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고등학생이 된 아들의 어깨 위로는 사춘기 소년의 열망이 소리 없이 쌓여가던 시절이었지요.
그 무렵 아들은 작은 기계 하나에 마음을 온통 빼앗겨 있었습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자신만의 음악 세계로 침잠하는 친구들의 모습은, 소년에게 단순한 유행을 넘어선 동경의 섬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엄마인 저는 차마 "사주마"라는 한마디를 쉽게 꺼낼 수 없었습니다. 아들의 손에 쥐여주고 싶던 그 은빛 플레이어는 당시 우리 형편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20만 원이라는 커다란 벽이었으니까요. 등록금과 생활비라는 현실의 무게 앞에서 아들의 꿈은 자꾸만 뒤로 밀려나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단단한 눈빛으로 제안했습니다. 스스로 새벽 신문을 배달해 기곗값을 벌갰니라고요. 고된 일에 어린 몸이 상할까, 공부에 지장이 갈까 싶어 남편과 저는 애써 말렸지만, 아들의 눈에 담긴 그 고집스러운 열정만은 꺾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들의 새벽이 시작되었습니다.
푸르스름한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현관문을 나서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저는 매일 기도를 올렸습니다. 차가운 신문 잉크 냄새를 묻히고 돌아온 아들의 얼굴은 늘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후드티 위로는 새벽이슬과 땀방울이 뒤섞인 비릿한 냄새가 배어 있었습니다. 등교 시간에 쫓겨 서둘러 숟가락을 드는 아들이 안쓰러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아들이 좋아하는 찌개를 끓이고, 계란말이를 정성껏 말아 올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어느 결부턴가 남편이 그 새벽길의 든든한 동행자가 되어주었습니다. 부자가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나가는 뒷모습을 창가에서 지켜볼 때면, 제 마음 한구석은 늘 형언할 수 없는 뭉클함으로 젖어들곤 했습니다.
한 달이 흐른 뒤, 아들은 생애 첫 노동의 대가인 20만 원을 손에 쥐었습니다. '이제야 그토록 원하던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겠구나' 싶어 대견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이틀 뒤, 제 낡은 화장대 위에는 묵직한 편지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봉투 속에는 수줍은 감사 인사와 함께 현금 17만 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들은 수십만 원짜리 최신형 플레이어 대신, 길거리 노점에서 산 투박한 카세트 재생기 하나를 품에 안고는 남은 돈 전부를 제게 건넨 것이었습니다.
"엄마, 저 이거면 충분해요. 남은 돈은 엄마 사고 싶은 거 사세요."
그 돈을 손에 쥔 채 저는 한참을 울었습니다. 근사한 기계로 음악을 듣지 못해 서운했을 소년의 마음보다, 가족의 무게를 먼저 헤아리며 훌쩍 커버린 아들의 깊은 속내가 너무나 고맙고도 미안해서였습니다.
그날 제가 들은 것은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아들의 땀방울과 희생, 그리고 가족을 향한 지극한 사랑이 빚어낸, 제 생애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인생의 선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