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vs 집콕’
지루했던 더위가 저물어가던 어느 해 여름날 끝 무렵, 딴에는 그것도 유머랍시고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과의 자리에서 휴가는 어디를 다녀왔느냐는 질문에 ‘방콕’을 다녀왔노라는 이야기로 좌중(座中)을 썰렁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구석은 있었던지라, 방에 콕 박혀 있으면 ‘방콕’이라고 했으니 이렇게라도 친구들을 웃겨보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욕심에 냅다 아재 개그를 투척하는 무리수를 둔 것이었지요.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는 이들의 아이디어가 참으로 신선하고도 짓궂다는 생각도 종종 합니다만, 아마도 ‘집콕’이란 말 역시 앞서 사용한 그러한 조어(造語)의 아류로 등장했던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정신문화의 가치’
어느덧 흐릿한 장면으로 추억의 언저리에 가라앉은 듯도 합니다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구촌 인류 모두가 긴장하던 시절, 소위 '집콕'을 대비한다며 서구(西歐) 어느 나라의 주민들이 앞다퉈 휴지부터 사 모으느라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는 소식을 들으며 헛웃음을 터트리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제각기 나라마다 문화의 차이가 있게 마련이고, 또한 그 나름의 사정이야 있을 터입니다만, 그 모습이 참으로 희한하다는 생각만 들었던 듯합니다. 그럼,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떠할까 싶어 살펴보았더니, 당시 우린 먹거리부터 먼저 챙기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서 흠칫거리기도 했습니다. 외부 세계와 격리된 상태에서 한동안 버티자면 먹거리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싶긴 했습니다만, 혹시나 우리 선조들이 그동안 힘들여 쌓아온 그 자랑스러운 정신문화의 가치가 너무나도 원초적 욕망에 집착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하(卑下)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영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던 듯합니다.
‘전쟁이나 지진 터지면 싹 쓸어간다…한국은 종량제 봉투 동날 때 일본서는’
지구 건너편 중동(中東)에서 벌어지고 있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참상에 하루하루 마음만 졸이고 있었더니, 뜬금없게도 이웃 나라에서 ‘휴지 사재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에 그만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모두는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우리나라에서도 정부 관련 기관의 적극적인 설명에도 불구하고 서민들 사이에서 종량제 봉투 실종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니, 안타까운 마음에 그저 깊은 한숨만 내쉬게 됩니다.
하기야 불안한 상황에 미리 대비하고, 한 푼이라도 더 아끼고자 하는 마음이야 어찌 탓할 수 있겠습니까만, 혹시나 그러한 중에 더불어 살아가는 인류애의 소중한 지혜를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관련 기사 : 전쟁이나 지진 터지면 싹 쓸어간다…한국은 종량제 봉투 동날 때 일본서는 / 서울경제(2026.04.01.)
https://www.sedaily.com/article/20027095
*목불인견(目不忍見): 눈앞에 벌어진 상황 따위를 눈 뜨고는 차마 볼 수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