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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밀린 Nov 17. 2023

아저씨들의 목소리가 유독 큰 이유

재개발로 뭉친 세 명의 아저씨

오후 1시 즈음,  오늘도 어김없이 글을 쓰기 위해 늦게 잠들었던 몸을 이끌고 근처 조용한 카페로 이동했다


'오늘은 꼭 일찍 카페에 가야지'라고 생각했던 어제의 다짐은 드라이를 맡겼던 새 이불 덕분에 빠르게 무산되었다


내가 요즘 즐겨 찾는 카페, 오전에는 사람이 없어 한적하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노래들도 내 취향과 맞아 굳이 이어폰을 끼지 않아도 되는 최적의 장소 중 하나이다.


카페에 도착하며 늘 그렇듯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를 주문한다

'이 커피가 나에게 몇 시간의 가치가 있을지'와 같은 쓸 때 없는 고민을 하다 보면 금방 커피가 완성되어 책상 앞에 놓여 있다


'오늘은 어떤 주제로 글을 써볼까' 생각을 가지며 카톡에 메모해 두었던 단어들을 살펴본다


'개쩌시, 인생은 타이밍, 고입 입시, 장기연애 등...' 


다양한 주제들을 가지고 어떻게 요리해 볼까 고민하던 중에 어딘가 익숙한 냄새가 스며들어온다


담배 냄새... 그것도 엄청 니코틴이 많이 함유된 말보로 재질의 냄새였다


카페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다니 이 얼마나 무례한 사람인가

커피 향으로 은은하게 취해 있었던 나의 기분을 방해한 그 냄새가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나는 글을 쓰고 있던 노트북에서 시선을 잠시 멈추고, 꿉꿉한 담배 냄새가 나는 곳으로 천천히 눈길을 옮겼다


아...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 

나와 5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 전봇대를 둘러싼 아저씨 세 명이 맞담배를 피고 있었다


이내 나는 미간과 콧등을 잔뜩 찌그린 채 혹여나 아저씨가 내 표정을 볼까 봐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잔뜩 힘을 준 듯한 정장을 차려입은 아저씨, 

동네 골프 웨어에서 편하게 샀을 법한 배가 볼록한 아저씨,

안경을 내리듯이 쓰며 중학교 도덕 선생님이 입을 것 같은 반팔을 입은 채 

세상 야리야리함을 다 가지고 있던 아저씨


내가 아저씨들을 인식한 탓인지, 

그 아저씨들이 빨리 담배를 다 털고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인지

아저씨들이 나눈 대화가 내가 좋아하는 카페 노랫소리보다 훨씬 크게 들렸다


'하하하핫 형님 그게 아니라니깐요... 발전기가...'



발전기가 어쩌고 자세히는 듣지 못했지만 

이 부근을 둘러보니 어렵지 않게 지역주택조합 간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끄러웠던 건가..'

 

항상 지역주택조합 아저씨들은 재개발과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누구보다 높게 목소리가 올라간다.


행동대장처럼 보이는 정장 아저씨가 말했다.


"여기 OO역이랑 ㅁㅁ역 사이에 말이죠.. 

신한은행이 있는데 거기 2층에 공물이 나와가지고 추진위원회 사무소를 지으면 좋을 것 같더라고..

방금 내가 거기서 이 종이에 치수도 다 적어가지고 왔어요"


반말과 높임말이 공존하는 그의 가식적인 모습을 보면서 

저런 어투에도 혹할 수 있는 건가 싶었다

행동대장이 이어 얘기했다



"5000/400으로 투자하면 되는 거니까 그 남은 이자를 여기다가 쓰라고!!!"


모든 얘기들이 들리지는 않지만 무언가 호의를 베푸는 척 의기양양 거리는 행동대장의 모습이 보기 싫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글을 쓰기로 생각을 잡은 그때...


아저씨들이 카페로 조금씩 접근했다

'오지 마!!!' 속으로 생각했다


야리야리한 아저씨는 이 모임의 중간 위치 즈음 되는 것으로 보였다


"동생?? 아이스커피로 시키면 되지?"


다가오는 아저씨들의 목표 지점인 카운터를 바라보니 점원의 표정도 썩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아저씨들은 메뉴판을 쭉 훑어보더니 서로 상의를 마치며 말했다


"아이스커피 두 잔... 여기 시원하게 수박주스 하나 좋겠네... 그거로 하나 줘"


정장을 입은 아저씨는 몸을 뒤로 기울인 채 목주름이 생길 정도로 턱을 당기며,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알아서 가져가라는 듯 손을 튕겼다


"수박주스에 다른 건 넣지 말고, 달달한 건 싫어"


'알아서 주시겠지', '왜 저렇게 밉상이지...?'라는 생각이 들다가,

'막상 나한테 밉보인 것은 없지 않냐'는 생각에 이제는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30초도 지나지 않아 철회하게 되었다..


글을 쓰기 위해 키보드에 손을 올리는 순간 옆에서 소음이 들렸다


호통하게 웃거나 형님 형님하는 그 소리...

나는 저절로 이어폰을 찾아 끼게 되었다.


그들이 돈을 얼마나 벌고, 자기 아들이 어떻고, 골프가 어떻고 이런 얘기들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리에 신경은 끈 채로 글에 집중을 하려 했지만 

야리야리한 아저씨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다


한 30분 정도 지났을까.. 

아저씨들은 다음 일정을 위해 자리를 박차며 발걸음을 옮겼다

결국 나는 카페에서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와 이 글을 적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주제로 글을 쓰게 되었다



왜 아저씨들은 목소리가 크고 유독 반말을 자주 하는 것일까?


그 생각들은 하나하나 나열해 보았다

우선 아저씨들의 목소리가 큰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사실 목소리가 큰 것이 문제는 아니지만 일부 아저씨들의 목소리는 공공장소와 상관없이 쩌렁쩌렁하다.


신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땐 시간이 흐르며 

청각이 퇴화하고 발음이 조금씩 어눌해지는 것이 이유라 생각한다


실제로 청각이 약한 사람일수록 내가 듣는 만큼의 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더 크게 얘기를 전달한다

또한 발음을 신경 쓰기 위해 더 크게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위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이유가 아저씨들의 목청을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말 간단하게 살펴본다면 자신의 주장을 더 간절히 어필하고 싶은 것이 이유일 것이다


주장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목소리가 실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득이 크면 클수록 더 크게 움직일 것이다


이 글을 마치며..

그 당시 골프웨어와 정장 아저씨들은 자리를 빠르게 나왔지만, 

야리야리한 아저씨는 카페에 있던 점원에게 소란스럽게 해서 미안하다는 듯 사과를 하며 자리를 떠났다


공공장소에서 목소리가 큰 어른이 되었다는 건 이 사회가 그만큼 답답하기 때문 아니었을까...


마땅한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지만 

'커서 나는 저렇게 공공장소에서 민폐를 주지는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며 집에서 혼자 커피를 홀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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