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끝에 맺힌 물방울의 근원
지난 12월 22일에 막을 내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김창열>은 물방울 화가로 알려진 김창열의 예술 여정을 총체적으로 재조명하는 회고전이었다. 전시는 1950년대 초기작, 60년대 앵포르멜 작업부터 2021년 작고할 때까지의 작품들을 아우르며 김창열 화업의 정점이자 정수인 물방울 회화의 기원을 연대기적으로 조명한다.
김창열의 물방울은 한국 근현대사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1929년 평안남도 맹산군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재학 중 소련군이 북한을 점령하자 남쪽으로 피신했고 1949년 서울대 미술대학교에 입학했지만 6.25 전쟁 발발로 학업이 중단되고 만다. 김창열은 “너무 많은 죽음과 잔인함을 봤다. 시체들이 바람 빠진 럭비공처럼 수없이 거리에 많이 있었다.”라고 회고하였으며 이 시기는 그가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내면화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어려운 여건 속에서 치열한 노력 끝에 1965년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한 ‹제사>에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색띠 아래로 총탄 자국을 연상시키는 불규칙한 구멍이 표현되어 있다. 김창열은 “6.25 전쟁 중에 중학교 동창 120명 중 60명이 죽었고 그 상흔을 총알 맞은 살갗의 구멍이라고 생각하며 물방울을 그렸다. 근원은 거기였다.”라고 회고했다. 그의 물방울 회화는 이처럼 비극적인 시대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1965년 김창열은 김환기의 추천을 받아 록펠러 재단 후원으로 뉴욕으로 건너가게 된다. 팝아트, 미니멀리즘 등 새로운 사조와 스프레이 기법을 흡수하며 실험을 거듭했지만 뉴욕의 차가운 공기는 그에게 깊은 정서적 소외감을 안겼다. 하지만 바로 이 때 그의 작업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앵포르멜의 거친 질감이 사라지고 매끈한 화면 위에 기하학적 형태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외부로 팽창하는 듯한 응축된 에너지를 담은 이 문양들에 대해 김창열은 “내면의 뜨거운 응어리들이 점차 응결되고 냉각되어 공같이 된 흰 구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1969년 그는 파리로 거처를 옮긴다. 이 시기에는 넓은 색면 위에 점액질의 액체가 흘러내리는 <현상> 시리즈가 탄생한다. 캔버스의 찢긴 틈 사이로 흘러내리는 듯한 액체덩어리는 마치 물성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만큼 그 이면에 깃든 육체성과 폭력성도 엿볼 수 있다. 끈적이던 형상은 1971년 투명한 물방울로 변화하게 된다. 캔버스를 재사용하기 위해 뿌려둔 물방울이 맺히는 걸 본 순간 그토록 오랫동안 탐구해 온 구체의 완성형이자 그만의 조형언어를 발견한 것이다. 그렇게 하여 탄생한 첫 물방울 작품이 스프레이라커를 이용해 제작한 <밤에 일어난 일>이다.
1970년대부터는 우리에게 익숙한 김창열의 물방울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캔버스의 표면에서 생겨난 것처럼 영롱하게 맺힌 물방울들이 홀로, 또는 군집의 형상으로 다양한 변주를 이루며 화면을 채웠다. 1970년대 후반에는 물방울과 함께 얼룩 자국이 등장해 그 생성과정과 흔적을 나타냈고 80년대 중반에는 유년기 시절에 익혔던 천자문을 회상하며 배경에 문자를 도입한 〈회귀〉 연작으로 이어진다.
김창열이 물방울에 이토록 집착에 가까운 강박으로 천착한 이유는 그 속에서 동양적 순환 원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원형의 액체를 캔버스에 재현하며 우주적 공과 허의 세계로 파고든다. 너무 흔해서 무심코 지나치는 물방울이지만 거기에는 삼라만상의 이치가 투영되어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물방울은 동양철학의 오행 개념과도 상통한다. 오행은 자연의 생성, 변화, 소멸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목화토금수가 고정된 실체인 다섯 가지 물질이 아니라 자연계의 다섯 가지 작동원리라는 점이다. 목(木)은 위로 뻗고 자라나는 생장의 기운이며, 화(火)는 확산과 상승, 발현의 에너지다. 토(土)는 그 사이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전환하며 균형을 이루는 중심이고, 금(金)은 수렴과 절제, 단단히 맺히는 기운을 뜻한다. 수(水)는 “水曰潤下”라 하여 자윤, 하향, 한랭의 특성과 함께 저장, 응축의 기운이다. 순환구조인 오행에서 水는 끝에 놓이지만 다시 시작을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전쟁의 희생자들에 대한 진혼곡처럼 ‘제사’로 시작했던 전시는 물방울의 탄생과 유년시절로의 ‘회귀’를 거쳐 다시 ‘제사’로 끝을 맺는다. 마치 오행의 순환구조처럼 처음과 끝을 연결하는 구성으로 김창열 물방울의 근원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큐레이션이다.
김창열의 물방울은 시대의 고통에서 태어나 치유의 끝에서 맺혔다. 상처 위에 진물이 고이고 새 살이 돋아나듯, 물방울은 앵포르멜의 찢긴 살에서 시작해 회복의 흔적으로 남았다. 그의 물방울은 지나간 세월과 사라진 이들의 시간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것은 수(水)의 기운, 곧 응축된 기억과 침묵을 고스란히 머금은 형상이다. 그저 투명하고 영롱한 줄 알았던 물방울의 근원은 무거운 슬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