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유언

by 네맘


사랑이 어떤 모양으로 다가오는지 나는 알지 못했습니다. 수줍음 많고 내성적이었던 그가 커다란 용기를 내어 내게 데이트를 신청했을 때, 그것이 내 생애 가장 고요하고도 강인한 사랑의 시작임을 미처 몰랐습니다.


그는 나의 일상을 재잘거리면 묵묵히 들어주었고, 내가 불편한 것은 없는지 살피는 그의 얼굴엔 늘 안도 섞인 행복이 서려 있었습니다. 때로는 그 정적이 외로워 이별을 고한 적도 있었지만, 그는 헤어짐이라는 말 앞에서 애쓰는 목소리로 나를 붙잡았습니다.

그 진심에 마음이 녹아 우리는 부부가 되어, 소소한 대화 속에 행복했습니다.


평온하던 우리 집에 거대한 파도가 덮친 건 큰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던 해였습니다.

위암 말기. 수술과 항암이라는 처절한 싸움 끝에 남편은 모든 기력을 소진한 채 호스피스 병동으로 향해야만 했습니다.


깊은 밤, 억울함을 토하듯 내뱉는 그의 음성은 마치 실재하는 대화처럼 선명했습니다. 고통과 선망에 사로잡혀 하소연하는 그의 시선 끝에는 오직 공허한 정적뿐이었습니다.

그저 곁을 지키는 것 외엔 도울 길 없는 내 모습이, 그리고 그가 참으로 애처로웠습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출근하면서도 병실에 남겨진 남편과 집에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내 마음은 늘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버스 창밖으로 붉은 해가 떠오를 때 나는 신에게 간절한 거래를 제안했습니다.


​"제발 제 남편을 살려주세요. 누군가의 목숨이 정해져 있다면, 그 사람 대신 차라리 저를 데려가 주세요."


​남은 연차를 당신 곁에서 보내겠다고 말한 날, 기도가 닿은 걸까요? 남편은 잠시 기운을 차린 듯했고, 나는 그 짧은 기척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길어 올렸습니다.


햇살이 따사롭던 토요일, 세상을 다 얻은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그의 미소는 퀭한 눈과 비쩍 마른 몸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었습니다. 휠체어 위에 무거운 진통제 주머니를 매단 채 우리는 병원 앞 연못으로 향했습니다. 아이들이 오리 가족에게 과자를 던져주는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남편은 나직이 읊조렸습니다.


"오리 아빠가 부러워……."


그 짧은 한마디에 내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픈 와중에도 가장으로, 아빠로서 끝까지 가족을 지키고 싶어 했던 그의 책임감이 느껴졌습니다.

그의 손을 잡으며 진심 어린 나의 속내를 건넸습니다.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은 언제나 당신이었어."


휴가 5일이 지날 무렵, 그는 거짓말처럼 다시 기운을 잃더니 초연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죽는대."


마치 남의 일인 양 툭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남편의 처연한 눈빛에 희망이라는 숨을 불어넣고 싶어, 나는 짐짓 단단한 척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럴 리 없어! 마음 약해지지 마세요.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싶어요."


그는 삶을 체념 하 듯 "안 돼, 안 돼..."를 반복했습니다.

그것은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나와 아이들을 위한 애틋하고도 뜨거운 사랑의 고백을 위한 전조였습니다.


이제 남편은 곁에 없지만, 그가 마지막까지 남긴 따뜻한 사랑은 내 가슴속에 영원히 잊히지 않는 등불로 남았습니다.

소리 없이 쌓아온 그 사랑은, 남은 생의 길목마다 저를 지켜주는 가장 큰 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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