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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수 Jun 20. 2021

엄마! 이러지 말라고 했잖아!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황후: 리비아 드루실라(로마)


티베리우스 이야기 계속합니다. 이번에는 티베리우스의 어머니 리비아 시점으로 써 볼게요.

우리 사랑하는 사이에요. 왜 이러세요!!!


*동생 드루수스와 아들 드루수스가 동시에 나옵니다. 편의상 전자를 대大드루수스, 후자를 소小드루수스라 부를게요.

*아내 율리아와 손녀 율리아가 동시에 나옵니다. 편의상 전자를 대大율리아, 후자를 소小율리아라고 부를게요.


전편에서 죽은 사람들은 X 표 처리했습니다(출처: 내 손)


아들아, 황제가 되게 해 주겠다

티베리우스는 아우구스투스의 명령으로 빕사니아와 이혼하고 율리아와 재혼했습니다. 그런데 아우구스투스는 원래 티베리우스를 후계자로 생각하지 않았죠. 리비아의 아우구스투스를 끈질기게 설득합니다. 아들 티베리우스를 황제로 만들기 위해서요. 남편의 가문과 더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티베리우스와 율리아 사이에 자식이 생기면 자신의 손자가 황위를 이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리비아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으니 바로 율리아와 빕사니우스의 아들들이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외손자인 가이우스와 루키우스를 염두에 두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어렸고 후계자로서 자질도 충분하지 않았죠. 그래서 티베리우스에게 외손자들의 훈육을 맡긴 겁니다. 실제로 아우구스투스는 '일단 티베리우스에게 황위를 물려주지만 그다음 황위는 내 핏줄에게 물려줘야 한다'라고 유언을 남겼죠. 그래서 일단 티베리우스가 황제가 되더라도 나중에 티베리우스가 죽으면 황위는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피 섞이지 않은 계부의 손자들에게 황위를 넘겨줘야 했습니다.



로마로 돌아오려 했으나

그래도 아우구스투스는 리비아의 아들들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비록 대大드루수스보다는 덜 아꼈지만(대大드루수스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대大드루수스가 아우구스투스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떠돌 정도였다고 해요), 아우구스투스는 티베리우스를 항상 '내 아들'이라고 부르며 티베리우스를 믿고 의지했죠. 티베리우스에게 원하는 대로 다 들어줄 테니 로마로 돌아오라고 합니다. 티베리우스는 로마로 돌아올 테니 대신 모든 정치적 활동에서 손을 떼게 해 달라고 하죠. 그런데 가이우스와 루키우스가 어느덧 10대 소년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티베리우스가 로마로 돌아오기를 원하지 않았죠. 아우구스투스는 두 외손자를 원로원에 참석시키고 동방 원정을 맡기는 등 후계자로서 전공을 쌓을 수 있도록 밀어줍니다. 하지만 가이우스는 로마를 떠나면서 거만하게 행동하고 과한 대접을 요구해서 사람들의 원성을 삽니다. 가이우스는 아르메니아에 도착했지만 제 버릇 못 버리고 거만하게 굴다가 폭동이 일어납니다. 가이우스는 심각한 상처를 입고 후유증으로 인해 이탈리아로 오기 전에 사망하죠. 루키우스는 군 복무를 위해 로마를 떠났다가 질병으로 죽습니다.



명실상부한 후계자가 되다

그래서 아우구스투스는 게르마니쿠스를 새로운 후계자로 밀어붙입니다. 게르마니쿠스는 대大드루수스와 안토니아(아우구스투스의 조카딸)의 아들이죠. 게르마니쿠스는 10대 후반이었지만 외모도 출중하고 성격도 좋은 인물이었어요. 이제 티베리우스는 로마로 돌아와 게르마니쿠스의 후견인이 됩니다. 포스투무스라는 아우구스투스의 외손자가 하나 더 있었지만 행실 때문에 망나니로 지탄받던 인물이었죠. 가이우스, 루키우스처럼 아우구스투스의 양자로 입적되어 있었으나, 서기 4년, 아우구스투스는 티베리우스와 게르마니쿠스를 위해 포스투무스를 파양시키고 로마 밖으로 추방합니다. 티베리우스는 이름을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로 바꾸고 아우구스투스의 양자가 됩니다. 서기 13년, 티베리우스는 황위에 올라 아우구스투스와 공동 황제가 됩니다.


티베리우스의 조카 게르마니쿠스(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인기 없는 황제, 티베리우스

서기 14년 8월, 포스투무스는 처형당합니다. 사실 티베리우스는 차갑고 독선적인 성격이라 원로원에게 인기가 없었죠. 그런데 포스투무스까지 죽자 티베리우스에게 흉흉한 소문이 떠돕니다. 황위에 오르기 위해 아우구스투스의 손자들을 죽였다는 소문이었죠. 리비아가 개입되어 있다는 말이 떠돌았고요. 더구나 같은 해, 아우구스투스가 노환으로 서거합니다. 이때 리비아가 아들을 위해 아우구스투스를 독살했다는 소문까지 돕니다. 아우구스투스가 음식에 독이 들었을까 봐 나무에 걸린 무화과만 따먹자 리비아가 과일에 독을 칠했다는 소문이었죠. 아우구스투스의 유언장 때문에 티베리우스는 정통성이 약했고요. 그래서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근위병을 동원하니, 원로원도 그와 교류하는 것을 회피해버립니다. 결국 원로원은 그의 명을 받아 수행하는 역할만 할 뿐이었죠. 티베리우스에 대한 여론 때문에 반란이 일어났지만, 군인들이 파업해버립니다. 그런데 파업을 중단시키는 과정에서 게르마니쿠스가 황제의 명령을 위조합니다. 게르마니쿠스가 파견되자 군인들은 게르마니쿠스를 황제로 옹립하려 했고 게르마니쿠스는 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황제의 필체로 일단 너희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고 한 것이죠. 이로 인해 티베리우스와 게르마니쿠스의 사이가 나빠집니다.



조카의 죽음, 비극의 시작

이때 게르마니쿠스의 주도 하에 게르마니아 정복이 시작됩니다. 혁혁한 공을 세우던 게르마니쿠스는 민중들의 인기를 얻었죠. 그런데 티베리우스는 소아시아로 파견하기 위해 갑작스레 게르마니쿠스를 로마로 불러들입니다. 민중들은 티베리우스가 게르마니쿠스를 견제한다고 생각했죠. 아무튼 게르마니쿠스는 소아시아로 갔지만 티베리우스가 파견한 피소와 사사건건 불화를 일으켰습니다. 이때 게르마니쿠스가 이집트 장관의 허락 없이 알렉산드리아(당시 이집트 수도)를 방문해 논란이 벌어집니다. 티베리우스는 따끔하게 지적하고 함구하는 선에서 끝냈습니다. 그러나 피소는 이 문제로 사사건건 트집 잡고 게르마니쿠스와 싸웠습니다. 그러다가 피소가 게르마니쿠스의 명을 어기고 전선을 이탈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그때 게르마니쿠스가 갑자기 열병으로 죽고 맙니다. 서기 19년이었죠. 더구나 티베리우스가 게르마니쿠스의 장례에 참석하지 않고 피소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리자 민중들은 티베리우스가 게르마니쿠스를 독살했다고 확신합니다. 근데 티베리우스가 장례에 참석하지 않은 데는 리비아의 탓이 컸습니다. 리비아는 두 아들을 아낀 만큼 손자들인 게르마니쿠스와 소小드루수스도 많이 아꼈죠. 그래서 게르마니쿠스가 젊은 나이에 죽자 리비아는 충격받고 실신합니다. 티베리우스는 실신한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장례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항변했습니다. 그러나 민중들은 티베리우스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피소는 재판 직전 자살했는데, 정작 게르마니쿠스에게 항변했던 것만 유죄 처분을 받고 독살을 주도했다고(의심받은) 피소의 아내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석연치 않은 죽음

사실, 저는 티베리우스가 게르마니쿠스를 죽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게르마니쿠스가 죽으면 티베리우스가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죠. 왜냐하면 후계자 선정하느라 골치가 아파지거든요. 실제로도 티베리우스는 후계자 문제로 힘들어했죠. 후계자 후보로는 게르마니쿠스의 아들들(네로 카이사르, 드루수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게르마니쿠스의 동생(클라우디우스), 티베리우스의 아들(소小드루수스)가 있었습니다(볼드체 친 사람들 잘 기억해두세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누가 후계자인지 뻔했습니다. 하지만 티베리우스는 네로 카이사르와 소小율리아(소小드루수스의 딸이자 티베리우스의 손녀)를 혼인시켜서 네로 카이사르를 소小드루수스의 후견인으로 키웁니다. 문제는 네로 카이사르에게 멀쩡한 아내가 있었던 것입니다. 티베리우스는 네로 부부를 파혼시키고 네로 카이사르와 소小율리아를 결혼시켰습니다(계부를 그렇게 싫어했는데 계부와 똑같이 행동했어요). 그리고 소小드루수스는 집정관이 되어 아버지와 공동 통치를 하지만 서기 23년, 소小드루수스가 갑자기 죽습니다. 병사로 알려졌지만, 진실은 따로 있었죠(진실은 다음 편에서 알려드릴게요). 아무튼 티베리우스는 믿었던 아들과 조카가 연달아 죽자 상심에 빠집니다.



티베리우스의 아들 소(小)드루수스(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다시 시작된 은둔 생활

한편 리비아는 아우구스투스가 재위할 때 행정 업무의 전반을 담당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 사후 아우구스타(로마 제국의 여제, 황후라는 뜻) 칭호도 받았고요. 그래서일까요. 리비아는 티베리우스가 재위할 때도 정치에 관여하려 합니다. 티베리우스는 하지 말라고 했지만 리비아는 아들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권력을 두고 사사건건 대립하였죠. 원로원은 리비아에게 '마터 파트리애(나라의 어머니)'칭호를 수여하려 했으나 티베리우스는 거부하는 사태까지 벌어집니다. 결국 서기 20년, 티베리우스는 리비아를 반역죄로 처분하고 아우구스투스 생전 누렸던 특권들을 모두 박탈합니다. 티베리우스는 서기 26년부터 카프리 섬에서 다시 은거하기 시작하죠. 리비아는 증손자 가이우스를 돌보다가 서기 29년에 죽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미워했던 티베리우스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죠. 이때 티베리우스 치세 전체를 흔들어놓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티베리우스의 어머니 리비아 드루실라(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원래 2편으로 끝내려 했으나, 내용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한 편 더 쓰도록 하겠습니다. 오랜만에 <역사가 버린 2인자> 매거진에 글을 올리도록 할게요. <왕을 지킨 여자들>에는 할 만한 인물이 없기 때문에... 다음 주 중에 올릴 예정이니 잘 부탁드려요.



<참고 자료>

나무위키, 티베리우스, https://namu.wiki/w/%ED%8B%B0%EB%B2%A0%EB%A6%AC%EC%9A%B0%EC%8A%A4#s-2.2.1

나무위키, 리비아 드루실라, https://namu.wiki/w/%EB%A6%AC%EB%B9%84%EC%95%84%20%EB%93%9C%EB%A3%A8%EC%8B%A4%EB%9D%BC

Wikipedia, Livia, https://en.wikipedia.org/wiki/Livia#Wife_to_Augustus

위키백과, 티베리우스, https://ko.wikipedia.org/wiki/%ED%8B%B0%EB%B2%A0%EB%A6%AC%EC%9A%B0%EC%8A%A4


*네이버 블로그에도 게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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