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추억 글 마당 – 2019. 3. 29. (금)에 쓴 글입니다.>
며칠 전, 대학원에 볼일이 있어 대학 본관 앞을 지나다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인 현수막이 펄럭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물론 현수막 아래쪽에는 총학생회를 비롯해 슬로건을 내건 주체가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흉노로 끌려가 기구한 운명을 살았던 전한 시대의 미인 왕소군을 기리며 지었다는 시 <소군원(昭君怨)〉에 나오는 말입니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뜻으로 흔히 삶이 참 힘들고 고달플 때, 혹은 세상사에 무관심하고 무료(無聊)할 때 사용하는 말이지요. 이미 캠퍼스 곳곳에는 봄꽃의 향연이 펼쳐지고, 따뜻한 봄기운이 나른하게 몸을 감싸는 3월의 오후, ‘춘삼월 호시절에 이건 또 황당한 상황이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사실 요즘은 신문이나 TV의 정치 관련 뉴스를 대하기가 두렵습니다. 무에 그리 원망할 일들이 많은지 온화한 웃음이나 따뜻한 말들은 사라져 버리고, 어쨌든 서로의 말꼬리를 잡고 연신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볼썽사나울 때가 많아서인 모양입니다.
삼성의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이 임종 전에 한국 천주교계의 대표적인 지성이라고 하는 정의채(鄭義采·94) 몬시뇰(Monseigneur, 가톨릭 고위 성직자에 대한 경칭)에게 보낸 질문 24가지에 대한 기사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라는 질문에 정 몬시뇰은 “신이 준 것이 아닙니다. 관점 자체가 다른 것이죠. 인간이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불러들인 것입니다.”라고 했답니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가 있지만, 그것을 안 지키고 모르는 사이에 인간 스스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것이라는 부언(附言)도 했답니다.
‘춘래불사춘 (春來不似春)’
근래 구설(口舌)에 오르내리는 미세먼지에 관한 한 대학병원 교수님의 의견이 눈길을 잡아끕니다. 미세먼지의 위험성이나 관련 대책에 관한 이야기야 이 사람이 몸담은 학교 현장에서도 큰 쟁점(爭點) 되고 있기는 합니다만, 이분의 관점은 그보다는 부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공포 마케팅’을 지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괜스레 막연한 불안에 빠져들도록 할 게 아니라 제대로 된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게 아닌가 싶으니 말이지요. 부디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선사하는 춘삼월 호시절 이 따뜻하고도 부드러운 선물에 감사하며, 좀 더 겸손한 마음으로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소식들로 가득 찬 세상을 기대하며 아침을 맞이합니다.
관련 기사 : 춘래불사춘 (春來不似春) / 매일신문(2019.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