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벌레의 우화(羽化)

by 이경오

‘군취가무음주 주야무휴(群醉歌舞飮酒 晝夜無休): 무리가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술을 마시는데 밤낮으로 쉼이 없다.’

학창 시절 수업 시간, 삼국지(三國志)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 실린 우리 민족에 관한 부분이라며 들려준 선생님의 이야기에 서로 음흉한 눈길을 맞추어 가며 낄낄거리던 기억이 뜬금없이 떠오릅니다. 오래전 그 시절부터 그렇듯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겼다니, 그 유전자가 어딜 갔겠느냐며, 이어진 쉬는 시간에 책걸상까지 들썩여 가며 짓궂은 웃음도 흘렸던 듯합니다. 그렇듯 즐거웠던 순간도 끊임없이 짓눌러오는 학업에 대한 부담으로 그만 잠시간의 추억으로 묻어 두고 말았습니다만, 사실 그리 오래지 않아 다시 슬그머니 그 기억을 반추(反芻하고 말았답니다.


‘나는 개똥벌레 어쩔 수 없네. 손을 잡고 싶지만 모두 떠나가네’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시절, 주당(酒黨) 선배들의 호출로 술자리 참석이 잦아졌고, 신기하게도 선조로부터 물려받았을 음주가무(飮酒歌舞)의 자질이 이 사람 몸속에도 면면히 살아있었음을 느꼈던 것이지요. 그 시절만 하더라도 어디 지금처럼 곳곳에 노래방이 널려있던 시절이었겠습니까. 사정이 그러하니 술잔이 한 순배 돌고 나면, 분위기를 이끄는 선배의 성화에 떠밀려 가슴 속에 장전(裝塡)해 두었던 노래를 어김없이 발사하곤 했으니, 쏟아내던 탄알 가운데에는 개똥벌레의 비애를 담아 부른 그 시절 어느 여가수의 노래도 포함되어 있었지요. 개똥 냄새 속에 몸을 담았으니, 그 누가 가까이할 터인가, 이리라도 노래 불러 그 외로움을 달래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개똥철학까지 펼쳐가면서 말이지요. 덕분에 분위기에 취한 좌중(座中)의 술잔은 핑계 삼아 한 순배 더 걸쭉하게 돌았던 듯도 합니다.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그때는 그 개똥벌레가 반딧불이와 같은 곤충임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이곳저곳에서 나지막이 들려오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빛나는 별인 줄 알았던 자신이 벌레라는 걸 알게 되어도 눈부시니 괜찮다는 가사는 그저 듣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말았지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요. 올 한 해 노래방에서 우리 국민이 가장 많이 부른 노래가 되었다니 말입니다. 그러고는 혼자서 조용히 되뇌어 보게 됩니다.


“별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스스로 빛나면 그만인 것을.”




관련 기사 : “몰랐어요, 내가 벌레라는…” 가장 많이 불렀다 / 동아일보(2025.12.18.)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51217/1329897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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