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 전시: 베르메르의 비밀
올겨울,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에서 ‘베르메르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은 수가 적은 데다 전 세계 미술관에 흩어져 있어 한자리에서 보기 어렵다. 2023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그의 작품 28점을 한데 모은 특별전이 큰 화제를 모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큐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는 레플리카로 구성되어 원작을 마주하는 전율은 없지만, 베르메르처럼 전작 수가 적은 화가의 작업을 연대기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베르메르가 어떻게 빛과 색을 다루는 방식을 확장해 갔는지, 또 한동안 잊혀졌던 화가가 오늘의 명성을 얻게 되는 과정을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나간다.
베르메르는 남긴 작품 수도 적을 뿐 아니라 생애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많이 없다. 고향인 네덜란드의 항구도시 델프트를 평생 거의 떠나지 않았으며 화가로서의 활동, 결혼, 생활, 주요 후원자 모두 델프트 중심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는 생전에도 당대에 렘브란트처럼 널리 알려진 화가는 아니었고 사후에는 거의 잊혀진 화가였다.
그를 재발굴한 건 프랑스의 미술비평가 테오필 토레이다. 그는 1842년 〈델프트 풍경>을 보고 베르메르에 주목하게 되었고, 이후 그의 작품을 꾸준히 소개했다. 묻혀 있던 화가가 그의 가치를 알아주는 한 사람 덕분에 사후 200년 만에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베르메르를 세상에 다시 불러낸 작품이 그가 생전에 단 두 점만 남긴 풍경화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베르메르는 주로 실내에서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우유를 따르는 소녀>,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 <회화의 알레고리> 등 유명한 작품이 많지만 역시 그에게 '빛의 화가'라는 타이틀을 준 작품은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이다.
‘북유럽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이 작품은 푸른색 터번을 두른 채 관객을 살짝 돌아보는 소녀의 모습으로, 묘한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작품은 1881년 경매에서 한 네덜란드 수집가에 의해 아주 낮은 가격으로 구입되었고, 이후 미술관에 유증되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문학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이 작품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매혹적이지만, 1900년대 이후 소설과 영화로 대중에게 이름을 더 널리 알렸다.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을 맡은 영화에서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베르메르의 집에서 일하는 하녀로 설정한다. 그녀는 그의 아내보다도 베르메르의 예술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는 것으로 그려지며,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하지만 사실 이 작품은 ‘트로니’라는 장르로 특정 인물을 묘사한 초상화가 아니라 표정, 빛, 의상, 성격 유형을 탐구하는 일종의 캐릭터 스터디이다.
소녀가 입술을 살짝 벌린 채 뒤돌아보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이 작품은 처음에는 그 신비로운 분위기에, 다음으로는 빛의 효과를 섬세하게 구현해 낸 디테일에 감탄하게 된다. 비록 레플리카이지만 책이나 영화 화면으로만 보았던 작품을 마주하니 진주의 광택이나 입술의 윤기, 눈동자의 반짝임이 더 눈에 잘 들어온다. 특히 소녀의 귀에 달린 진주귀걸이는 실제 형태나 윤곽을 세밀하게 그린게 아니라 단 한 점의 하이라이트와 부드러운 반원형의 음영만으로 표현된 것을 볼 수 있다. 소녀의 의상은 노란색, 파란색의 단 두 가지 색으로 표현되었으며 검은색의 배경과 함께 인물이 고요 속에서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어떤 화가에게는 형태보다 색이 먼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그 자체이기도 하다. 베르메르 역시 사물을 정확히 묘사하기보다, 빛이 닿을 때 색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집요하게 관찰한 화가였다. 영화에서는 베르메르가 색에 대한 강한 집착을 지닌 인물로 그려지며, 하녀에게 안료를 갈고 섞게 하면서 색의 미묘한 차이를 구별하도록 훈련시키는 장면들이 반복된다. 17세기 화가들이 사용할 수 있었던 안료의 종류는 오늘날에 비해 매우 제한적이어서, 베르메르가 실제로 사용한 색도 약 스무 가지 남짓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그의 그림 속 색은 결코 단조롭지 않다. 많지 않은 색을 겹겹이 쌓아 올리며, 빛이 그 사이를 통과해 스며드는 효과를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서는 파란색, 특히 울트라마린이 매우 자주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울트라마린은 당시 금보다 비싼 안료였다. 신성과 숭고함을 상징해 성모 마리아의 로브 (청색 망토)에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베르메르는 당대 네덜란드의 시대상황에 기인한 것도 있지만 종교화 자체를 두 점 밖에 남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 색을 꼭 종교화에 국한해야 한다고 생각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편지를 읽거나 우유를 따르는 평범한 일상의 여인들에게도 아낌없이 울트라마린의 옷을 입혔고 그로써 일상의 순간을 마치 성스러운 장면처럼 빛나게 만들었다.
울트라마린은 라피스 라줄리(청금석)를 곱게 갈아 기름과 수지, 점토를 섞고 여러 차례 정제를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안료였다. 파란색 안료가 울트라마린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베르메르는 그중에서도 유독 이 비싼 파랑을 반복해 사용한 화가였다. 물론 후원자가 존재했지만, 안료를 전적으로 후원에 의존할 수 있었던 상황은 아니었고, 그의 아내가 남긴 기록을 통해 우리는 베르메르가 생의 말년에 재정적 압박과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울트라마린을 포기하지 않았다. 후대 연구자들은 베르메르가 이 안료를 통해 색을 칠하려 했다기보다, 빛이 색층을 통과하며 머무는 방식을 실험했다고 본다.
원하는 색과 빛을 구현하고자 한 예술가의 고집 덕분에 우리는 성모 마리아의 신성이 아닌, 평범한 일상의 숭고함을 본다. 매일같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출근하는 아버지의 발걸음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식탁을 차리고 아이들을 돌보는 어머니의 손길에서, 병상에 누워서도 다 큰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며 고통과 외로움을 감추는 노부모의 마음에서.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고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그 지점에서, 나는 숭고함을 본다.
베르메르가 사랑한 울트라마린은 신성에게 바쳐진 파랑이 아니라, 반복되고 소모되는 매일을 견뎌낸 이들을 위한 조용한 헌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