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가 대행운
만약 100년 전에 태어났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시간개념 중에 "찰나"라는 말이 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약 75분의 1초를 말하며, 약 0.013초의 시간 개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찰나의 연속이며, 태어나 늙어가며 죽는 그 긴 삶 자체도 연결된 찰나라고 볼 수 있다.
우주적인 시간개념을 꺼내기도 전에, 그 거대한 우주시간 안에서도 찰나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지구라는 시간단위로 살펴보아도, 지구 속 우리 인류의 전체 문명의 시간은 찰나의 찰나의 찰나이다.
우리는 물이 고체에서 액체로 또 기체로 변화하는 것을 알고 있다.
기체로부터 시작된 지구는 아주 긴 시간을 통해 지표면이 서서히 식어가며 생명이 움트는 환경이 되었다.
태양을 기준으로 지구 다음에 위치한 화성이 그러했듯이 얼음덩어리 고체로 변하기 전 단계가 지금 지구의 시간흐름이며,
지구가 고체로 변화기 전 찰나의 시간이 인류의 발생과 우리 삶의 이유이다.
내가 존재하는 이 순간은 지극한 우연의 연속 속에 대행운의 순간이다.
그 짧은 대행운의 순간 또한, 원시시대의 무자비함 속이 아니라, 풍요로운 현재의 문명 속인 것은 어떤 설명과 표현이 필요할까?
단지 100년만 시간을 되돌려도, 온 인류는 계급사회이고 전쟁의 시대였다.
지극히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하는 자체가 대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