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터렐,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페이스갤러리 전시 ~2025.9.27까지

by 달리아


현재 한남동 페이스갤러리에서는 오픈과 동시에 전 시간대 매진을 기록한 제임스 터렐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08년 이후 열리는 서울에서 열리는 터렐의 첫 개인전이자 페이스갤러리 설립 6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1943년 로스엔젤레스에서 출생한 제임스 터렐은 빛, 공간, 감각 경험을 핵심 소재로 삼은 미니멀리즘의 한 갈래인 라이트 앤 스페이스 운동을 대표하는 작가이며 <프로젝션 피스> <스카이스페이스> <간츠펠트> 시리즈를 거쳐 현재는 애리조나 북부에서 진행하는 대형 프로젝트 <로든 크레이터>를 진행 중이다.


Atlantis, Medium Rectangle Glass


제임스 터렐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인생의 어두웠던 시기에 양평 구하우스에서 보게 된 터렐의 <Atlantis, Medium Rectangle Glass>는 나에게 말 그대로 빛으로 다가왔다. 나는 고통의 한가운데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시큰해졌고 슬픔은 아름다움과 맞닿아있음을,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예술은 슬픈가보다” 라고 독백하던 윤형근의 문장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수많은 미술작품을 보았지만 내가 눈물을 흘린 건 윤형근과 제임스 터렐 작품이 유일하다.


간츠펠트와 웨지워크: 감각의 경계를 넘는 작품들

두 번째로 제임스 터렐을 만난 건 뮤지엄산에서였다. 원주에 있는 이 아름다운 미술관에서는 터렐의 대표작 다섯 점을 상설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모두에게 소름돋는 반전을 선사했던 간츠펠트다. 심리학에서 간츠펠트 효과(Ganzfeld Effect)란 아무런 시각 자극을 받지 못하는 상태, 곧 지나치게 균일한 시각 자극에 노출되는 상태에서 환각이나 혼돈을 일으키는 현상을 말한다. 작품 제목이 주는 힌트만 끝으로 혹시나 방문하게 될 독자들을 위해서 스포일러는 아껴두려 한다. 이번 페이스갤러리 전시에서 간츠펠트를 볼 수는 없지만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제작한 장소 <웨지워크>를 포함해 대표적인 설치작품 5점이 선보인다.

웨지워크 (출처: https://www.museumsan.org/museumsan/)


<웨지워크>를 감상하기 위해서 관람객들은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으로 안내되어 벽 앞에 앉는다. 마치 액자처럼 빛이 둘레를 감싸고 있는 벽을 마주하고 앉아 있으면,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 어떠한 설명도 없다. 도대체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몰라 불안해질 즈음, 마치 환영처럼 그 벽 안에서 다른 차원의 공간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빛은 끊임없이 교차 투사되며 마치 실체를 지닌 듯한 감각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공간은 물리적 경계를 넘어 안쪽으로 확장된다.


제임스 터렐은 빛과 공간의 물질성을 다루는 지각 예술가로 그의 작품세계는 그의 가족이 퀘이커 교도였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퀘이커교 예배가 강조했던 건 내면의 빛이었지만 어린 터렐은 빛의 물리적인 현존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대학에서 지각심리학을 전공했지만 갈수록 미술 창작에 흥미를 느끼게 되면서 어릴 때부터 관심을 가진 빛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제작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터렐의 작품이 마치 입체적인 마크 로스코의 회화처럼 느껴졌는데 실제로 로스코와 바넷 뉴먼의 색면회화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다만 터렐은 빛을 담은 작품이 아니라 빛 그 자체를 기술을 활용해 물질화시켰다.


감각이 확장되는 빛의 공간

<웨지워크>에 약 20분간 몰입해 있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는 책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이 떠올랐다. 불치병에 걸렸다가 임사체험 후 완치되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저자 아니타 무르자니는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동안 그녀가 경험한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아무런 물리적 제약이 없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바깥쪽으로 끝없이 확장해가며 우주로 통합되는 느낌”이라고. 또한 시간은 여기서처럼 직선으로 흐르지 않았고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지점들을 동시에 인식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말하는 것을 우리의 인식 차원에서는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제임스 터렐은 그녀가 말하는 다른 차원의 세계를 빛으로 구현해냈다. 빛이 교차되며 만들어내는 공간의 확장을 바라보며 관객들은 마치 영적 경험을 하는 것 같은 느낌 속에 각자의 내면에 침잠한다.


“I like to use light as a material,

but my medium is actually perception.

I want you to sense yourself sensing – 

to see yourself seeing.”


터렐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빛이 아니라 ‘지각(perception)이다. 그는 빛을 소재로 삼았지만 그의 예술은 관객이 보고 있다는 행위 자체를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미술사학자 전영백은 그녀의 저서 <코끼리의 방>에서 터렐의 작품은 다양한 공간에서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하지만 확실한 일관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빛을 물질로 만들어 관람자가 지각하게 하고 그 미적 체험을 내면으로 끌어들여 명상과 사색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마치 우리가 꿈에서 본 듯한 빛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터렐의 작품에서 비치는 빛을 평소에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빛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터렐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알고 있는, 이 세계 너머의 ‘어떤 곳’을 떠올리게 하는 빛을 창조했다.

그래서일까.

마크 로스코의 화면이 비극을 머금고 있다면,

터렐의 빛은 한없이 따뜻하다.

웨지워크에 몰입해 있는 동안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이 동시에 존재했으며 나는 아니타 무르자니가 말한

‘우주적 존재의 무조건적 사랑’을 엿보았다.

그리고 정말, 모든 것이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