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교육 일선에서 떠나온 지도 제법 되었건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매일 같이 행한 일상(日常)이었던 탓인지 불쑥불쑥 오래전 추억들이 고개를 치켜들곤 합니다. 오늘 역시 그러한 이유로 슬그머니 그 시절 기억 하나를 떠올리며 객쩍은 웃음을 흘려 봅니다.
‘기우(杞憂)’
학교 이곳저곳을 순회(巡廻)하던 중에 도서관으로 언뜻 발길을 들여놓고 보니, 미처 사람이 들어온 줄도 모르고 혼자서 흩어진 책 정리에 분주한 사서(司書) 선생님의 뒷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을 흐뭇하게 합니다. 저렇듯 다른 이의 이목(耳目)일랑 아랑곳없이 자기 자리에서 열정을 다하시는 분들 덕분에 학교에 대한 학부모나 지역민들의 신뢰가 높아져 왔던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언젠가부터 떠날 날을 손가락으로도 헤아릴 수 있게 된 때문인지 괜한 근심에 잠길 때도 많아졌습니다만, 저렇듯 열정을 쏟아붓는 후배 선생님들을 두고서 이 무슨 망령된 기우(杞憂)에 빠져 있었던가 싶어 하릴없이 고개만 주억거리면서 말이지요.
‘소설 vs 만화’
몇 해 전 학교 체제(體制)를 남녀공학으로 바꾸고 난 뒤로, 행여나 문제의 소지는 없을까 싶어 쓸데없는 걱정거리를 괜스레 만들어내곤 합니다. 그래도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여학생들의 그 발랄한 에너지는 학교를 훨씬 더 생기 있게 바꾸어가는 게 아닌가 생각하던 터였습니다. 내친김에 그 사서 선생님께 남학생과 여학생 중 누가 더 도서관을 자주 찾아 책을 읽느냐며 어리석은 질문을 던지고 보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여학생들이라고 답하는 통에 그저 실없는 웃음만 뱉고 맙니다. 게다가 그분이 덧붙이는 이야기가 소설류를 많이 읽는 여학생들에 비해 남학생들은 주로 만화책만 찾는다고 하니, 다시 한번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지요.
‘서점에서 놀자...'텍스트 힙' 즐기는 젊은이들’
온라인을 통한 지구촌 사람들 간의 소통이 익숙해진 탓이겠지만,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멋있게 여기는 모습을 따라 하는 일들이 젊은 세대들에게는 또 하나의 문화로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입니다. 그걸 ‘힙(hip)하다’-멋지다-라고 일컫는 모양인데, 최근 ‘글을 읽는 것이 멋지다’라는 뜻의 ‘텍스트 힙(text hip)’ 흐름이 지구촌 곳곳의 Z세대를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종종 들었던 터입니다. 그런데 오늘도 역시 그런 종류의 기사를 접하고 보니, 그저 반가운 마음에 묵은 기억 하나를 들추어보게 되었습니다. ‘꼰대’라는 타박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젊은 세대를 걱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아 온 사람의 처지에선 그저 미안하고도 반갑기만 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관련 기사 : 서점에서 놀자...'텍스트 힙' 즐기는 젊은이들 / 조선일보(2026.03.30.)
https://www.chosun.com/video_photo/2026/03/30/L7WUB3GP2ZEWJH6VUAYJENQWW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