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컬렉션 전시 (~11.30까지)
나폴리맛피아로 알려진 흑백요리사 우승자인 권성준 셰프가 나폴리에서 지냈던 기간이 알려졌을 때 많은 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간 보여준 뼛속까지 나폴리부심에 비해 지냈던 기간이 2년도 채 안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한 유튜브 채널에서 나폴리에서 지냈던 실제 기간보다 자기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20대 한 청년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정도의 강력한 영향을 지녔던 도시 나폴리는 어떤 곳일까?
이탈리아의 수많은 도시들 중 관광지로 인기가 많다고 할 수는 없는 이 도시의 숨겨진 매력을 엿볼 수 있는
전시가 현재 삼성동 미술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나폴리를 거닐다
이탈리아 남부 최대 규모의 국립 미술관인 카포디몬테 미술관은 본래 1734년 나폴리 왕위에 오른 카를로 디 부르봉이 어머니에게 상속받은 미술 컬렉션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왕궁이다. 이후 미술관으로 전환되었고
르네상스부터 바로크, 19세기 작품까지 다양한 시기의 미술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으며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티치아노, 카라바조 등 서양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주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예리한 독자들이라면 마지막 문장에서 이번 전시의 특별함을 눈치챘을 것이다. 앞서 열거한 거장들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기에 활동했던 인물들로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이탈리아는 미술사의 중심에서 밀려난 상태였다. 19세기는 다양한 미술사조가 일어난 대격변의 시대로 그 중심에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든 프랑스 파리가 있었다. 특히 19세기 후반에 태동한 인상주의는 20세기 모더니즘의 길을 열며 미술 회화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가장 영향력 있는 사조로 꼽힌다.
중심에서 밀려난 19세기 이탈리아 미술
한때 르네상스 미술의 요람’이었던 이탈리아는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미술의 요람이자 무덤’이라는 냉혹한 평가를 받기도 한다. 찬란한 예술의 꽃을 피웠던 이탈리아가 이렇게 된 시대적 배경에는 19세기 중반 여러 분열된 국가들을 사르데냐 왕국 주도로 하나의 이탈리아로 통합하기 위해 벌어진 이탈리아 통일전쟁이 있다.혼란스러운 통일 전후의 상황 속에서 사회가 전반적으로 불안정했고 예술에 대한 체계적인 후원시스템은 약화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익히 아는 이탈리아 화가는 카라바조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19세기 이탈리아 미술을 둘러보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일단 전시에 나온 작품들을 살펴보자.
그래도 기억해야 할 이름, 조반니 볼디니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익숙한 화풍이지만 화가들의 이름은 다 낯설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기억해야 하는 화가가 한 명 있으니 바로 조반니 볼디니다.
1842년 이탈리아 페라라의 화가 집안에서 출생한 그는 사교계의 모든 여성들이 그가 그려준 초상화를 원할 정도로 당대 인기있는 초상화가였다. 19세기 후반에도 국제무대에서 이름을 남긴 드문 이탈리아 화가로 평가된다. 그는 속도감 있는 유려한 붓터치로 유명했는데 배경은 마치 인상주의처럼 흐릿하게 표현하는 반면 여성의 얼굴은 무척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내곤 했다.
<공원산책>은 그런 그의 특징을 잘 드러내주는 작품이다. 낙엽을 떨어뜨리고 있는 나무들과 여성의 옷차림으로 보아 계절은 가을이며 버건디 드레스를 입고 풍성한 털의 숄을 두른 여성은 우수에 잠긴 표정으로 산책 중이다. 여성 오른쪽에서 발랄하게 뛰어가는 강아지 두 마리가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에 생기를 더한다.
여성의 삶과 전쟁: 도메니코 인두노의 ‘편지’
전시의 주제 중 하나가 여성이었던만큼 아름다운 여성들을 그린 작품들이 유독 많은데 같은 여성을 담고 있음에도 시대적 배경을 나타내는 위와 같은 작품도 있다.
이 작품은 처음 봤을 때 네덜란드의 페르메이르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평범한 듯 하지만 모호한 분위기를 담고 있는 페르메이르에 비해 이 작품은 상황이 명확하다.
한 여성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한 손에 편지를 쥔 채 협탁에 기대어 서 있다. 전쟁에 참여한 사람은 그녀의 남편일 수도, 또는 오빠나 남동생일 수도 있다. 그가 사망했거나 실종됐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편지일 가능성이 높은 이 작품에서 여성의 절제된 슬픈 표정은 전쟁이 평범한 가정에 불러올 수 있는 비극을 상기시킨다.
이탈리아 통일전쟁은 경제적, 문화적으로 앞서있던 북부가 상대적으로 경제적 발전이 뒤쳐졌던 남부를 흡수하며 주도권을 장악하는 과정이었는데, 창 밖으로 보이는 밀라노대성당의 첨탑으로 보아 이 작품의 배경은 북부로 추정된다. 이 작품을 그린 화가는 도메니코 인두노로 1850년대 중반부터 애국적 영감을 받은 주제를 자주 다루었다.
변화하는 도시의 기록: 콜레라 이후 나폴리
위 작품은 작지만 19세기 나폴리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의미있는 그림이다. 1882년 시작된 콜레라는 1884–1886년 이탈리아, 특히 나폴리에서 대유행해 수천 명이 사망했고 이후 위생 체계 재정비와 도시 구조 개편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이후 나폴리 도시 재개발을 위한 하수도 정비와 도시 재건이 추진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주거지가 불법적으로 철거되고 부동산 개발 위주로 사업이 진행되었다는 비판도 함께 제기되었다. 이 작품은 콜레라 이후 도시 재개발로 급변하던 나폴리의 민중과 골목, 시장, 광장의 풍경의 기록이다.
19세기 나폴리 미술이 우리에게 전하는 의미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나폴리를 거닐다’는 전반적으로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전시였다. 전시를 둘러보며 이탈리아가 미술사의 중심에서 밀려난 이유를 또 하나 떠올리게 된다.
바로 ‘혁신의 부재’다.
파리에서 다양한 미술사조가 일어나는 동안 이탈리아는 고전적인 전통에 집착하며 새로운 표현 방식이나 실험에 소극적이었다. 현대미술이 과거의 틀을 부수며 끊임없이 진화해온 반면 이탈리아는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 안주했다. 다만 달리 생각해보면, 현대미술이 본래의 정신보다는 파괴적이고 자극적인 형식에 집착하면서 관람객들에게 난해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전시는 비록 혁신적이지는 않더라도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지 상기해보게 한다. 그 시대 화가들이 그려낸 풍경과 인물들은 당대 사회의 역사적 증언이자 기록이다. 예술에서 혁신은 길이 남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며 때로는 담담하게 역사를 기록하고 평범한 삶을 반영하는 데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게 하는 전시였다.
다른 이야기지만 예술의 중심지는 또 변할 수 있다. 한때 영원할 것 같던 파리의 영광이 20세기 중반 미국으로 넘어간 것처럼, 오늘날 우리는 K-pop을 통해 한국이 새로운 문화 중심지로 떠오르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 K-pop처럼 K-art도 한국을 새로운 미술의 중심지로 만들어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