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가 숨긴 여인은 누구일까, 사라졌던 여인의 초상

'클림트와 리치 오디의 기적' 전시 리뷰, 마이아트뮤지엄

by 달리아



루브르 미술관의 작은 그림 <모나리자>는 왜 그렇게 유명해졌을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푸마토 기법으로 연출된 신비로운 미소는 분명 이 작품의 핵심이지만, 오늘날의 압도적인 유명세를 얻게 된 것은 1911년의 도난 사건 이후이다. 당시 허술했던 미술관의 보안은 그 이후로 강화되었고 이제 모나리자는 두꺼운 방탄유리 안에 갇혀 멀찍이 떨어져서만 마주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고흐의 <귀 잘린 자화상>은 고갱과의 격렬한 갈등 이후에 스스로 귀를 자른 사건과 함께 기억되고,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던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는 소설과 영화의 문학적 상상력을 업고 ‘북부의 모나리자’가 되어 날아올랐다. 이 외에도 유독 유명한 그림들에는 종종 작품을 둘러싼 이야기가 존재한다. 이는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더 높은 몰입도의 감상을 이끌어내며 작품을 하나의 완결된 서사로 확장시킨다.


현재 삼성동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얽힌 작품이 등장한다. 클림트가 생전에 유일하게 남긴 이중초상이자 도난당했다가 극적으로 돌아온 <여인의 초상>이다.


이 작품이 클림트 황금시기의 정수인 <키스>나 <유디트> 등 여타 그림들보다 더 예술성이 뛰어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겹의 얼굴 아래 또 다른 얼굴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한때 세상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사연은 이 그림을 주목하게 만든다.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건은 19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 피아첸차의 귀족이자 컬렉터인 주세페 리치 오디는 한 미술상으로부터 클림트의 <여인의 초상>을 사들였다. 이후 1931년 리치 오디 현대미술관이 개관하며 이 작품이 대중에게 처음 공개되었다.


그로부터 65년의 시간이 흐른 1996년, 이탈리아 피아첸차의 미술학도였던 18세 클라우디아 미가는 클림트 도록 속 실종 작품과 미술관 소장품 <여인의 초상>이

형태적으로 일치하는 걸 발견한다. 그녀의 제보로 진행된 엑스레이 분석을 통해 덧칠된 층 아래로 1912년 이후 행방묘연했던 그림이 숨겨져 있음이 확인되었다.


챙 넓은 검은색 모자를 쓰고 검정 스카프를 두른 앳된 소녀를 그린 이 작품은 기록에 따르면 1910년 <젊은 여인의 초상>이라는 제목으로 제9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되었고, 1912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전시된 이력도 있다. 클림트가 판매되지 않은 이 작품을 회수해 의상과 모자를 지우고 덧칠하여 지금의 <여인의 초상>을 완성한 것은 1916-1917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화가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기존에 있는 그림 위에 덧칠하여 새로운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클림트같이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화가가 캔버스값을 아끼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작품의 모델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은 1911년, 스물네 살의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빈의 여인 리아 뭉크다.

부유한 비엔나 유태인 집안의 딸이었던 그녀는 약혼자와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자 24세의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딸을 기리기 위해 유가족은 클림트에게 초상화를 의뢰했고 클림트는 세 차례에 걸쳐 그녀의 초상화를 완성하려 했으나 상황이 허락지 않았다. 이 작품의 모델이 리아 뭉크라는 추측은 클림트가 제작한 두 개의 리아 뭉크 초상화와 흡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록으로 명시되어 있는 것은 없을뿐더러 의뢰인인 유가족도 이 작품을 소유한 것이 아니기에 소녀의 정체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여인의 초상, 1916-1917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여인의 초상>은 덧칠된 소녀와 얼굴 윤곽은 비슷하지만 머리 스타일과 전체적인 분위기는 좀 더 성숙한 느낌이다. 밝아진 의상과 짙어진 배경색은 인물에 생동감을 부여하며 그림의 제목을 <소녀의 초상>에서 <여인의 초상>으로 바꾸었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이 그림을 처음 마주했을 때 아름답다는 인상보다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묘한 감정이 먼저 다가왔다. 여인의 얼굴은 화사한 것 같으면서도 온기가 없다. 죽음의 느낌이라 표현한다면 너무 직설적일까. 발그레한 볼과 입술과 대비되는 창백한 피부, 또렷한 듯하면서도 비어 있는 눈빛이 그런 인상을 더욱 짙게 만든다. 이 초상 속에서 여성의 시간은 어느 순간 멈춰버린 듯 보인다.



클림트가 처음부터 이러한 여인들을 그린 것은 아니다. 한때 그는 위의 작품들에서 보이듯, 건강하고 탄력 있는 피부표현이 가능했던 화가였고 황금시기에는 관능적이고 화려한 여인들로 우리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점차 창백해지고, 육체는 생명력을 잃은 듯 보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는 그가 통과해 오던 시대의 공기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Johanna Staude, 1917


클림트가 살았던 시대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던 경계의 시간, 이른바 ‘세기말 비엔나’라 불리는 공간과 겹쳐 있다. 화려한 카페와 오페라 극장, 황금빛 장식의 살롱에서 문학과 예술의 열띤 토론이 벌어지던 낭만적인 시대. 그러나 그 이면에는 세기말이라는 단어가 주는 불안과 공포, 자살률 증가, 만연했던 성병과 결핵으로 인한 죽음의 그림자가 일상 속에서 도사리고 있었다. 또한 20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손꼽히는 프로이트의 등장으로 무의식과 죽음충동 이론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클림트가 1910-1911년에 제작한〈죽음과 삶>을 떠올려보면, 그 역시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가족력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포에 평생 시달렸다는 점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흥미롭게도 클림트가 숨겼다가 재발견된 〈여인의 초상〉은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 한번 평행이론 같은 운명을 우리 앞에 드러낸다. 이중초상의 발견을 기념하는 대규모 특별전을 앞둔 1997년 2월, 작품 이송 준비로 미술관이 분주해진 틈을 타 〈여인의 초상〉이 사라진 것이다. 작품은 ‘세계 10대 도난 미술품’에 이름을 올렸고, 인터폴의 집요한 추적에도 불구하고 22년 동안 그 행방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2019년, 미술관 외벽을 뒤덮은 담쟁이덩굴을 정리하던 정원사가 오랫동안 잠겨 있던 작은 공간에서 검은색 쓰레기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놀랍게도 사라졌던 〈여인의 초상〉이 들어 있었다. 작품의 보존 상태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고, 분석 결과 그림을 감싸고 있던 봉투는 도난 당시에는 아직 생산되지 않은 제품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이 그림이 오랜 시간 다른 장소에 보관되다가, 발견 직전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그 자리에 옮겨졌음을 시사한다.

이 그림이 젊은 나이에 요절한 리아 뭉크의 얼굴일지도 모른다는 추측, 클림트가 유독 이 초상화를 그리는 과정을 힘겨워했다는 기록, 그리고 죽음의 공포를 평생 품고 살았던 클림트의 생을 나란히 놓아보면, 그가 왜 굳이 하나의 얼굴 위에 또 다른 얼굴을 겹쳐 그렸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어쩌면 그는 피어나기도 전에 사라진 소녀에게 누려보지 못한 삶의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덧칠이라는 행위를 통해 끝내 벗어날 수 없었던 죽음의 공포를 덮고 싶었을 수도.


과거의 운명을 반복하듯 사라졌다가 돌아온 여인의 얼굴.

이처럼 이야기가 얽힌 그림 앞에서 우리는 잠시 화가의 시간을 살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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