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리나입니다. 어제 브런치에서 알람이 왔더라고요. 2주째 글을 안 올렸다고;;; 사실 월요일에 백신을 맞았습니다. 팔이 아픈 것 빼고 별다른 증상은 없었는데 백신 핑계 대고 일주일간 놀았습니다(마지막 글을 9월 2일에 올렸으니 정확히 16일 놀았네요). 그래도 수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릴 때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잊어버리고 있던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를 대략 훑을 수 있었거든요. 커뮤니티와 나무위키를 서칭한 게 전부이지만요.
초등학생 때 세계사에 파묻혀 지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주로 영국사와 로마사를 좋아했었는데요. 비잔티움 제국사는 조금 접했습니다. 하지만 세계사 전집에서 '1453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을 읽고 감동을 받았던 기억은 뚜렷합니다.옛날의 영광을 잃고 도시국가로 전락한 비잔티움 제국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콘스탄티노스 11세의 삶은 물씬 감동을 남겼죠(그러고 보니 초딩 때 오스만 제국을 엄청 싫어했었네요. 비잔티움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술탄 메메트 2세한테 별 욕을 다했던 기억이 있는데, 막상 세계사로 수능 공부할 때 오스만 제국이 몰락하는 모습을 보고 착잡했던 기억도 납니다. 오스만 제국도 비잔티움 제국과 비슷한 과정을 겪고 몰락하거든요. 공교롭게도 오스만의 마지막 술탄은 메메트 6세라죠).
10여 년이 지난 지금, 김형오 작가가 지은 "술탄과 황제"를 읽고 콘스탄티노스의 삶을 다시 접했습니다. 정확히는 만화판으로요. 엄청 울었습니다(저 원래 잘 안 우는데, 저랑 상관없는 다른 나라 황제한테 이렇게 감정 이입할 줄은). 살아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도 천 년의 수도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전선에서 싸운 황제가 존경스럽기도 했지만... 뭐랄까요. 비참하기도 했습니다. 혼사를 구하지도 못하고, 대관식도 치르지 못한 채 바로 오스만에게 포위당한 콘스탄티노플을 지켜야 했죠. 서유럽 국가들에게 여러 번 도움을 청하지만 베네치아와 제노바를 제외하면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고요. 결국 구원병이 오나 안 오나 지켜보다가 아무 성과 없이 돌아온 신하들을 위로한 뒤, 혼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참.,. 눈 뜨고 보기가 어렵더군요.
하지만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려 한 메메트의 입장도 이해가 됩니다. 메메트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자신의 나라를 더 부강하게 키우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니까요(여담이지만, 해전이 오스만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배를 직접 육지로 운반하는 모습은 기함을 차게 합니다. 이렇게 독하니 명군이 될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뒤 이교도인에게 관용을 베풀기도 했고요.
그런데 비잔티움이 뭐냐...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비잔티움은 쉽게 말하면 동로마입니다. 395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승하한 뒤 아들 두 명에게 직위를 물려주었죠(참조 글: 그 바보 때문에 다 망쳤어!! / 야만인, 로마를 구하다). 테오도시우스 황제 이전에도 황제를 여러 명 두어 통치하는 시스템이긴 했습니다.하지만 후대에서는 호노리우스가 다스린 서쪽을 서로마로, 아르카디우스가 다스린 동쪽을 동로마라고 부릅니다(어디까지나 후대에서 분류한 기준입니다. 당대에는 통틀어서 로마라고 불렀어요). 스틸리코가 처형당한 뒤 서로마는 475년,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황제가 오도아케르에게 폐위당하면서 멸망합니다. 하지만 동로마는 천여 년간 지속되다가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합니다.
테오도시우스 1세 사후 로마제국 최종 분할(출처: Ancient History Encyclopedia)
당대의 국호는 '로마 제국'이었습니다. 중세 그리스어로 표기하면, 'Βασιλεία τῶν Ῥωμαίων(바실리아 톤 로메온)'입니다. 여기서 이상한 점을 느끼셨을 겁니다. 로마 제국의 공용어는 라틴어인데, 국호를 중세 그리스어로 표기했다는 점이 말이죠. 백성들은 물론 황실에서도 그리스어를 많이 썼다는 증거입니다. 로마 제국은 이탈리아 반도에서 발현했고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했습니다. 하지만 로마는 그리스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로마 황실에서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혼용해서 사용했습니다(그리스어는 상류층이 쓰는 언어라는 풍토가 깔려 있었죠). 로마에게 정복당한 그리스 영지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리스어를 사용했고요. 475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이탈리아 반도를 상실한 뒤,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때 잠시 이탈리아 반도까지 영토를 확장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영토가 축소되면서, 그리스 일대가 중심이 되었죠. 라틴문화의 색채가 희미해지고 그리스 문화가 융성해졌습니다. 서유럽인들은 그들을 보고 '그리스 제국인들'이라고 지칭했죠(동로마 사람들은 본인이 로마라고 주창했고, 서유럽 사람들은 신성 로마 제국을 로마라고 주창했죠).
1세기경: 아우구스투스 / 티베리우스 / 가이우스 / 클라우디우스 / 네로....
(생략)
10세기경: 요안니스 / 바실리오스 / 콘스탄티노스 / 로마노스 / 미하일....
1세기의 로마 제국과 10세기 비잔티움 제국 황제들의 이름입니다. 1세기 황제의 이름에 비해 그리스 분위기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세기 황제 아우구스투스(좌), 13세기 황제 미하일 8세(우)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1세기의 로마 황제와 비교해보면, 기독교적 색채가 느껴집니다(미하일 8세가 십자가를 들고 있죠).
일반적으로 7세기경, 이라클라오스(헤라클리우스)가 제국의 공용어를 그리스어로 바꾼 때부터 15세기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때까지를 학계에서는 '비잔티움 제국'으로 부릅니다. 하지만 '비잔티움'이라는 말은 당대에는 쓰이지 않은 말입니다. 서유럽인들도 '그리스 제국', '콘스탄티노폴리스 제국'이라고 불렀고, 이슬람인들은 '룸(rum)'이라 불렀으니까요. 그러면 언제부터 '비잔티움'이라는 말이 쓰였을까요? 이 글에 따르면(Barry Lawrence Ruderman Map Collection), 1557년 신성 로마 제국의 역사가 히에로니무스 볼프가 '비잔티움 역사집'을 출판하면서 '비잔티움 제국'이라는 말이 세상에 등장합니다. 비잔티움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의 옛 이름입니다. 32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 제국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하기 전에 불렸던 이름이죠. 원래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비잔티움의 이름은 '노와로마(새로운 로마)'로 개칭했으나 사람들이 '콘스탄티노플(콘스탄티누스의 도시)'로 부르면서 '콘스탄티노플'로 알려졌죠. 서로마 제국이 사라진 후, 신성 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은 '누가 진짜 로마냐'면서 주도권 다툼을 했었는데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오스만 제국이 '로마의 후예'를 자청하자, 신성 로마 제국이 '내가 진짜 로마 제국'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동로마 제국에게 '비잔티움 제국'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이후 몽테스키외를 비롯한 근대 계몽학자들이 '비잔티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동로마 제국을 '비잔티움 제국'이라고 부르는 풍토가 정착되었죠.
'동로마 제국'이라는 말도 당대에는 쓰이지 않았지만, 고대 로마(서로마 제국 멸망 전)와 구분하기 위해 저는 '동로마 제국'으로 부르려 합니다. 비록 종교와 문화, 언어 면에서 많이 변화하기는 했어도 국호는 그대로 유지했고 로마의 정신도 이어받았으니까요. <역사가 버린 2인자>에 연재할 동로마 인물들은 4명으로, 2-3주에 걸쳐 연재할 예정입니다. 동로마 역사를 전부 다룰 것은 아니고, 마지막 중흥기라 불리는 콤니노스 왕조 시기부터 동로마 멸망 때까지 다루려 합니다(동로마사를 훑으면서, 콘스탄티노스말고 저를 매료시킨 황제가 하나 더 있는데.. 그분을 다시 만날 생각 하니 흐뭇해지는군요). 아무튼, 다음 글은 이르면 오늘 밤, 늦으면 내일 새벽에 올라올 겁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