZ1


*네이버 블로그에도 게시된 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