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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밀린 Nov 22. 2023

나의 시간과 부모님의 시간은 다르다


"아들 요즘에는 어떻게 지내?"
일을 그만두고 백수가 된 지 3개월 차, 엄마는 내가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종종 물어보곤 한다

'잘 지내고 있다'는 얘기보다 더 자세한 상황을 말해야 할 것 같아,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어... 엄마 나 요즘에 글 쓰고 있어"

"그러니? 어릴 때부터 글 쓰고 싶다더니... 나도 네가 쓴 글 좀 보고 싶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부탁에, 나는 티스토리 링크를 공유해 드렸다

그 이후로  '그 글 읽어봤는데 나랑 비슷한 생각이어서 좋더라'는 얘기를 덧붙이며 엄마는 내 에세이의 첫 번째 애독자가 되었다.


그러니까 이건 엄마에게 보여주는 하나의 편지 같은 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나의 글쓰기가 주로 나와 같은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였다면,


이번 에세이는 주인공이 정해져 있는 하나의  편지글일 수도 있겠다.
바로 엄마를 위한 것이다.  

미안하게도,
연인에게 편지를 썼던 적은 많았지만 부모님에게 편지를 썼던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손글씨는 아니지만 생각이 꼭꼭 담긴 편지를 써보려 한다




나는 평소에 편지를 쓰는 것을 좋아한다


일상에서 하지 못했던 얘기를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고, 

한 글자 또박또박 적힌 글씨에 정성이 묻어 나오기 때문이다

엄마와 나는, 인생에 대한 대부분의 생각을 공유하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다 한 얘기들이 많았다. 그런 얘기들 중에 주로... 낯간지러운 얘기들이 많다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
'다음생에 태어나도 엄마랑 살겠다'는 그런 오글거리는 얘기들 말이다

항마력이 부족한 엄마와 나를 위해, 다른 방면으로 오글거리진 않지만 마음이 담길 수 있는 얘기를 생각했다

하루동안, 무엇을 얘기하면 좋을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성관계, 고향 친구들, 앞으로의 직업 등, 정말 많았던 뜬 구름들 속에 가장 진솔한 얘기를 선택했다

그것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아들의 서툰 표현과 '엄마가 해주는 만큼 챙겨드리지 못해 미안하다'는 장남의 마음이다

나는 남자 셋인 집안에 둘째를 담당하고 있다
동생인 셋째와 첫째인 아버지...

엄마는 종종 집안에 아들이 세명이라는 얘기를 하며, 다음 말로 넘어갔다

"첫째가 제일 말을 안 들어!!!"

그 얘기에 흠칫 놀라다가도 내 얘기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첫째는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이제는 금연을 하겠다'는 얘기를 한지 십 년이 넘었지만 집 밖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엄마에게 들키고는 한다

반대로 셋째는 애벌레가 허물을 벗듯, 자신의 행적들을 치우지 않아 엄마에게 종종 혼이 나곤 한다

나는 의외로 잠잠하게 가는 편이다, 어머님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것이 이유인지,
아니면 가장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이 이유인지,


아들 세명인 집에서 가장 덜 혼이 난다.

하지만 우리 집안,
한 명이 잘못하면  다 같이 혼나고는 했다
(공동책임이라는 게 이런 것이겠지?)

항상 다 같이 혼나고 나면, 바로 엄마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가끔은 딸처럼 얘기를 잘 들어주고 싶어 주며,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엄마는 할머니나 주변 친척들이 있는 자리에서,
자녀에 대한 주제가 나오면, 아들만 있는 집안이라 안타깝겠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내가 봐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던 이 걱정 때문에, 

이제는 엄마도 딸이 없는 것에 대한 내성이 어느 정도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 엄마에게 딸은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일까
- 딸은 얼마나 엄마의 얘기를 공감하는 것일까

엄마한테 직접 물어보았다.
"주변을 보니까, 딸은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아도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더라"
그리고 그 미묘한 감정을 잘 알아챈다는 답변을 들었다.

나는 세상 둔하다.

곰과 같은 행동, 그만큼 상대방의 반응에 둔감한 편인데, 이것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얘기를 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셨던 아빠의 얘기...
그래서 알고 있는 잘못을 알고 있는 엄마와, 그 이유를 모르는 아빠가 종종 다툴 때가 있다.

가려운 곳을 잘 긁어내주는 딸이라...

할머니는 내가 결혼할 사람을 데리고 오면 엄마에게 딸이 생긴다는 얘기를 한다

엄마는 이 얘기에 바로 미간을 찡그린다
"엄마!!! 딸이랑 얘 와이프는 다른 거야"

남자와 여자가 다르듯, 딸과 아들은 달랐다
하지만 엄마는 딸이 없어도, 나름의 방법을 잘 찾고 있다
아들 세 명을 키우는 게 이유였던 탓일까? 엄마는 그만큼 강인해졌다

최근에 바람을 쐬기 위해, 고향인 속초로 향한 적이 있었다
서울과는 다른 바닷바람, 짠내가 조금 나는 것 같은 기분 속에, 나는 서울 집이 아닌 진짜 집으로 돌아왔다.

최근에는 자식들의 서울 상경과, 아버지의 발령 때문에, 엄마는 속초에 홀로 있는 일이 많아지셨다

아마 내가 집으로 가면 정말 반가워할 것이다.

엄마는 내가 문을 열자마자,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포옹을 해주셨다


저녁에 속초로 도착을 했기에, 바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농장에서 구입한 아스파라거스와, 제이마트에서 산 육회용 한우, 그리고 데일리 와인까지...
건강한 요리들과 적당한 음주에, 오랜만에 시간을 가지며 이런저런 생각을 얘기했다

항상 얘기를 나누면서 드는 생각이지만 엄마는 특별하다
모든 얘기가 정답이 될 수는 없지만, 내가 고민이 있을 때, 고정관념을 깨는 경우가 많았다

"네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면, 너 옆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 거야"
"남자다움이라는 것, 사실 크게 의미가 없는 것이라 생각해"


그동안의 얘기를 하다 보면, 발등에 있는 사막여우 문신과 눈을 마주치곤 한다
'저 사막여우 문신도 한지 꽤 되긴 했네'


최근에는 엄마가 등에 작은 타투를 하고 싶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엄마가 추천해 준 시안들 중에, 가장 무난한 시안을 고르며 얘기했다
"엄마, 이거 고르면 시술은 언제 하려고?"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 얘기했다
"응? 이미 다음 주에 하기로 했는데?"

이번에 타투를 하게 된다면, 그 타투는 세 번째가 될 것이다
'타투를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한 사람은 없다'는 속담이 있지 않던가?

유치원 영어교사임에도 타투를 감행하는 엄마의 모습은 몹시 특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유분방함'
'시원한 쇼트커트에 팔뚝의 레터링'
'패셔너블한 옷차림'


걸크러쉬라는 표현이 엄마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개방적인 엄마도 나와 동생에게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미안해한다

가끔, 엄마는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금 더 조성해 줬었다면 공부를 더 하지 않았을지' 고민하거나,
'학교가 안 맞아 자퇴를 감행했던 동생에게 미안함'을 느끼기도 하고, '예체능을 하고 싶다는 나를 어떻게 도와줄지 몰라 답답함'을 느끼곤 했다.


아마도 자식이 성공하길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에서 나오는 안타까움이겠지만,

나는 그러한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완벽한 부모란 무엇인지 생각을 해보았다

애초에 '완벽한 부모'가 있을까?
나는 그 '완벽함'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지만 애초에 완벽한 것은 없었다

오히려 나쁜 쪽으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진정한 부모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엄마가 차려준 건강한 식단 덕에 크게 아픈 가족도 없으며,
동생도 제 몫을 열심히 하고 있고, 나도 내 방식대로 일을 찾아가고 있다

부모가 아니기에, 엄마의 온전한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항상 우리를 걱정하고 미안해하는 마음'이 당연한 부모상이라 생각한다

뭐든 더 해주고 싶고, 반찬이라도 만들어서 보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나에게 있어 최고의 부모님일 것이다

최근에, 나의 시간과 부모님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것임을 깨닫고는 한다.
내 상황들은 바쁘게 흘러가고 있는데, 부모님의 시간은 가면 갈수록 고요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고향에 오면, 생각보다 크게 할 일이 없다.


그저 엄마와 얘기를 나누다가... 밤 10시 즈음이 되면, 엄마는 슬슬 잠을 청하고...
나는 그 고요한 공간 속에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며, 오지 않는 잠을 청해 본다
(새벽에 자서 일찍 잠이 오지 않는 것이 이유일 것이다)

내 시간 속에서 '부모님에게 하는 연락'은 '가끔 하는 일과'지만,
부모님의 시간 속에 '아들의 연락'은 조금 더 값진 선물임을 알게 되었다

자녀는 부모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딸이 될 수 없는 나의 미래이긴 하지만, 

나는 부모님의 시간에 맞춰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어버이날 전에 고향에 들르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자녀들이 조금은 더 부모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지만, 부모는 원래 자식을 이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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