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젠 일선(一線)에서 물러나고 보니 그럴 일도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만, 언젠가부터 선생님들과 어울려 앉은 자리에서 건배 제의라도 받을 참이면, 꼭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를 인용하곤 했습니다. 앞 두 구절은 이 선창자(先唱者)가 낭송할 터이니, 앉아 계신 여러분은 서로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마지막 구절을 함께 외쳐 달라는 부탁과 함께 말이지요. 하기야 어느 조직이나 다를 바 무에 있겠습니까만, 학교란 곳 역시 함께 부대끼는 선생님 간의 인화(人和)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니, 서로 자세히 오래도록 바라보며 아끼고 사랑하길 권하는 마음에서였지요. 물론 직업의 특성상 교육 현장에서 마주하는 아이들을 대하는 일이야 그보다 더욱더 간절한 일이니, 더 말할 나위도 없을 터이지만 말입니다.
아마도 그런 마음이 꾸준히 쌓여왔기 때문이었던지, 퇴임 후에는 무엇을 하며 지낼 것이냐는 뭇사람들의 궁금증에, 도무지 연락이 닿지 않거들랑 천변(川邊)으로 한번 나와보라는 말을 하며 너스레를 떨곤 했습니다. 이 사람이 사는 곳 근동(近洞)에는 신천(新川)이란 하천이 젖줄처럼 흐르고 있으니, 그곳을 유유히 거니는 걸 삶의 낙(樂)으로 삼겠다는 뭐 그런 이야기였지요. 물론 말이 씨가 되었던지, 하루건너 하루는 그 말처럼 천변을 걸으며 그동안 허투루 지나쳤던 세상의 모습을 눈에 자세히 담으려 애쓰고 있긴 합니다. 무심함이란 이런 것이란 듯 그저 묵묵히 아래로 아래로만 향하는 물길, 무딘 이들의 마음 사로잡으려는 듯 한동안 자태를 뽐내더니 어느새 숨죽여 다음을 기약하고 있는 뭇풀꽃, 피라미들의 간담 서늘하게 하던 화려한 날갯짓일랑 접어두고 언젠가부터 꼿꼿이 깃털을 가누며 월동 준비에 들어간 백로들, 그리고 그 소중한 풍광(風光)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 눈길 분주한 뭇사람의 걸음걸음….
‘한국인 하루에 만 보 걸었다…홍콩 이어 세계 2위 걸음 수’
한국인들의 걸음 수가 세계적으로도 많은 편에 속한다는 소식에 평소 이 사람의 어설픈 천변 탐사(探査)도 그 통계치에 포함이 되었을까 싶은 호기심이 일어 애꿎은 천변 식구들을 일일이 소환하고 말았습니다. 하기야 그곳 천변 세상에서는 오가는 이들의 걸음 수가 무에 대수이겠습니까.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져 함께 호흡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간다면 그곳이 바로 낙원(樂園)일 터인데 말입니다.
관련 기사 : 한국인 하루에 만보 걸었다…홍콩 이어 세계 2위 걸음수 / 연합뉴스 (2025.12.16.)
https://www.yna.co.kr/view/AKR20251216026300017?section=culture/all&site=major_news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